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모 교수는 평택 100주년이 역사적으로 상징적 의미가 있다는 기고를 했다. 그러나 그의 글 어디에도 물리적으로 100년이라는 것 외엔 어떤 상징도 그럴듯하게 적시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평택이라는 지명도 일제하에서 부여됐으니 평택이라는 지명도 거부했어야 하지 않느냐고 반문하고 있다.
이는 평택시장과 그의 뜻에 동조하는 일부 인사들이 주도하는 평택시 통합100주년 기념사업에 대한 지지성 기고글로 보인다. 그런 식의 논지는 일제에 의해 만들어진 모든 것, 예를 들면 기차역과 기차도 이용하지 말아야 한다는 억지 주장과 궤를 같이 한다.
물론 우리의 역량이 해방 후 일제청산을 확실히 하지 못한 아쉬움을 남기기는 한다. 우리는 불행하게도 친일 부역자마저 제대로 처단하지 못하는 역사적 과정이 있었음을 잘 알고 있다. 결과로 우리는 지금도 그 후유증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모 교수께서 주장하는 평택지명을 우리가 사용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서 평택이라는 지명이 이전부터 사용해왔던 지명이라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는 듯하다. 일본이 우리나라를 지배하면서 생긴 지명들이 아직 까지 완전히 바로 잡히진 않았으나, 많은 사람들의 노력으로 바로 잡혀가고 있는 중임은 잘 알 것이다. 이미 일본식 지명인 평택의 본정통은 명동거리로 바뀌지 않았는가. 특히 국립지리원은 일본풍의 지명과 왜곡된 지명들을 철저히 조사하고 바로 잡아나가겠다고 밝힌 바도 있다. 이렇듯 일제에 의해 부여된 지명은 이미 사라지거나 정화해 가는 중이다. 하지만 평택이라는 지명은 이미 고려 시대부터 지금 평택의 일부이지만 사용되고 있었던 이름이기에 일제에 의해 부여된 지명과는 다르다. 더욱 1938년 진위군에서 평택군으로 개칭 된 것은 평택역이라는 교통요지가 상업적 발전을 하면서 중심이 자연스레 이동 할 수밖에 없었던 사실임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모 교수의 글을 읽어보면 이분이 학생들을 지도하는 교수임은 분명한 것 같다. 그러나 어떤 전공인지는 몰라도 역사인식에 천박함을 보여주고 있다. 지역신문이라도 중요한 언론인데 정치적으로 이용 가능성이 짙은 글을, 그것도 그러한 사실을 알만한 분이 신문에 기고하는 자세는 어쩐지 학문을 하는 사람답다고 할 수 없을 것 같다.
필자의 생각은 이렇다. 이번 평택시의 100주년 기념사업은 역사인식의 박약으로부터 출발했다. 일제든 현재든 행정구역의 통합은 제대로 된 주민자치를 훼방하는 일반적인 사실이라는 것을 역사는 증명하고 있다. 우리시민들은 이번 기회를 통해 일제의 이런 행위가 정치·경제·사회·문화 전반에 대한 침탈과 수탈을 자행하기위한 행정구역 통폐합이었음을 다시 한 번 각성해야 한다. 1914년 평택 행정구역 통합은 1910년 일제에 의해 국권이 침탈된 후 지방권의 찬탈과 재편에 다르지 않다. 그러므로 1910년과 1914년은 한 치도 다르지 않다.
‘오얏나무 밑에서는 갓 끈도 고쳐 매지 말라’는 옛 어른들의 말을 되새기지 않더라도 평택시청에 100주년 기념 담당부서를 만드는 등 미리 호들갑을 떨만한 근거는 없다. 시민들의 반론이 제기되자, 근거도 없이 만든 담당부서를 존치시킨 채, 원점에서 재검토하겠다, 시민대토론회를 열겠다하는 평택시장의 말이 미덥지 않은 것은 당연하다. 만약에 그렇게까지 이벤트를 해야만 할 이유가 꼭 있다면 내년 6월에 있는 지방선거가 끝난 뒤에나 과거를 되돌아보고 평택시의 미래를 고민하는 성찰의 기회를 가져 보라고 충고하는 것이 올바른 자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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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도숙 지부장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회 평택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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