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향기 품고 있는 산골마을 ‘구가곡’

“의식수준 높아지면서 갈등도 점점 커져”
“기업유치, 지역개발과 함께 이뤄졌으면”

 
“이번이 다섯 번째 이장을 맡는 겁니다. 처음에는 아무것도 모르고 시작했고 겁도 없이 동분서주하며 일을 했었는데 알면 알수록 어려운 것이 이장일인지라 요즘은 더욱 조심스럽기만 합니다. 모르는 사람들은 까짓 이장일이 뭐가 어렵냐고들 하지만 직접 맡고 보면 그런 말을 하기가 쉽지 않을 겁니다”
1982년 당시 29세 나이로 진위면 최연소 이장이 되었던 권오일 가곡2리 이장은 2013년 1월 다섯 번째 이장직을 맡으며 화합을 최대의 과제로 꼽았다.
“많은 것이 달라졌습니다. 예전에는 이장이 무슨 말을 하면 마을사람들은 대부분 따라주곤 했는데 지금은 많이 보고 듣고 해서인지 자신들의 의견을 많이 말하곤 합니다. 그만큼 주민들의 의식수준이 높아진 것이죠”
30여 호 80여명에 불과할 정도로 작은 규모의 마을이지만 큰 마을보다 더 어려운 것은 몇몇 사람의 주장만으로도 화합이 흔들리기 때문이라는 것이 권오열 이장의 경험담이다.
“새롭게 이장직에 오르고 보니 마을의 가장 큰 문제는 먹고 입고 쓰는 것이 아니라 알게 모르게 작용하고 있는 마을 사람들 간의 갈등이더군요. 심지어는 마을 노인정에서도 서로 등을 돌리고 말도 안하는 등 그 정도가 상당히 심했습니다”
 
매일같이 마을 곳곳을 방문하고 소통을 꾀한 권오열 이장의 노력 덕분에 지금은 많은 부분이 해소되었지만 아직도 남아 있는 갈등의 찌꺼기를 덮고 예전의 일등 화합마을로 돌아가기 위해 권오일 이장은 짧은 겨울 해를 쪼개가며 해결사 노릇에 열중하고 있다.
“마을에 빈 집이 많습니다. 주인이 있어 맘대로 허물지도 못하고 흉물로 버려져 있죠. 행정적인 지원이 필요한 부분입니다. 먹거리도 중요하지만 주거 환경도 무시할 수 없는 것 아닌가요?”
오래된 느티나무에 담긴 옛 추억
진위면 가곡2리는 가곡리 7개 마을 중 가장 오래된 마을로 자연마을 명칭으로는 구가곡(舊佳谷)이라고 불린다. 최근 들어 그 세가 약해지기는 했으나 예부터 안동 권 씨와 안성 이 씨가 터를 이루고 살아온 유서 깊은 마을이다.
“구가곡이라는 말은 신가곡이라고 불리는 가곡1리에 비해 먼저 생겼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저희 마을에서는 구가곡이 아닌 원가곡으로 불러야 한다고 말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진위현이 평택의 모태가 되었던 것처럼 가곡리의 출발은 저희 마을인 셈이죠”
구가곡엔 당제나 두레와 같은 전통이 남아 있지 않다. 가구 수가 적었던 탓이기도 하지만 일찍부터 기독교의 영향을 받은 것도 한 이유다. 다만 권 씨와 이 씨 종가가 남아있어 옛 영화를 보고주고 있을 뿐이다.
“지금은 광역상수도가 들어와 사용하고 있지 않지만 집집마다 하나씩 우물을 가지고 있었죠. 규모는 작아도 협동심만은 최고였는지라 체육대회 같은 마을 대항 시합을 하면 언제나 트로피를 타오곤 했을 정도로 근처에서는 단합이 잘 되는 마을로 유명했습니다”
구가곡 마을 한 가운데는 평택시 보호수로 지정된 느티나무가 마을 사람들의 추억을 머금고 250년의 세월을 지키고 있다. 마을 사람이라면 여름한철 더위를 나무 그늘아래서 느티나무에 얽힌 사연들을 이야기하며 식히곤 한다.
“지금은 나무를 보호한다고 시멘트로 구멍을 막아놨지만 어린 시절 이 나무는 동네 꼬마들의 놀이터였습니다. 속이 텅 빈 나무속을 드나들며 놀던 시절이 엊그제만 같은데 이제는 당시 친구들은 하나둘 사라지고 마을의 정기도 사그라진 것 같아 안타까운 점이 많습니다”
 
지역 유대감 느낄 수 있는 정책 필요
구가곡 주민들은 진위2산단 개발로 인근 삼남대로가 끊겨 통행에 불편을 겪게 될 것을 가장 우려하고 있다. 때문에 새로운 도로 개설에 대한 요구가 일고 있으며 이에 대한 평택시의 뚜렷한 입장표명이 절실한 과제라고 입을 모은다.
“개발도 좋지만 역사를 지닌 도로가 사라진다는 점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대기업 유치와 역사를 함께 지켜나가는 방안을 생각할 수는 없었는지 계획을 입안한 사람들이 한 번 더 생각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구가곡 주민들은 대부분의 생활을 오산시에 의지하고 있는 형편이다. 지리적으로 평택 시내권과 멀리 떨어져 있는 반면 오산시 상권과는 차로 10분 이내에 닿을 수 있는 지근거리에 있기 때문이다. 학군 배정도 오산중학교와 진위중학교를 모두 선택할 수 있지만 많은 사람들이 오산중학교를 선택할 정도로 지역적인 유대감이 옅은 상황이다.
“이런 말을 하면 어떨까 싶지만 많은 마을 사람들이 ‘우리는 의붓자식’이라며 한탄하곤 합니다. 그동안 평택시에서 이곳에 관심을 덜 가진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LG전자가 들어오면 뭐합니까. 정말 마을 사람들이 바라는 것은 그에 따른 지역개발이 함께 이뤄져야한다는 것입니다. LG타운 건설과 같은 것이 바로 저희가 바라는 것이죠”
수백 년 살아온 터전을 지키며 사는 이들이 모인 곳, 그 흔적을 보듬고 앞날을 기약하기 위해 노력하는 마을사람들의 겨울은 한껏 움틀 봄을 기다리는 새순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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