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고서저의 평택, 높진 않지만 어머니 품 같아
평택 역사 알고 자긍심·정체성 갖게 해준 시간


 
평택에서 태어나서 자라고, 평택에서 공무원으로 살아온 세월이 어언 46년이 되었다. 짧지만은 않은 긴 시간이다. 얼마 전 차를 타고 가다가 재빼기를 지나는 길에 배 밭이 눈에 들어왔다.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친구들과 손잡고 오솔길을 걷던 추억, 깜깜한 밤 반딧불이 날아다니던 원두막에서 새하얀 배꽃을 바라보던 기억들.
핸들을 틀어 추억의 오솔길 쪽으로 향했다. 굽이굽이 오솔길은 사라지고 포장 대로가 쭉 뻗어 있었다. 옛 모습을 찾아볼 수 없어 서운하고 아쉬웠다. 만감이 교차했다. 그리고 묻고 싶었다. 내 고장 평택의 오래전 모습은 어땠을까? 이런 질문을 시작으로 평택의 역사와 문화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러던 중 평택시 온누리학습동호회 ‘평택역사 둘레길 걷기’ 주최로 평택지역문화연구소장이며 아이들에게 역사를 가르치시는 김해규 선생님으로부터 ‘왜 평택(平澤)인가?’라는 주제의 강의를 듣게 되었다. 옛 모습을 찾기가 쉽지 않은 오늘의 내 고향 평택에 대한 기억을 찾고, 앞으로의 평택이 시민들에게 어떤 모습으로 남아야 할까?
평택은 평야가 넓고 산이 낮다. 평야 사이에 크고 작은 하천이 흐른다. 우리나라에선 쉽게 볼 수 없는 지형이다. 사람들이 농사짓고 살아가기엔 참 좋은 땅이었다는 내 고향 평택.

하나, 산
평택은 동고서저의 지형이다. 평택에서 가장 높은 무봉산이 208.6m 라고 한다. 다른 지역에선 언덕이나 구릉이 우리 평택에선 산이다. 부락산과 덕암산 자락은 조선시대 평택지역에서 가장 살기 좋은 땅이었다고 한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정도전 유적·원균 유적도 위의 산기슭에 있다. 정월대보름 백운산 정상에서 월곡동 주민들이 소원을 빌었으며, 산 아래에는 행천도예가 있어 매년 5월에 혼불제를 거행한다. 부락산은 송탄의 주봉이다. 오성면 양교리의 오봉산은 본래 5개의 봉우리가 짝지어 오봉이라 하였다. 어르신들의 입으로 전해 내려오는 설화가 많다. 고등산과 마안산 정상에는 광덕일대의 마을에서 섬기는 당목과 성황당이 있었으며, 산기슭에도 절터와 서낭당이 있었다. 이외에도 평택에 많은 산이 있다. 높고 웅장하진 않아도 마음을 품고 사람들의 삶에 도움을 주는 어머니처럼 푸근한 산들, 모두 다녀보리라 다짐을 해본다.

둘, 평야와 하천
평택은 예로부터 들이 넓고 하천이 발달하였다. 큰 하천으로는 안성천과 진위천이 있고 오산천·황구지천·통복천 등 34개의 하천이 있다. 안성천은 경기도와 충청도의 경계였고 한천·남천·대천 등으로 불렸다. 진위천은 장호천·귀천 등으로 불렸다.
평택의 역사는 ‘간척의 역사’라고 말할 수 있다. 1974년 평택호방조제가 준공되기 전까지만 해도 내륙으로 바닷물이 유입되고 농사를 지을 수 없는 갯벌과 황무지가 많았다. 조선후기 간척의 주체는 궁실과 왕족·국가기관·권세가들이었다. 궁실에서 간척한 땅들은 ‘궁방전’이라고 하였는데, 지금도 안성천과 진위천 변에는 궁리·안궁리·신궁리·평궁리 등 궁자가 들어간 지명들이 있어 옛 역사를 말해준다. 지명은 단순히 땅이름이 아니고 선조들의 삶과 역사·문화가 녹아있다는 사실을 새롭게 알게 되었다.
일제강점기에는 오성들과 같은 대규모 간척이 이뤄졌으며, 한국전쟁 뒤에는 전쟁 피난민들을 동원하여 도두리들·중심리들·개척단들 등 많은 지역이 간척되었다. 간척사업은 1974년 평택호 방조제가 준공되고 경지정리사업이 실시되면서 마침표를 찍었다. 현재 평택평야는 농업용수와 기름진 옥토를 배경으로 질 좋은 슈퍼오닝 쌀을 생산하고 있다.

셋, 철도와 변화
1905년 1월 1일 경부선철도가 개통되었다. 평택역과 서정리역이 설치되면서 사람과 물자의 통행이 철도를 중심으로 재편되었다. 평택역의 가장 큰 기능은 평택평야에서 생산되는 쌀과 군물포로 들어오는 해산물의 집적과 운송이었다. 쌀과 해산물이 평택역으로 집중되면서 철도역 부근에는 평택장이 형성되었다. 이와 같은 변화는 서정리역도 마찬가지였다.
평택의 중심지는 진위면과 팽성읍→평택역 서부지역(원평동)→평택역 동부지역(신평동)으로 변화되었다. 평택은 농업도시에서 산업도시로 빠르게 변하고 있다. 고덕국제신도시가 완성되면 평택은 또 어떤 모습으로 변화할까?
평택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다양한 역사와 문화 이야기를 갖고 있는 멋진 도시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값진 역사와 문화 콘텐츠를 많은 사람들과 오랜 시간 함께 했으면 좋겠다. 강의실에 모인 우리들은 평택 구석구석 찍은 사진들을 보면서 산의 이름을 부르고 마을의 이름을 부르면서 우리가 얼마나 소중한 것들을 무심히 흘려버리는지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평택이 고향인 나도, 평택에서 살고 있는 우리들 모두 우리의 지금을 있게 한 평택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 좀 더 많은 관심과 깊은 애정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강의는 내게 평택의 역사를 제대로 알고 자긍심과 정체성을 갖게 해준 소중한 시간이었다.
이런 기회를 마련해준 평택시 온누리학습동호회 평택역사 둘레길 걷기팀과 김해규 선생님께 감사 인사를 드린다. 평택시 공무원으로서, 시민들이 평택의 역사와 문화를 자긍심으로 느낄 수 있는 고품격 문화도시 평택을 만들기 위해 더욱더 열정을 갖고 노력해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나처럼 평택을 고향으로 태어난 두 딸아이와 손을 잡고 평택의 산길을 걷고, 마을과 역사 유적지를 탐방하며 문화도시에 살고 있다는 기쁨을 함께 누리고 싶다.


 
이호경 주무관
평택시
공보담당관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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