열악한 환경 속 뛰어난 선수 배출한 ‘평택의 레슬링’
후원회 결성 등 지역·학교 힘 모아 정신력으로 전국 재패하다

▲ 초창기 선수들의 경기모습
레슬링만큼 오래된 스포츠도 드물다. 고대 그리스에서도 가장 대중적인 스포츠였던 레슬링은 그리스 신화와 서사시에도 자주 등장하고 있으며 그리스인이 아닌 에트루리아인들의 묘실화에서도 발가벗고 레슬링하는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
1941년 YMCA의 주최로 ‘제1회 조선레슬링선수권대회’가 개최되면서 처음 우리나라에 소개된 레슬링은 1974년 제7회 테헤란 아시아경기대회에서 아시아 경기대회 사상 최초로 62kg급 양정모 선수가 우승하고 1976년 제21회 몬트리올 올림픽 대회에서는 올림픽 대회 참가사상 처음으로 62kg급 자유형 패더급에서 양정모가 또 한 번 대망의 금메달을 차지하는 영광을 누리며 우리나라에서도 서서히 레슬링 붐이 일기 시작했다.
이후 1984년 제23회 로스앤젤레스 올림픽 대회에서 그레코로만형 62kg급 김원기와 자유형 68kg급 유인탁이 각각 금메달을 딴 것을 비롯해 은메달과 동메달 등의 성적을 거두었고 1986년 제10회 서울 아시아 경기대회에서는 금메달 9개·은메달 2개·동메달 5개의 성적을 거뒀다. 또한 1988년 제24회 서울올림픽 대회에서는 그레코로만형에서 74kg급 김영남과 자유형에서 82kg급 한명우가 각각 금메달을 차지하기도 했다.

1985년 안중중·고등학교에서 창단
전국적으로 레슬링에 대한 기대와 더불어 올림픽 효자종목이라는 국민들의 관심이 깊어지자 평택지역에서도 처음으로 1985년 안중중·고등학교에서 레슬링부를 창단했다. 초창기부터 이들을 이끌었던 이상균(49) 코치는 당시 22세의 나이로 안중중·고등학교에 코치로 부임해 중학생 10명·고등학생 20명 등 30여명의 학생들에게 레슬링을 가르쳤다.
엘리트체육에 대해 잘 알지 못했던 학생들을 대상으로 레슬링을 가르치는 일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이상균 코치는 교실 한 개를 비우고 바닥에 매트리스를 깔아 운동 공간을 만든 뒤 열악한 환경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에게 레슬링을 전수하기 시작했다.
당시 안중은 지역적으로도 외진 곳에 속해 있어서 아이들은 간간히 텔레비전에서나 보던 레슬링을 떠올렸으며 아마추어 레슬링은 실제로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경우가 대다수였다. 그레코로만형이 뭔지 자유형이 뭔지도 모르는 아이들을 대상으로 가르치는 일도 힘이 들었지만 학부모들 역시도 레슬링이 위험한 운동이라는 생각 때문에 반대하는 일도 많아 부원들을 구하기도 어려웠다.
대도시의 경우 가까운 곳에 레슬링을 하는 학교가 있거나 연습장이 있어 구경을 가기도 했겠지만 안중에서는 차편도 일찍 끊기고 주변에 견학을 갈만한 학교조차 없었다. 더구나 체육 전문학교가 아닌 일반계 사립고등학교여서 체육에 관한 것들은 더욱 열악하기만 했다. 여름방학에 합숙훈련을 할 때면 교실 책상을 붙여 놓고 매트리스를 깔고 잠을 자가며 새벽부터 야간까지 하루 4번씩 운동을 했다. 그러나 겨울이면 장작을 때는 난로 하나로 버텼는데 난로가 꺼지지 않게 돌아가며 불침번을 서게 하면서 합숙을 진행했다. 몸이 풀리지 않으면 자칫 다칠 수도 있었던 까닭에 레슬링 부원들은 추운 곳에서 얼어있던 몸을 풀기 위해 1시간 정도는 강한 트레이닝을 하며 땀을 낸 뒤 운동에 임하곤 했다.
이상균 코치는 “당시에는 추위가 정말 심해서 샤워장에서 씻고 나오면 머리가 바로 얼어버릴 정도 였다”며 “합숙시설이 좋은 학교에 가보면 아이들이 스팀이 나오는 곳에서 기거하는 것이 가장 부러웠다”고 회상한다.

▲ 안중 중·고등학교 레슬링 이상균 코치
▲ 제22회 전국소년체육대회 우승

열악한 환경에서 뛰어난 선수 배출
열악한 환경에서도 선수들은 뛰어난 기량을 선보이며 지역사회를 놀라게 했다. 이는 선수들의 기량도 뛰어났지만 학교 설립자였던 이명헌 이사장과 그의 후임 이정순 이사장 등 학교 관계자들의 적극적인 지지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안중중·고등학교 레슬링부는 창단한지 1년 만인 1985년 7월 안중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한만승이 제13회 체육부장관기전국학생선수권대회에 출전해 자유형 87kg급에서 3위를 차지하는 성과를 거뒀으며 1년이 지나자 더욱 뛰어난 선수들이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1988년 8월에는 양정모올림픽재패기념 제13회 KBS배 전국레슬링대회에서 고등학교 재학 중인 최승봉이 그레코로만형 68kg급 1위를 차지하는 성적을 거뒀다. 1991년 3월 제9회 회장기전국레슬링대회에서 고등학생 간정혁은 자유형 88kg급에서 1위를 차지했으며 그해 8월에 있었던 양정모올림픽재패기념 제16회 KBS배 전국레슬링대회에서도 1위를 차지했다. 1991년 4월 중학생 이석재는 제1회 회장기전국중학교레슬링대회에 그레코로만형 70kg급에 출전해 1위를 차지했다.
1위의 행진은 중·고등학교에서 계속 이어졌다. 중학교에서는 신재덕(1995), 이창희(1995), 박장훈(2003), 김새영(2004), 김경우(2005), 송관석(2005), 임승묵(2005), 정종석(2006) 등이 큰 대회에 출전해 뛰어난 기량을 보였다. 또한 고등학교에서는 최원상(1997), 박성은(2001), 이정백(2002), 이얼(2002), 차진용(2004), 차진호(2004), 홍선기(2005), 김민(2005), 박장훈(2006), 송관석(2007), 김경우(2007), 채병인(2007) 등이 열악한 환경을 이겨내고 각종 대회에 출전해 금메달을 휩쓸었다. 2008년에는 제26회 회장기 전국레슬링대회 고등부 그레코로만형 단체전에서 우승컵을 안기도 했다.
이렇듯 선수들이 대회에서 뛰어난 기량을 보이기 시작하자 학교 재단은 물론이고 지역에서도 후원회가 결성돼 학생들을 뒷바라지하기 시작했다. 지역에서 의사·약사·기관 단체장들로 구성된 20여명은 사비를 털어 학생들을 도왔으며 이러한 성과에 힘입어 1995년 경기도에서 레슬링 부원들을 위한 체육관을 건립했다.
안중중·고등학교는 2009년 내부 사정에 의해 아쉽게 레슬링부를 폐지했으며 그 뒤를 이어 2010년 10월 포승 도곡중학교에서 레슬링부를 창단해 현재까지 꾸준히 메달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 안중 중·고등학교 선수들의 훈련장면

평택시청 레슬링 팀이 역사를 잇다
평택시 레슬링의 역사를 잇는 평택시청 레슬링팀은 2005년 2월에 역도·하키팀과 함께 창단해 이정대 코치를 필두로 정강석·전두희·최상근·문형일 등의 선수를 영입해 각종 대회에 출전했다.
평택시청 레슬링팀은 2006년 8월, 제31회 KBS배 전국레슬링대회에서 이준희가 자유형 55kg급에서 2위, 문진태가 자유형 66kg급에서 3위를 차지했다.
그리고 같은 해 9월, 제32회 대통령기 전국 시도대항레슬링대회에서 문진태·정강석이 각각 자유형 66kg급과 60kg급에서 1위, 김승일은 그레코로만형 55kg급에서 2위를 차지했다. 이정대 코치는 경기도 종합우승으로 최우수지도자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평택시청 레슬링팀은 이후에도 꾸준히 뛰어난 성적을 보이고 있다. 2007년 8월 제33회 대통령배 전국시도대항레슬링대회에서 문진태 자유형 74kg급 1위, 김정배 60kg급 2위, 이준희 60kg급 3위, 정강석 66kg급 3위를 해 경기도 종합우승을 차지했으며 문진태는 당시 최우수 선수상을 수상했다.
평택시청 레슬링팀은 2012년 런던올림픽대회 1차 선발대회에서 신제우 선수가 1위를 차지해 아시아선수권대회 출전권을 획득했다. 제37회 대통령배 전국시도대항레슬링대회에서도 역시 1위를 차지하며 경기도종합우승을 차지했고 신제우 선수는 최우수선수상을 수상했다.
1980년대 열악한 환경을 딛고 열정과 노력으로 전국을 재패했던 평택시 레슬링, 이제 평택시청 레슬링팀에서 영광을 이어가고 있어 이들의 꾸준한 메달행보가 시민들의 기대를 모으고 있다.

 

▲ 제 39회 대통령기 전국시·도대항 레슬링대회 기념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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