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택소방조, 1909년 출범 후 공식 활동·1939년 해산
봄·가을 화재진압 훈련, 소학교 학생들과 운동도 해

겨울철이면 가장 큰 걱정거리가 화재다. 화재의 역사는 인류의 삶과 함께 하였다. 70만 년 전 구석기 시대부터 불을 사용했다. 불은 도구를 제작하거나 음식물 가공·보온 등 이로운 점도 있었지만 가옥이나 농작물을 태워버리는 손실을 끼치기도 했다. 이처럼 불은 오래 전부터 우리의 생활과 익숙하게 자리했다.
우리나라 역사 기록 중 첫 화재는 262년 신라 경주 서문에서 불이나 민가 100여 동을 소실한 것이다. 통일신라 헌강왕 때는 화재 예방을 위해 초가 대신 기와를 덮었으며, 나무 대신 숯을 사용할 정도였다. 고려시대는 겨울철에 실수로 밭과 들을 태운 자는 회초리 50대, 가옥이나 사당 등에 일부러 불을 지르는 방화자는 징역 3년에 처했다.
조선시대는 금화도감(禁火都監)을 설치해 화재를 관리했다. 우리나라 소방의 효시는 고려시대 금화관서(禁火官署)이다. 근대적 소방제도는 1894년 갑오개혁 이후에 정착됐다. 처음으로 ‘소방(消防)’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였고, 자율적인 소방조직인 소방조(消防組)가 조직되었다. 일종의 의용소방대다.
평택지역에 소방조가 조직된 것은 1909년이다. 1939년 평택소방조가 해산될 때 “탄생이라 삼년 만에”라고 했는데, 이를 역산하면 1909년이 된다. 평택에 이처럼 일찍 소방조가 조직된 것은 평택역이 들어서고 평택역을 중심으로 지금의 원평동에 일본인 거류민촌이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자율 평택소방조는 한국인과 일본인으로 구성되었다.
평택소방조와 관련된 첫 기사는 <동아일보> 1923년 1월 7일자였다. 이 기사에 따르면 이날 진위군평택소방조가 출초식(出初式)을 성대하게 거행했다는 것으로, 오늘날 새해 첫 업무를 시작하는 ‘시무식’과 같은 것이었다. 평택소방조는 봄과 가을에 화재진압 훈련을 갖기도 했으며, 소학교 학생들과 20여 경기를 함께 갖기도 했다.
훈련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4시까지였다. 30년간 평택의 화재를 예방하고 진압했던 평택소방조는 1939년 10월 초에 해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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