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를 직접 보고 만지고 두드리고 소리를 듣는 행위는 의과대학에서 가장 먼저 배우는 술기이고 그 술기가 포함된 진단학은 기본 중에도 가장 기본적인 과목이다. 시청타촉(視聽打觸), 그것만으로도 많은 질환을 진단하고 그에 따른 처방을 내릴 수 있다. 의과대학에는 위와 같은 네 가지 진단행위와 몇 가지의 질문 “밥 잘 먹느냐? 잠 잘 자느냐? 똥은 잘 누느냐?” 즉 문진(問診)만으로도 어느 후배들보다 정확하게 환자를 진찰하고 치료했다는 선배 선생님들의 이야기가 전설처럼 내려오기도 한다. 그런 선생님을 만나기도 어렵고 이제는 병원의 생존을 위해서도 그런 식의 진료는 어울리지 않는다.
작은 의원 하나의 개설에도 꽤나 많은 돈이 들어가고 직원들의 급여를 주기에도 가족들을 먹여 살리기에도 그런 식의 진료는 ‘무능하다’. 오히려 검사를 안 하면 안한다고 따지고 드는 환자와 보호자들에게 해명하기가 더 바쁠 것이다. 게다가 작은 의료사고라도 한 건 발생하면 자기를 방어할 수조차 없다.
세상의 흐름이 이렇다 보니 이제는 아예 ‘시청타촉’이라는 과정이 필요 없다는 시스템을 도입하려고 한다. 원격진료라는 이름으로 환자의 데이터만 전송하면 진단도 치료도 원거리에서 컴퓨터 모니터를 통해서 하겠다는 시스템이다. 미래에는 로봇을 이용한 원격 수술까지도 가능하다고 이야기 하니 지방에는 지역마다 무인진료소를 두고 환자들은 거기에 방문하여 의사가 아닌 디지털 기계 전문가인 안내자의 지시만을 따르면 된다고 까지도 말한다.
그들은 최첨단이라고 말하는데 나는 왜 그것이 디스토피아, 말세라는 느낌이 강한가? 전 국민의 건강 정보는 데이터화되어 대형자본의 컴퓨터 속에 정리되어 있고, 일부는 유전자 정보까지 고스란히 입력되어 있을 텐데 그것은 과연 정당하고 도덕적인가? 1차 보건의료의 붕괴·의료전달시스템의 붕괴·공중보건의 붕괴와 의료비의 상승으로 인한 전 국민적인 건강의 위험… 이런 공식처럼 흘러가게 될 의료현실에 대한 걱정도 걱정이지만, 우선 그것이 물질이든 자본이든 그런 대량투입에 의한 시스템이 이제는 지속가능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기 때문에 더더욱 말세의 느낌이 강한 것 같다.
대체 우리가 누리는 이 첨단이라는 것은 언제까지 가능할 것인지… 거기에 대해 비관적이다 보니 이런 시스템의 구축으로 인해 ‘시·청·타·촉’을 하는 진료가 잊힌다면, 나중에 그 시스템이 지속성을 잃어 기능을 못하게 될 때는 얼마나 많은 혼란이 야기되고 얼마나 많은 목숨들이 아주 단순한 치료조차 못 받고 죽게 될지 그런 걱정이 앞서는 것이다. 트랙터가 멈춘 농지에 가축농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없으면 농업생산성이 떨어져 많은 이들이 굶어죽을 수밖에 없듯이 검사 데이터가 없이는 환자 상태를 파악하지 못하는 상태에 첨단의 장비들이 멈추어버리면 또 얼마나 많은 이들이 고통 속에 죽어갈 것인가?
이제 미래 시대에는 감기환자에게 ‘적당한 휴식과 거르지 않는 균형 잡힌 식사’를 처방하는 의사를 만날 수 없을 것이다. 아니 이미 그런 의사를 만날 수 없고 그걸 바라는 환자를 만날 수가 없다. ‘시청타촉’에 의한 진찰은 의학 교과서에나 나오는 이야기일 뿐 그것을 행하는 의사도 없고 그것을 행할 진찰 시간도 부족하다. 이미 이렇게 무너져가고 있는 의료시스템을 그나마 남아있는 것마저도 이제 대형자본이 독점을 하겠다고 나서는 것이 ‘원격진료’를 둘러싼 대한민국 의료현실이다. 그리고 그 흐름은 원격진료에 머물지만은 않을 것이다. 본격적인 의료민영화로 가는 흐름이 시작되는 것이다. 이미 의료법인에 대해 영리 자회사를 허락하는 법안이 상정되었지 않는가?
자본이 들어온 의료·민영화된 의료시스템은 약자에 대한 보호를 거부할 것이 분명하기에 이제 미래의 대한민국 의료에는 이런 말들만이 떠돌 것이다.
가난한 자 아프지 말 것.
아픈 자 가난하다면 그냥 참을 것.
참다 참다 그냥 죽어갈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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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완호
평택지역녹색평론독자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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