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에서 의욕을 흥기 시키고 예(禮)에 똑바로 설 수 있고, 악(樂)으로 인간은 완성된다”

추운 겨울 밤일수록 별빛이 뚜렷하다. 옥상에서 하늘을 보는데 오늘 따라 별빛이 흐리다. 거리의 불빛을 바라보며 사람들은 불빛을 너무 많이 켜놓고 산다는 생각이 든다. 진정한 삶의 의미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채 불들을 가득 켜 놓은 것 같다. 사방으로 켜진 십자가의 붉은 불빛을 보면서다.
한번 떠난 사람은 다시 오지 않지만 봄은 다시 온다. 반드시 온다. 그러나 사람들 마음엔 봄이 그리 쉽게 오지 않는 것 같다. 봄은 생명이요 기운이다. 활기를 띠게 하려면 따뜻한 눈길을 줘야 한다. 춘삼월, 봄은 온다지만 뜨거운 열전이 예상되는 4월 총선이 목전에 다가왔어도 삶에 지친 탓일까, 아직은 그 따사한 봄기운을 느낄 수가 없다. 금년은 선거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총선과 대선이 있는 해다. 그래서인지 벌써부터 각 정당들이 분주해지면서 총선에 이어 대선 출마예정자의 이름들이 거론되기도 한다.
칼럼을 쓰기위해 연필을 깎으면서 문득 목민관(통치자)인 지도자들이 갖춰야 할 덕목을 나열하고 그대로 실천하기를 바라는 내용이 담긴 다산 정약용 선생의 목민심서가 생각난다. 다산은 이 책에서 지도자라면 온 정성을 다해 율기(律己)편의 여섯 가지  덕목을 실천할 것을 제시하고 있다.
그 첫 번째 덕목이 바로 ‘칙 궁’인데 칙 궁 이란 별게 아니고 자기의 몸가짐을 가다듬는 일을 말하는 것이다. 쉽기도 하지만 어렵기도 하다. 칙 궁의 대원칙은 “기거(起居)함에는 절도가 있고 관대(冠帶)는 단정히 하며 백성들에게 임할 때는 장중하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일상의 행동에는 절도가 있어야 한다는 뜻이 기거에 절도가 있음이며, 의복이나 모자를 단정해야 함이 관대가 단정하다는 뜻이며, 사람들과 상종함에는 장중한 모습을 유지해야 한다고 말 할 수 있다.
다산은 마음과 몸가짐의 경건함이 지도자의 덕목에서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고경(古經)을 인용하면서 더욱 강조하고 있다. 또 시경(詩經)을 인용하여 점잖은 위엄 있는 거동, 오직 덕 높은 사람의 모습이라고 하고 “공경하고 삼가는 위엄 있는 거동, 백성들이 본보기 삼네” 라고 노래한다. 마음가짐이야 말할 것도 없지만 몸가짐을 제대로 해야만 덕 있는 지도자로서 백성들이 본받을 인물로 추대해 준다는 뜻이 담겨져 있다.
다산은 이밖에도 대원칙을 피력했다. “탐욕이 큰 사람은 반드시 청렴하려 한다. 청렴하지 못한 것은 그 사람의 지혜가 짧기 때문이다” 라고. 인간이라면 대탐(大貪) 을 지녀야지 조그만 이익에 얽매여 소소한 뇌물을 받거나 작은 이익에 현혹되어 참된 자신의 욕구가 중간에 좌절되고 마는 그런 불행을 맞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MB정부 말기에 접어들면서 유력했던 정치지도자나 권력의 실세들, 그리고 기업주들이 조그만 이익에 연연하다 줄줄이 망가지는 모습을 보면서 역시 ‘대탐필렴(大貪必廉)이구나’라는 다산의 외침을 생각지 않을 수 없다. 총선을 앞두고 돈 봉투 사건이 터지면서 사상 초유로 국회의장이 내몰리는 등 5선, 6선의 국회의원들이 불명예로 강제 퇴진 되고 심지어는 대군(大君)의 호칭을 받던 지도자도 부정한 금품수수 때문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고 불출마를 선언했다. 그가 남긴 말이 남의 말 같지 않다. ‘천망회회, 소이불실’(天網恢恢, 疎而不失 하늘의 그물은 크고 넓어 엉성해 보이지만 결코 빠져나가지 못한다) 역시 율기(律己)가 부족한 지도자, 염리되기를 거부한 지도자는 불행한 결과를 맺게 된다는 다산의 권면에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바둑에서는 소탐대실(小貪大失)이라는 명언이 있는가보다. 진작 그런 마음이었으면 이런 부정을 저지르지는 않았을 것이 아닌가.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
일찍이 공자는 그의 논어를 통해 “시(詩)에서 의욕을 흥기 시키고 예(禮)에 똑바로 설 수 있고, 악(樂)으로 인간은 완성된다”라고 말하며 ‘시례악’ 이라는 인문학적 교양을 통해서 인간의 인격과 인품이 이룩된다는 명언을 우리에게 던져 주고 있지만 안타깝게도 요즘 학교는 신자유주의의 깊은 늪에 빠져 극심한 경쟁이 더욱 치열해지고 있을 뿐이다.
오직 성적 1위의 기계 같은 인간만을 양생하고 추구할 뿐, 교양을 통한 인간으로서 기본이 되는 인성, 인격 갖추기는 안중에도 없다. 그러다보니 몸가짐, 행동거지, 의복의 단정함 등을 통해 인간다운 모습을 지닌 지도자를 양성하는 세상은 갈수록 멀어져 가고 있다.
그래서일까 ‘칙 궁’ 을 강조한 다산의 지도자 론이 새삼 새롭게 와 닿는다. ‘부부자자군군신신’(父父子子君君臣臣)중국 춘추시대 제 나라의 경공이 공자에게 바른 정치가 무엇인지 물었을 때 “아버지는 아버지답게, 아들은 아들답게, 임금은 임금답게, 신하는 신하답게 처신 하는 것” 이라고 대답했다. 그렇다. 그답게 하는 것이 바른 정치다. 우리 정치도 과거의 구태에서 벗어나 신선한 참모습으로 거듭 날 수는 없을까. 여전히 으스스 춥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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深頌 안호원
시인, 수필가, 칼럼니스트
YTN-저널 편집위원/의학전문 대기자 역임
사회학박사(H.D), 교수, 목사
평택종합고등학교 14회 졸업
영등포구예술인총연합회 부이사장
한국 심성 교육개발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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