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수학능력시험 만점자가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입시에서 탈락했다는 소식이 세간의 화제다. 수능만점이면 어느 대학 무슨 학과이든 합격이라는 것이 우리사회의 통념인데 이번 결정은 통념을 뒤엎은 일대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필자는 서울대학교의 세세한 전형과정을 알 수 없지만 이번 결정은 지극히 정상적인 판단이라고 생각된다. 교육이란 모름지기 지(知)·정(情)·의(意)를 갖춘 전인적 인재를 키우는 과정이지, 지식과 정보가 가득 담긴 우수한 공산품을 생산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필자는 평택지역 문화유산을 답사할 때면 반드시 진위향교나 평택향교를 포함시킨다. 그 대상이 학생이나 교사일 때는 더더욱 그렇다. 교육은 미래를 책임질 아이들을 동량(棟樑)으로 키우는 과정이다. 조선시대 지방교육기관이었던 향교(鄕校)에는 당시 사람들의 교육에 대한 깊은 철학이 담겨 있다. 먼저 향교의 입지(立地)는 고을 안에서 가장 풍광이 수려한 곳에 두었다. 향교 앞에는 홍살문과 하마비를 세워 미래의 샛별을 키우는 장소임을 알렸다. 대성전에서의 제의(祭儀)를 통래 배움의 겸손한 자세를 가르쳤으며, 교수-학습이 이뤄지는 교실을 ‘명륜당(明倫堂)’으로 명명하여 학문의 본질은 지식이 아니라 인간다움을 깨우치고 실천하는 것임을 천명하였다. 이 같은 높은 교육적 이상과 세심한 배려는 우리시대가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덕목이다. 
지난 연말 송년회에서 만난 후배가 대학시절 단돈 7000원으로 12박 13일 동안 강원도와 동해안을 여행했었다는 조금은 충격적인(?) 이야기를 하였다. 그 이야기가 가슴에 남아 담임반 아이들에게 단돈 7000원으로 12박 13일을 여행할 수 있는 방법을 물었다. 뜬금없는 질문에 머리를 굴리던 아이들은 도무지 계산이 나오지 않자 ‘뻥치지 마세요’라고 말하고는 고개를 돌려버렸다. 후배는 동문들 사이에서 인성이 좋기로 소문난 친구다. 사람 좋아하고, 관계 맺기를 좋아하며, 나눔과 섬김에 넉넉하다. 후배의 여행비법은 긍정과 넉넉한 성품에 있었다. 머리로 하는 여행이 아니라 가슴으로 여행했다는 말이다. 그에게는 여행 중에 만난 사람들이 모두 친구였고 형제였다. 도움을 받고 도움을 주며 특유의 뜨거운 가슴과 친화력으로 사람들 사이로 다가가다 보니 7000원으로 시작한 여행이 13일이 지났을 때에는 4만 3000원을 남기는 여행이 되었다고 한다.
사회가 발달할수록 가슴이 넉넉하고 창의적인 인간을 필요로 한다. 교육수준이 낮았던 과거에는 남들이 모르는 지식을 조금 아는 것만으로도 지식인이나 전문가로 대우받을 수 있었지만, 인터넷이 발달하고 지식포화상태에 이른 오늘날에는 남들보다 조금 더 알고 있는 것만으로는 건강한 삶과 존경받는 지식인이 될 수 없다.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에 불합격한 학생처럼 지식포화상태 사회에서 남들보다 나은 점수를 얻기 위해 더 많은 지식을 외우는 것 만으로는 미래사회가 필요로 하는 참다운 인재가 될 수 없다는 말이다.
2월은 졸업식 시즌이다. 졸업식은 학교교육에 있어 가장 엄숙하고 의미 있는 행사다. 부모는 지난 시간의 노고를 위로받고, 학생들은 또 다른 세계로 나아가는 출발선에서 격려와 희망을 꿈꾸는 시간이다. 하지만 오늘날의 공교육에서는 조선시대와 같은 높은 이상과 세심한 배려를 상실한 지 오래되었고, 점점 가혹해져가는 현실에서 젊은이들의 꿈은 구겨진 휴지조각이 되어버렸다. 어쩌면 비싼 돈을 들여 대학교를 졸업하고도 비정규직으로 희망 없는 하루하루를 살지도 모른다. 그래서 아이들은 컴퓨터 게임에만 몰두하는 걸까?


 
김해규 소장
평택지역문화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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