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은 평택으로서는 매우 의미가 있고 중요한 해이다. 바로 현재 평택이라는 지역의 지리적 통합이 이루어진 해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평택에서는 많은 논란이 있었다. 평택 통합 100년을 ‘기념할 것이냐, 아니냐’로 토론회를 갖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 것도 얻은 것이 없었다. 오히려 평택 통합 100년을 기념하는 것이 마치 나라를 팔아먹은 그런 느낌이었다.
‘평택 통합 100년’과 ‘일제강점기 행정구역 개편’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 어느 쪽을 볼 것인가에 따라 그 인식은 전혀 다르다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결국 이 문제의 인식은 동전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가 핵심이라고 본다.
역사를 전공하는 입장에서, 더욱이 민족운동 내지 일제 식민지 지배정책을 연구하는 입장에서 일본의 식민지 지배를 달가워할 이유는 전혀 없다. 최근 일본 아베 수상이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한 소식을 듣고 분개하는 마음은 한국인이면 누구나 같을 것이다. 필자 역시 분개하였고 서글픈 마음까지 든다.
불교에 ‘지월(指月)’이라는 용어가 있다. 《능엄경(楞嚴經)》에 나오는 말이다. 그 내용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어떤 사람이 손으로 달을 가리켜 다른 사람에게 보인다면, 그 사람은 손가락을 따라 당연히 달을 봐야 한다. 그런데 만약 그가 손가락을 보고 달의 본체로 여긴다면, 그 사람이 어찌 달만 잃은 것이겠는가, 손가락도 잃어버린 것이다”
이 말은 본질을 보지 못하고 주변을 본다는 것으로 많이 쓰이고 있다. 평택 통합 100년도 바로 여기에 해당한다고 본다. 2014년은 평택 통합 100년을 성찰하고자 하는 것이지, 일제강점기 행정구역 개편을 기념하자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우리는 평택 통합 100년이라는 본질을 보지 못하고 일제 행정구역 개편만을 보고 있다.
1910년 8월 29일. 우리 역사상 잊을 수 없는 날이다. 바로 나라의 빼앗긴 국치일이다. 그러나 3·1운동 이후 수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는 이 날을 해마다 기념했다. 국치일은 10월 3일 개천절, 3월 1일 3·1절과 함께 3대 기념일 중의 하나였다. 개천절과 3·1절은 당연히 기념하고 현창해야 하는 것은 이해가 가지만, 그런데 왜 나라를 빼앗긴 국치일을 기념했을까? 이는 나라를 빼앗긴 날을 기념하는 것이 아니라 이 날을 잊지 않기 위해서였다. 이날을 곱씹으면서 하루빨리 독립을 쟁취하기 위해서였다.
지난해 불거지기 시작한 ‘평택 통합 100년’은 인식의 차이로 인해 적지 않은 갈등을 겪었다. 그러나 이후 이 갈등을 치유하기보다는 자신의 인식을 합리화하려고 했다.
서로가 다른 것이 아니라 서로가 서로를 틀리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수많은 갈등이 빚어지고 있다. 이러한 갈등으로 인해 진정 해야 할 일을 놓치고 만다.
100년 전 통합은 불행하게도 타에 의해서 진행되었지만 그것을 치유하는 것은 우리의 몫이다. 그리고 그 치유는 더 늦출 필요가 없다. 하루라도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달을 볼 것인가 아니면 손가락을 볼 것인가. 어느 것을 보느냐에 따라 평택의 100년도 달라질 것이다. 때론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이 달이 아닌 돌멩이를 향할 때도 있을 것이다. 자기가 알고 있는 게 진실이 아닐지도 모른다. 항상 본질을 염두에 두고, 생각의 유연성을 길러야 하지 않을까. 앎에 대한 겸손함을 기르는 2014년이 됐으면 한다. 필자 역시 그 범주에서 벗어나지 않는다고 본다. 앎에 대한 겸손함을 배우는 한해가 되고자 한다.

※ 외부 필자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성주현 연구교수
청암대학교

저작권자 © 평택시사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