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현덕면 문화유적조사를 나간 길에 여선재에 들렀다. 여선재는 예술가 김석환선생 부부가 운영하는 작업실 겸 식당이다. 간단하게 점심을 먹은 뒤 김석환 선생과 찻상을 마주하고 마을이야기·마안산예술제·근래에 재현했던 풍어제 이야기를 나누던 중에 문득 “평택호관광단지 사업으로 여선재가 수용되고 나면 계속 평택에 남아 있어야할지 고민이다”라는 말씀을 하셨다. 선생의 말은 예술에 대한 이해, 예술가들에 대한 대우가 척박한 평택시에 자신의 나머지 인생을 맡겨야 할 것인가를 묻는 말이었다. 필자는 그 말을 듣고도 “힘드셔도 우리지역에 계속 남아계셔야 합니다”라는 말을 내뱉지 못했다. 평택이라는 지역에서 그것이 얼마나 가혹한 말이며, 그가 얼마나 가슴을 태워가며 지역예술활동을 했는지를 알기 때문이다.
며칠 전 토요일에는 수원 행궁에서 대학동문 모임이 있었다. 행궁을 거쳐 화성을 답사하고 팔달문으로 내려오는데 비교적 수원을 자주 방문하는 필자도 생소할 만큼 거리가 바뀌어 있었다. 행궁 옆 골목골목에서는 예스러운 문화의 냄새가 진하게 풍겼고 거리의 간판들은 예술적으로 잘 정돈된 상태였다. 서장대에서만 내려다 봐도 쉽게 눈에 띄는 도서관·박물관들도 여러 개였다. 수원이 문화의 도시로 거듭난 배경에는 고 심재덕 전 수원시장과 염태영 현 시장의 생각과 노력이 큰 몫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을 알 만한 사람은 알고 있다. 최근에는 시민들이 돌아가신 심재덕 전 시장을 잊지 못해 그 분의 발자취를 쫓아 답사를 다녀왔다고도 한다. 필자는 그 소식을 들으며 수원시민들은 참 행복하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역사는 영원히 시민들의 가슴에 남아 문화적·예술적으로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시장(市長), 어린이들의 가슴 속에 표상이 되는 지도자를 둔 공동체가 행복하다는 사실을 말해주기 때문이다.
공동체의 학문과 문화 그리고 예술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네 가지 요소가 조화를 이뤄야 한다. 먼저 경제적으로 잘 사는 도시 뿐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풍요롭고 영감을 주는 도시를 만들 수 있는 지도자를 갖는 것이다. 시민들이 자신의 도시에 대하여 애정과 자긍심을 갖도록 만들 수 있는 시장, 시민들이 진정으로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지를 아는 지도자가 필요하다는 말이다. 가치 있는 것을 생산하여 지역사회와 나누고자 하는 학자들과 문화 예술가들, 이들의 학문과 문화예술의 가치를 인정하고 지지하며 향유할 줄 아는 시민들의 수준도 매우 중요한 요소다. 여기에 문화예술인들이 맘껏 뛰놀 수 있는 창의적 문화예술 공간이 어우러진다면 더 할 나위 없을 것이다.
필자가 조화 운운하지만 여기에도 우선순위가 있다. 훌륭한 지방자치단체장은 4년마다 뽑을 수 있고, 전시관이나 공연장·박물관·도서관은 돈만 있으면 지을 수 있지만, 학자나 예술가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오랜 시간과 인내심을 갖고 물을 주고 거름을 주어 키워내지 않고서는 결코 얻을 수 없는 것이 사람이기 때문이다. 지원이 미흡하고 맘껏 뛰놀 공간조차 얻지 못해 번민하는 선생의 모습은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그것은 평택지역에 연고가 없는 다른 문화 예술가들의 고민일 수도 있다. 한권의 책·수준 높은 전시회·수준 높은 공연은 쉽게 얻을 수 없는 것들인데 우리지역이 곁에 머물고 있는 명망 있는 예술가마저 떠나게 만든다면 앞으로는 무엇으로 문화예술발전을 도모할 것인가 답답하기만 하다.
필자는 평택시가 문화예술가들과 학자들의 천국이 되기를 소망한다. 유수한 예술가들이 평택에 뿌리를 두고 평생 동안 살아가기를 꿈꾸었으면 좋겠다. 한 사람의 학자, 한 사람의 문화 예술가가 소중하게 대접받고 그들이 생산한 작품으로 시민들이 행복해지는 도시, 그런 도시를 꿈꾼다.

 

 

 

 

 

김해규 소장
평택지역문화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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