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그로테스크한 현실 해석과 섬세하면서도 도발적인 인물들의 창출”,“영상문화와 가상현실의 시대를 사는 이미지 세대의 이야기꾼” 등의 찬사를 받으며 차세대를 대표하는 작가로 크게 주목받은 김영하는 2013년에 그의 새로운 단편소설을 발표했다.
-머릿속에 인물이 떠오르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그 인물의 입으로 말을 시켜보는 것이다. 반드시 그 인물이 입을 열어 말을 해야 한다. 그것은 작가와 인물이 치르는 일종의 면접 같은 것이다. 소설을 언제 구상하게 되었는지는 분명하게 말할 수 없지만 집필이 언제 시작되었는지는 특정할 수 있다. 바로 등장인물이 입을 열어 말을 하는 순간, 그것을 작가가 받아 적는 순간이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내가 마지막으로 사람을 죽인 것은 벌써 25년 전, 아니 26년 전인가, 하여튼 그쯤의 일이다. 그때까지 나를 추동한 힘은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것 같은 살인의 충동, 변태성욕 따위가 아니었다. 아쉬움이었다. 더 완벽한 쾌감이 가능하리라는 희망. 희생자를 묻을 때마다 나는 이렇게 되뇌곤 했었다. ‘다음엔 더 잘할 수 있을 거야’
내가 살인을 멈춘 것은 바로 그 희망이 사라졌기 때문이었다.”
나는 이 인물이 마음에 들었다. 그를 신뢰할 수 있다고, 내 소설의 주인공으로 삼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2013년 2월 초의 일이다. 나는 본격적으로 집필에 들어갔다. 속도는 매우 느렸다. 하루에 한 문장, 혹은 두 문장밖에 쓰지 못하는 날이 많았다. 답답해하다가 어느 날 문득 깨달았다. 기억을 잃어가는 늙은 연쇄살인범의 속도에 내가 맞춰야 한다는 것을. 그러자 마음이 좀 편해졌다. 조금씩 쓰고 오래 쉬었다. -        <살인자의 기억법> 메이킹 노트에서
<살인자의 기억법>은 알츠하이머를 앓는 연쇄살인마의 이야기이다. 25년 전, 살인을 하고 돌아오는 길에 차사고로 뇌수술을 하고 그로 인해 더 이상 살인충동이 일어나지 않게 되었고 25년의 시간이 흘렀다. 70대가 된 주인공은 알츠하이머를 앓게 되며 기억이 점점 흐려지고 정상적인 사고가 힘들어지게 된다.
함께 사는 그의 딸은 마지막 피해자의 3살짜리 딸이었다. 25년간 친딸처럼 키웠다.
범죄에 대한 공소시효는 이미 오래 전 끝난 어느 날,
마을에서는 연쇄 살인이 발생하고 거리에서 우연히 마주친 한 남자에 대해 연쇄살인마임을 직감한다. 하필 그 남자가 자신의 딸과 결혼하겠다면서 집으로 찾아온다.
점점 심해지는 병세와 싸우면서 딸을 보호하기 위한 마지막 살인을 준비를 하기 시작한다.
책은 연쇄살인마에 대한 내용을 다루고 있지만 여느 스릴러 장르의 소설과는 다르게 살인에 대한 자세하고 섬뜩한 묘사는 없다. 하지만 첫 페이지를 읽는 순간부터 소설의 흡입력은 대단하다. 독자들은 주인공의 흐려지는 사고와 기억에 의존하여 짧은 시간 안에 결말로 함께 나아간다.

 

 

 

 

 

 

박원진 사서
평택시립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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