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심 없는 순수와 화합의 마을 ‘성너머’

“유유자적한 노후를 보내기 좋은 곳”
“장수, 작은 행복에도 웃을 수 있어”

 
“저는 참 복 받은 이장입니다. 사실상 마을 막내라고 해도 될 정도인데 어르신들은 우리 이장 우리 이장 하면서 대우해주고 매사에 협조를 아끼지 않습니다. 사람들 사이에 갈등도 없고 다툼도 없어서 내부적인 일은 특별히 어려운 점이 없을 정도죠”
지난 2011년 마을 어르신들의 추대로 이장직에 올라 이제 임기 4년차를 맞이한 이계덕 방림2리 이장은 유일한 고단함은 잔심부름이 많다는 것이라며 행복한 웃음을 짓는다.
방림2리는 인근 마을에 비해 자기 땅에서 농사짓는 자경농 비율이 높다. 개발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아 외지인의 손길이 적었기도 했지만 조상 대대로 내려온 땅에 대한 애착이 유달리 강하기 때문이다.
“아마 평택 지역에서 지가가 가장 오르지 않은 곳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어찌 보면 낙후되고 소외된 곳으로도 볼 수 있지만 크게 욕심을 부리지 않고 유유자적한 노후를 보내기에 우리 마을처럼 좋은 곳도 없죠”
방림2리는 90줄에 접어든 어르신들이 밭일 논일에 나서는 것은 낯선 풍경이 아니며 70대 중후반을 넘은 사람들이 어르신행세를 하지 못할 정도로 장수하는 사람들이 많다.
“크게 부유하지는 않지만 먹고사는 것은 부족함이 없는 편입니다. 예전에 보릿고개를 겪던 것을 생각해보면 지금은 호사스럽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죠. 아쉬운 점이 없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욕심이라는 것이 어디 하나 가진다고 채워지는 것은 아니더라고요”

 
집성촌, 성은 달라도 모두가 형제
방림리는 5개 행정 마을로 나뉘어 있으며 그 중 1리와 2리가 가장 중심지로 예부터 ‘살치미’라는 지명으로 불렸다. 고려시대부터 칼과 화살을 만들었던 것에서 유래한 지명으로 옛 성벽을 기준으로 1리는 아랫살치미·2리는 윗살치미로 나뉜다. 특히 2리는 원주민들 사이에서는 방림2리라는 행정명보다 ‘성너머’라는 지명으로 익숙하다.
“방림(芳林)이라는 한자에서 나타나듯이 우리 마을은 예전에는 숲이 우거진 산지였습니다. 소나무 숲이 울창하고 아름답기로 유명했었죠. 하지만 농경지 확보에 대한 노력이 많은 것을 바꿨습니다. 다른 지역은 평택호방조제 공사와 간척으로 지형이 바뀌었지만 이곳은 산지를 깎아 농지를 만들어 지형이 바뀐 경우죠”
‘성너머’는 대덕산 동남쪽에 자리한 산간마을로 농경지가 좁아 벼농사보다는 밭농사가 주종을 이뤘었다. 그러나 대규모 개간사업이 이어지면서 이제는 산골의 풍경은 흔적을 찾기 어렵고 잘 정리된 넓은 들이 마을 앞에 펼쳐져 있는 전형적인 농촌마을 형태를 띠고 있다.
“개간이 많이 이뤄지기는 했지만 아직도 다른 마을에 비하면 농지비율이 적은 편입니다. 인근 희곡리나 내기리 쪽에 농지를 소유한 사람이 많아 원정 농사를 짓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평택호방조제 공사 이후 물 걱정은 안한다는 것이죠”
고려시대부터 이어온 유구한 마을 역사에서 보듯이 ‘성너머’엔 두레와 당제 같은 전통행사가 많았다. 두레는 농업환경 변화에 따라 흔적이 모두 사라졌지만 이웃 여러 마을과 함께 벌이는 대덕산 당제는 아직까지 평택에서 원형을 잘 유지하며 전통의 맥을 이어오고 있다.
‘성너머’는 함평 이 씨가 대성으로 아직도 집성촌의 성격이 잘 유지되고 있다.
“다른 성씨도 지금은 제법 됩니다. 하지만 성이 다르다고 해서 배척하거나 차별하지는 않습니다. 외지인 유입이 거의 없고 오랜 세월 함께 생활하다보니 모두다 형제 일가처럼 생각하고 가까이 지내죠. 그런 점에서 화합은 두말할 나위 없고요”

마을회관, 없는 이의 소박한 욕심
평화롭기만 할 것 같은 ‘성너머’지만 개발로 인한 영향이 전혀 없을 수는 없어 포승화력발전소로 인한 간접적인 영 향은 마을사람들의 생활에 적지 않은 영향을 주고 있다. 하수관로가 별도로 설치되어 있지 않아 생활하수가 그대로 하천에 유입되고 있는 것도 문제다.
“처음엔 잘 느끼지 못했는데 화력발전소가 들어선 이후 과일 생육에 점차 문제가 생기고 있습니다. 마을에 직접 들어선 것은 아니지만 인근의 개발로 인해 지하수도 오염되고 있죠. 예전에는 물 좋기로 유명했는데 지금은 지하수로는 밭농사나 이용할 수 있을 뿐 식수로는 전혀 사용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결국 광역상수도를 먹어야 하는데 비용이 만만치 않아서…”
특별히 바라는 것이 없다며 손사래를 치던 이계덕 이장은 조심스레 마을 도로 이야기를 꺼내며 마음속에 품은 소망 한 가지를 이야기한다.
“도시가스가 들어오면 정말 좋죠. 하지만 더 시급한 것은 마을 도로 확장입니다. 도로가 좁은 탓에 차량 교행은 물론 사고 위험도 항상 도사리고 있거든요. 내기리까지 연결되는 도로 확장계획이 수립되긴 했는데 막상 시작할 기미는 보이지 않으니 답답하기만 합니다”
마을회관은 지은 지 20년이 훌쩍 넘어  낡고 좁아 신축을 해야 하지만 자부담액을 구하지 못해 신청조차 하지 못하고 있을 만큼 ‘성너머’의 마을 형편은 녹녹치 않다.
“다들 먹고 살기 빠듯한 농촌 형편에 회관을 짓는다고 돈을 걷을 수도 없는 일이죠. 기금이 없어 어르신들 여행 한 번 제대로 보내드리지 못하고 있으니 이장으로서 죄송스러울 따름입니다. 이것도 욕심이라고 한다면 어쩔 수 없지만 이장을 마치기 전에 새로운 마을회관을 건축해 어르신들이 편하게 생활하는 모습을 보았으면 합니다”
남들이 가진 것에 눈 돌리지 않고 자신들의 작은 행복에 웃음 짓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성너머’ 그들이 갖는 욕심 아닌 욕심이 이뤄지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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