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 소재 청수조(淸水組)에서 수주
총공사비 5만 6000원, 2월 8일 착공

“다년간 현안에 있는 평택공립보통학교의 증개축 문제는 작년부터 기성회의 조직 결성을 보게 되어 아연 맹활동이더니 면민으로부터의 기부 3만원과 도의 보조를 얻어 요즈음에 드디어 그 실현을 보게 되었다 한다. 신축할 교사는 2층 기와집으로서 학급수 16학급에 수용할 학생 1천여 명에 달할 터인 바, 지난 8일에 총공사비 5만 6천원에 천안(天安) 청수조(淸水組)가 낙찰하여 즉시 공사에 착수하게 되었다 한다.(동아일보 1938년 2월 20일)”
평택공립보통학교(현 평택성동초등학교)는 1913년 3월 25일 설치인가를 받았다(<조선총독부관보> 제192호). 위치는 충청남도 평택군 읍내면 객사리(현 평택시 팽성읍 객사리)였다. 1920년대 들어 식민지 조선에서 교육열이 크게 일어났다. 평택에서도 역시 교육열은 적지 않았다. 모집 학생 수가 한정되었고 입학할 학생의 30~40%만 수용하였기 때문에 늘 교실이 부족하였다. <조선중앙일보>에 의하면, 평택공립보통학교는 1936년 2월 교사증축기성회를 조직하였다. 교사 증축비는 6만 880원으로 공사비의 50%는 지역민의 기부금, 나머지 50%는 경기도에서 보조하기로 하였다. 이해 5월 11일 증축 허가가 났고, 그때까지 지역민 기부금으로 2만원을 모금하였다. 이로 인해 학생 80명을 증원할 수 있었다.
평택공립보통학교 증축공사는 1938년 2월에 신축했다. 신축 공사는 ‘청수조(淸水組) 천안출장소’에서 맡았다. 청수조는 일본인 토건회사로 1915년 10월 일본에서 설립되었다. 우리나라에는 1920년 10월 20일 지사 형식으로 설립돼 본사는 서울에, 지방에 지점을 두었다.  평택공립보통학교를 신축하던 해인 1938년 3월에는 전매국 청사를 27만 6000원에 수주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청수조는 1927년 김제에서 공사장 인부들의 임금을 제대로 지급하지 않아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기도 했다. 대형 인명사고도 발생했는데, 1938년 12월 26일 안동에서 경경선(京慶線) 철도공사를 하던 중 터널이 무너져 사망 7명·중상 10명·경상 7명 등 사상자 24명이 발생하였다. 평택공립보통학교는 1938년 평택성동심상소학교로, 1941년 평택성동국민학교로, 1996년 성동초등학교로 개칭돼 오늘에 이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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