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지자체에서 10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가 적지 않다. 부천시는 ‘부천’이라는 지명이 만들어진 해가 1914년이어서 내년 100년을 맞아 다양한 기념행사를 준비한다고 전해진다. 그리고 청양군도 100년을 기념하기 위해 군 전체가 한창 준비에 여념이 없다. 왜 100년을 기념할까. ‘100년’이 가지는 상징성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100년 전 우리나라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을까. 불행하게도 100년 전, 우리는 일제의 식민지였다. 그 100년 전 식민지시기에 오늘날 ‘평택’이라는 공간이 마련됐다. 엄밀하게 말하면 ‘진위’라는 통합의 공간이었지만. 1914년 3월 1일에 당시 충청남도에 속하였던 평택군과 경기도에 속하였던 진위군이 통합됐다.
그렇다고 당시의 평택군과 진위군의 통합된 지역이 100년이 지난 오늘 평택의 공간 그대로는 아니다. 1914년 3월 1일의 평택군과 진위군의 통합은 말 그대로 당시의 평택군과 진위군의 공간 통합이었다. 그 이유는 오늘날 평택의 서부지역에 해당하는 현덕면·포승면·안중읍·청북면 등 일부지역은 3월 1일보다 한 달 늦은 4월 1일 편입됐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볼 때 오늘의 평택이라는 공간은 1914년 4월 1일에 형성됐다고 할 수 있다. 이 평택이라는 공간이 형성된 100년의 모습을 어떻게 봐야 할 것인가가 숙제이다.
평택도 오늘날과 같은 공간적 통합을 이룬 100년을 뜻 깊게 맞이하기 위해 여러 가지 준비를 하려고 하다가 유탄을 맞은 듯하다. 일부에서는 비록 식민지라는 불행한 시기였지만 과거를 성찰하고 통합의 의미를 잘 살려보자는 취지에서 뜻 깊게 보내야 한다고 한다. 경기의 진위·충남의 평택, 그리고 수원·직산·양성 등으로 여기저기 찢어져 있던 평택 서부지역이 오늘과 같은 하나의 평택으로 통합된 것은 비록 일제식민지 시기라 하더라도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반면에 또 다른 일부에서는 일제식민지에 이뤄진 통합이기 때문에 문제가 된다는 것이다. 당시 통합이 식민통치를 위한 것이기 때문에 슬픈 일이고 자존심을 짓밟는 치욕스러운 일이라는 것이다. 두 가지 관점을 다 부정할 수는 없다.
그런데 왜 이런 생각이 날까 하는 점이다. 100년 평택이라는 통합된 공간을 의미 있게 보내고자 하는 것이 치욕적이고 슬픈 일이라면 평택이라는 지명도 슬픈 것이고 치욕적인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사실 1914년 4월 1일 현재의 평택이라는 공간이 통합됐지만 당시는 ‘진위’라는 지명을 그대로 사용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진위라는 지명은 통합 이전부터 사용됐기 때문에, ‘진위’라는 지명을 쓴다면 슬프고 치욕적이지 않다고 할 수 있을까.
또 하나 그동안 사용됐던 ‘진위군’이 ‘평택군’으로 명칭이 바뀐 것은 1938년이다. 1938년은 1931년 만주사변, 그리고 1937년 중일전쟁 이후 본격적인 전시체제가 형성됐고, 민족말살정책이 본격적으로 진행됐던 시기였다.
그리고 ‘진위군’을 ‘평택군’으로 변경을 시도한 것은 평택지역의 일본인과 식민지배에 협력하는 세력들이었다. 또한 1905년 경부선을 부설하면서 ‘평택역’이라는 역명을 붙인 것도 일본이었다. 그렇다면 ‘평택’이라는 지명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현 평택이라는 공간적 통합을 맞는 100년은 어떠한 의미를 갖는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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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주현 연구교수
청암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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