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택·효명·태광고교 기라성 같은 역도인 대거 배출
열악한 환경에서도 금메달 꿈 놓지 않고 최선 다해
황우원 아시안게임 2연패, 한국 신기록 30여회 경신

▲ 평택고등학교 이명구 코치가 제34회 전국체육대회가 열린 서울공설운동장에서 역기를 들어 올리고 있다(1958년)
평택 역도의 태동은 평택고등학교에서 시작된다. 역도가 대중화되지 않았던 당시에도 평택고등학교는 많은 전국 대회나 한일친선역도대회에서 금메달을 딸 정도의 훌륭한 역사들을 길러내고 있었다. 그리고 비록 메달권에 진입하지는 못했지만 올림픽에 출전시킬 정도의 인재들도 많았다.
1950~60년대 당시 역도 기구들이란 그야말로 형편없는 수준이었다. 어린 선수들의 경우에는 철제 원반 대신 맷돌이나 시멘트로 만든 원반을 끼워 만든 역도기구로 운동하는 경우도 태반이었다. 그래서 1950년대 효명중학교에서는 역도부 학생들을 가리켜 ‘맷돌짝 부원’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고등학교 선수들의 경우에는 미군부대에서 사용하던 역도 기구들 중 사용기한이 지나 폐기처분되어 시중으로 흘러나오는 것들을 지도자나 학교에서 구입해 사용하곤 했다.
배고픈 시절 지도자들은 선수들의 영양보충을 위해 당시만 해도 귀한 콩이나 계란 등을 어렵게 구해 먹이기도 했으며 고기를 쉽게 먹을 수 없었던 70~80년대엔 미숫가루로 선수들의 단백질을 보충하거나 체중을 불리기도 했다.
평택 역도는 1980년대 효명고등학교에 와서 전성기를 이룬다. 당시 효명고등학교 연습실 상황도 열악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창고 같은 연습실에서 붉게 녹이 난 역도기구로 연습하면서도 선수들은 금메달의 꿈을 놓지 않았다. 86아시안게임과 88올림픽을 계기로 한국 역도가 한창 붐을 이루던 것과 때를 같이해 평택에도 기라성 같은 역도인들이 대거 배출되기에 이른다. 대회 출전만 했다하면 금메달 서너 개쯤은 통상적으로 목에 걸고 돌아오던 시절도 그때였다.
1996년, 효명고등학교가 학교 사정으로 역도부를 해체하면서부터 평택 역도의 발자취는 자연스럽게 태광고등학교로 이어지게 된다. 효명 역도부의 활약을 지켜보며 꿈을 키워온 태광고등학교 역도부는 현재까지도 그 맥을 이어 조유미, 고석현, 정지연 등 훌륭한 선수들을 배출하고 있다.

평택고등학교(1960~현재)
평택고등학교 역도부는 1955년에 창단했다. 당시 유도인 출신이었던 최병익 평택교육장의 주도로 당시 서울에서 역도 대표로 활약하던 이명구 선수를 영입해 선수들을 훈련시켰다.
평택고등학교 역도부는 60년대 후반에 이르면서부터 빛을 발하기 시작한다. 이명구 선수의 제자인 최인재 선수는 1970년 한국 신기록을 수립했으며 최인재 선수의 동생인 최문재 선수는 1969년 한국주니어 신기록 2개와 1970년 한국주니어 신기록 1개, 1970년 국내대회에서 세계주니어 신기록을 수립했다. 또한 장철재 선수는 1964년 전국역도선수권 학생부 금메달, 1969년 전국체전에서 금메달을 획득하기도 했다. 김대주 선수는 1970년 태국·방콕 제6회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획득했으며 박명구 선수는 안일상업고등학교에서 체육교사를 하던 중 1975년 한일친선역도대회에 출전해 대회신기록을 수립하며 금메달을 획득했다. 특히 김대주 선수는 금메달 획득 당시 명지대 재학 중 아들을 둔 가장 선수로 가난한 집안을 돕기 위해 일시 운동을 중단하고 인근 미군부대에 다니다가 주위 선배들의 권유로 69년부터 다시 운동을 시작해 금메달을 획득했다는 기사가 동아일보에 실리기도 했다. 김칠봉 선수는 1984년 LA올림픽과 1984년 아시아역도선수권대회 출전, 1985년 아시아역도선수권대회에서 4위의 성적을 기록하기도 했다.
현재 태릉선수촌 국가대표 강화위원이자 대한역도연맹 총무이사를 역임하고 있는 이광현 씨는 선수시절 1980년 낫세르배 국제역도대회에서 금메달을 획득하고 1982년 뉴델리 아시안게임과 1983년 한일친선역도대회에 출전하기도 했다. 또한 박승규 선수는 1969년 전국주니어신인선수권대회에서 금메달에 이어 1973년 전국역도선수권대회에서도 금메달을 획득했다.

효명중·고등학교(1980~1990년대)

▲ 효명중학교 역도부원들(1959년)
효명중·고등학교 역도부는 1976년에 창단해서 1996년까지 이어졌다. 효명중·고등학교의 간판 역도인이자 평택 역도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선수는 단연 황우원 선수다. 체조로 운동을 시작했던 황우원 선수는 효명중학교 3학년 때 역도로 종목을 바꾸면서부터 재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1983년 한국 신기록 수립을 시작으로 1984년 아시아신기록 수립, 1986년 한국 신기록 수립, 86아시안게임 금메달과 90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획득해 아시안게임 2년 연속 금메달의 주인공이 되기도 한 황우원 선수는 1990년까지 한국 신기록을 30여회나 경신하는 성적으로 효명의 이름을 빛냈다.
황우원 선수 이후에도 효명출신 선수들의 활약은 계속 이어졌다. 박태민 선수는 1985년에 혼자 한국주니어신기록 1개와 학생신기록 4개를 수립하는 기염을 토해 대한역도연맹 최우수 선수로 선정되기도 했다. 또한 1988년에는 한국 신기록 5개를 수립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전상석 선수는 1984년 중학생 신기록 6개를 수립했으며 1987년에는 당시 고교생의 신분으로 한국 신기록을 경신해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또한 1992년에는 아시아신기록을 경신하고 1982년에는 아시아역도선수권대회 3관왕을 차지하기도 해 연일 신문지상을 장식하기도 했다.
이밖에도 당시 활약하던 주영조·신창하·김덕림·최철원·권처문·최철화·평순덕 선수 등은 각종 대회에서 메달을 휩쓸어 효명 역도사를 기록했다.

태광중·고등학교(1990~현재)

▲ 태광고등학교 역도부원들(1990년대)
태광중·고등학교 역도부는 1988년에 창단해서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열악한 환경으로 인해 한때 몇몇 선수들은 효명고등학교 역도부 연습실에서 운동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효명 역도부 해체를 계기로 자체적으로 영입한 지도자를 통해 본격적으로 운동을 시작하게 된다.
태광고등학교 역도사에서 빠질 수 없는 선수는 현재 고양시청 소속 장미란 선수를 지도하고 있는 최종근 코치다. 최종근 선수는 1995년 아시아주니어역도선수권대회에서 금메달을 획득하고 1995년 세계주니어선수권대회 2위, 1997년 한국 신기록 수립, 1997년 세계선수권대회 2위, 1998년 한국 신기록 4개 경신, 1998년 방콕 아시안게임에서 동메달을 획득하는 뛰어난 기량을 선보였다.
태광 역도부의 특징은 여자 역도선수들을 배출했다는 데 있다. 당시만 해도 여자 역도선수는 그리 많지 않았으나 당시 여자 선수들을 키움으로써 여자 역도부는 태광의 자랑으로 우뚝 서 2012년 현재까지도 각종 역도대회에서 금메달을 획득하며 꾸준한 역량을 과시하고 있다.
(다음호에 계속)

저작권자 © 평택시사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