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기(修己)’는 유교의 핵심키워드, 현대에도 이어져야

 
제4회 민세상 학술연구부문 수상자인 한형조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는 서울대 철학과를 졸업하고 한국정신문화연구원 한국학대학원 석사과정을 마쳤으며 현재 한국학중앙연구원 연구처 처장으로 재직중이다. 한형조 교수는 한국 전통유학에 대한 현대적 해석과 심층연구, 전통 불교에 대한 새로운 연구와 해석, 한국 사상과 동양사상의 대중화로 대중과의 소통을 위해 노력해 온 공적을 인정받아 민세상 학술연구부문 수상자로 선정됐다. 저서로는 <율곡사상의 현대적 의미> <주희에서 정약용으로> <지눌사상의 현대적 의미> <왜 동양철학인가> <조선유학의 거장들> <왜 조선유학인가> <한글세대를 위한 불교> <무문관 혹은 너는 누구냐> 등이 있다. 한영조 교수를 만나 민세상 수상 소감과 그의 학문에 대한 소견을 들어봤다.

■ 수상소감을 얘기해 달라
학문을 취미로 생각했기 때문에 사회적인 기여를 한다거나 세상을 계몽한다거나 하는 거창한 생각은 해본 적이 없다. 후보로 올랐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도 믿지 않았다. 나는 어찌 보면 개인적인 자세, 옛 선인들과 대화하는 수준으로 학문에 임했을 뿐인데 이번에 상을 받게 돼 좀 의외였다. 평택시민들이 낸 세금을 내가 받아도 되는지 조심스럽다.

■ 평택은 원효의 오도성지가 있는 곳이다. 원효를 공부하셨는데 오늘날 원효는 어떤 의미를 갖는가
원효는 당시 모든 불교인들의 필수코스라고 할 수 있는 불교선진지 당나라로 유학 떠나는 것을 포기했다. 현장의 유식(唯識)불교를 배우기 위해 중국으로 가는 길목에서 무덤 속 해골 물을 마시고 불교의 비밀을 이미 깨달았노라고 배낭을 수습해 발길을 돌렸다. “모든 비밀은 내 마음에 있으니 다시 또 무엇을 구할 것인가”라고 말한 원효는 10여년이 지난 후 <판비량론>을 써서 현장 유식의 오류와 부족함을 비판하기도 했다. 당대 원효는 고승 명덕들에게 단단히 미운털이 박혀 왕따를 당했다. 행적이 괴이하고 학맥이나 기댈 곳도 없는 사람이었으며 유학파도 해외파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원효는 국제화 된 시대에 정보와 자료, 인적자원들이 자유롭게 교류하던 시절을 살았는데 불교는 물론 중국 당대에 출간된 불교 문헌들을 두루 섭렵했던 인물이다. 가장 궁금한 것은 현장이 인도에서 직접 들여온 새로운 유식이었는데 원효는 그 비밀마저 토굴에서 얻은 해골 물 하나로 직접 해결할 수 있었다. 원효는 어려운 불교를 파고드는 솜씨가 당대 제일이었다. 일반 대중들은 기복(祈福)에만 치우쳐 정작 불교의 가르침은 찾지 못했고 전문가는 학문적 연구에만 빠져있었는데 불교의 가르침을 중간에서 가교 역할을 한 사람이 바로 원효였다.
현대는 지식의 정보가 극미에서 극대까지 전문화되고 광범위해졌는데 일반 대중들에게 소통이 안 된다. 이 광범위한 지식을 대중들에게 어떻게 전해줄 것인가. 전문가가 잘 소화시켜 대중화시킬 수 있는 원효 같은 프로페셔널 한 스승이 필요하다. 원효의 과제는 현대 학문의 과제이기도 하다.

■ 민세는 다산을 최고의 학자로 꼽았다. 다산에 대한 생각을 들려 달라.
다산은 수많은 저서를 남겼다. 망라하지 않은 분야가 없고 스스로도 유교경전의 전문가로 자부했던 분이다. 내가 다산을 처음 만난 건 <논어고금주 論語古今注>를 읽으면서 부터였다. 논어를 상세하게 해석해 비평하고 독자적인 의견을 수립해 놓은 엄청난 책인데 문장이 명료하고 애매한 부분이 없으며 솜씨가 분석가로서 최고다. 이 책을 읽고 난 후 내 자신도 막연하던 것이 뚫리는 느낌이었다. 나는 학생들에게 논어를 읽으려면 <논어고금주>부터 읽고 기본을 배운 뒤에 읽으라고 가르친다. 다산은 공자에 대해 새로운 해석을 하고 있다.
그러나 다산 시대와 지금은 다르다. 다신이 본 건 그 시대를 살고 있는 다산의 시각이며 그 시대의 시각이다. 시대가 달라지면 사상도 달라질 수 있다. 이 시대의 시대적 정신은 무엇인가. 지금은 정신혁명이 필요한 시기다. 기술학으로서보다는 마음의 혁명으로서의 실학이 중요하다.

 
■ 지식인의 상이란 어떤 것인가
현대에서 유교를 보는 시각은 부정적이다. 당파싸움, 허례허식, 신분차별 등 민주화 사회와는 거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유교가 근대화를 가로막는 원흉이라고도 한다. 그러나 내가 보는 유교는 그렇지 않다. 유교의 핵심키워드는 수기(修己)에 있다. 그 노하우가 중요하고 필요하다. 조선의 유학자들이 벼슬자리 준다는데도 마다하고 독자적으로 산 속에서 즐긴 삶은 무엇인가. 현대인의 삶에도 이것을 알 필요가 있다. 이 사람들의 핵심키워드는 남의 눈치를 안 봤다는 것이다. 옳다고 믿는 바에 따라서 행동했다.
지나치면 반사회적인 성향도 될 수 있지만 실제적으로는 합리주의적이었다. 인간의 삶은 타인이 지배하고 있다고 생각했으며 권력이나 보여주기 위한 삶 들은 진짜 자기 삶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정말 나를 위한 삶은 무엇인가를 추구하던 사람들이 당시 지식인들이었다. 나를 위한 삶에는 타인을 배제할 필요가 있다. 이들의 내면으로 파고드는 것이 필요하고 내 삶은 무엇인가를 성찰해야 한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은 남을 멀리한다는 말이 있지만 사실상 남을 미워하게 되면 나를 해치게 되기 때문에 남을 대하는 태도와 나를 대하는 태도에 균열이 있을 수 없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은 남도 사랑하게 된다.
유교는 나를 위한 공부가 남을 위한 공부가 된다고 가르친다. 나를 제대로 훈련시키면서 남에게 이어지고 결국 가족과 이웃에게 이어지도록 하는 것이 유교다. 현대에는 이러한 유교를 삶으로 이끄는 지표가 사라졌다.

■ 현대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현대인은 상처를 잘 모른다. 그 상처가 어디에서 왔는지 알려고 하지 않으며 그 상처를 치유하는 노하우도 모른다. 막막한 세상에서 어떻게 살지도 모르는 삶의 청춘들에게 무엇을 줄 수 있을까. 인문·종교·철학·정신분석 등은 다른 분야가 아니다. 어려움에 부딪혔을 때 극복하는 방법도 비슷하다. 서로 다른 정신적 자원을 어떻게 연결할 것인가 하는 것이 중요한 문제다. 새로운 시대에 새로운 환경을 만나서 새로운 붐을 일으켜야 한다. 유교와 불교가 만나 핵심적으로 중요한 자원들만을 골라 새로운 자원으로 만드는 일은 그래서 필요하다.
서양의 필로소피가 제안하는 인간의 길과 유교가 지향하는 인간의 길은 70%가 비슷하다. 이런 것들은 요즘 이슈로 떠오르고 있는 인문학의 붐과 더불어 자연스럽게 매칭되지 않겠는가. 1830년대의 실학이 산업과 부를 일으키는 실학이었다면 이시대의 실학은 수기修己, 힐링, 마음의 혁명으로서의 실학이 필요하다. 물질적 부가 아무리 커져도 정신이 가난하면 모든 것이 가난하다. 반대로 물질적 부가 열악해도 마음을 통해 행복과 부를 자발적으로 창출할 수 있다.

◆ 민세상은?
경기도 평택출신으로 일제강점 하에서 민족운동가·언론인·사학자로 활동하며 민족의식 고취에 힘쓰고 해방 후 통일국가 수립에 노력한 민세 안재홍 선생의 사회통합과 한국학운동 정신을 계승하기 위해 2010년 제정됐다. ▲1회 수상자는 송월주 지구촌 공생회 이사장(사회통합)·정옥자 서울대 국사학과 명예교수(학술연구) ▲2회 수상자는 김지하 시인(사회통합)·조동일 서울대 국문학과 명예교수 ▲3회 수상자는 정성헌 한국DMZ 평화생명동산 이사장(사회통합)·한영우 서울대 국사학과 명예교수(학술연구)가 선정됐다. 제4회 민세상 시상식은 11월 29일 오후 6시 한국프레스센터 20층 내셔널프레스클럽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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