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스·라밧

페스(Fez)
아프리카 모로코 중앙 북부의 산기슭에 성벽으로 싸여 있는 신비의 도시 페스(Fez)에 도착했다. 페스는 모로코의 대표적인 고도(古都)로서 서기 789년에 건설되었다. 특히 859년에 설립되어 현재까지 운영되고 있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 된 대학인 알-카라위인 대학교(University of Al-Qarawiyin)가 있는 도시로도 유명하다. 기네스북에 기록된 이 대학교는 아프리카 서북부의 이슬람신학과 이슬람 문예의 중심지로 큰 역할을 해왔다. 내부를 꼭 구경해보고 싶었지만 이슬람 사원 안에 있고 엄격히 출입이 금지되어 있어서 겉모습을 보는 것만으로 만족해야 했다.
 페스를 대표하는 곳은 메디나(Medina)로 불리는 옛 시가지인데, 좁은 지역에 9400개에 이르는 세계 최대의 복잡한 미로가 거미줄처럼 얽혀져 있는 곳이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어 있는데 이곳에 대한 경험은 매우 독특한 것이었다. 길을 잃으면 큰일이라는 가이드의 수차례 경고 때문에 바짝 긴장하고 다닌 골목길들은 곳곳에 작은 가게들과 삶의 다양한 모습을 담고 있었다. 나중에 꼭 다시 배낭여행으로 와서 꼼꼼하게 그들의 삶을 살펴보고 싶다. 페스의 메디나 투어에서 잊을 수 없었던 가장 큰 경험은 바로 가죽공장이었다. 주로 양가죽으로 만들어지는 모든 가죽 제품들을 모두 수작업으로 자르고 무두질하고 염색하고… 가죽 제품이 하나 만들어지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고통과 땀과 피가 함께 배어있는지 가슴 절절하게 느낄 수 있었다.
 아래 사진은 방문했던 어떤 가죽 공장에서 세척과 염색과 건조가 이루어지는 모습을 촬영한 것이다. 온 몸이 독한 붉은색 염료로 가득 덮여 있는 염색기술자를 보면서 가슴이 먹먹해 왔다. 하지만 모로코에서도 이곳 메디나 지역 사람들이 가장 삶의 행복지수가 높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우리가 가진 것에 얼마나 만족하고 감사하며 살고 있는지 깊은 성찰의 계기도 되었다.
페스는 모로코 국왕 모하메드 6세(Mohammed VI)의 왕궁으로도 유명하다. 모로코의 수도인 라밧(Rabat)에 왕궁이 있기도 하지만 이곳에도 자주 방문한다고 한다. 마침 왕이 있는지 경비가 삼엄했다. 버스에서 왕궁을 향해 카메라만 들이대어도 득달같이 경비병이 무선으로 알려서 다음 코너에서 다른 경비병이 버스를 세운 후 사진을 지운다. 시내 곳곳에 모하메드 6세 국왕 부부의 사진이 걸려 있었는데 정말 잘 생겼다. 특히 왕비는 정말 미인이어서 많은 사람들이 좋아한다고 한다. 재스민 혁명(Jasmine Revolution)을 통해 촉발된 북부 아프리카의 민주화 요구 시위가 입헌군주제인 모로코에는 미풍도 불지 않은 것은, 현재 국왕이 국민들을 위해 다양하고도 좋은 정책을 많이 펼치고 있어서 국민들의 사랑을 받고 있기 때문이란다. 또한 민주화 열풍이 불자 국왕은 정당과 노조 그리고 비정부기구의 대표자들을 모아 헌법개정안을 만들게 했고, TV 생방송을 통해 권력의 핵심은 국민에게 있음을 강조하고, 자신은 국가원수 겸 국군 통수권자이지만 다수당에서 선출된 총리에게 정부대표의 지위를 부여함으로써 일부 국민들의 저항을 사전에 차단하는 정치력을 발휘하기도 했다. 또한 국민의 40%를 구성하는 베르베르(Berber)족의 언어를 아랍어와 함께 국가공용어로 아프리카 최초로 채택함으로써 국민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얻기도 했다. 아무튼 국민들의 사랑과 지지를 받는 지도자가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한 번 생각해보며 우리나라의 현실을 가슴 아프게 느껴본다.

라밧(Rabat)
인구 약 150만명에 달하는 모로코의 수도 라밧(Rabat)은 기원전 300년 전부터 사람들이 살기 시작한 아주 오래된 도시다. ‘승리의 근거지’라는 뜻을 갖고 있으며 도시 입구부터 왕실 승마장을 비롯한 각종 관공서가 즐비하며 곳곳에 붉은 바탕에 초록색 별이 그려진 모로코 국기가 힘차게 펄럭인다. 사하라 사막 지역에서 발견된 어마어마한 원유를 통해 머지 않아 세계에서 큰 영향력을 발휘할 나라답게 사람들의 표정이 여유있고 밝으며, 여성들도 대부분 히잡(hijab)이나 차도르(chador) 차림보다는 편한 복장을 하고 있다.
 라밧을 대표하는 곳은 현 국왕의 할아버지인 모하메드 5세와 아버지인 하산 2세가 묻혀 있는 왕릉과 그 앞쪽에 있는 하산탑 및 모스크 유적지다. 하산탑(Hassan)은 1197년에 건축된 것이니 약 880년이나 된 것이다. 당시 야콥 알 만수르(Abu Yusuf Ya’qub al-Mansur) 왕이 세계 최대의 이슬람 모스크를 짓기 위해 공사를 시작하여 탑을 지었는데, 한 변이 16m 길이의 정사각형으로 높이 44m까지 건축되었으나 얼마 후 그가 죽고 지진으로 건축이 중단된 채로 지금까지 남아 있다. 탑 앞에 있는 350여개의 돌기둥은 바로 그 모스크를 짓기 위한 기둥이었다. 그 터의 크기나 넓이만 보아도 상상할 수 없이 큰 규모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모로코 어린이들에게 열심히 하산탑에 대해 설명을 마친 안내원 무하마드(Muhamed)에게서 한국에 대한 그의 생각을 들을 수 있었다. 15년째 이곳의 안내원으로 근무하고 있는 그는 유창한 한국어로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한 후 영어로 대화를 나누었다. 바다를 중심으로 살아가던 모로코의 원양어업이 한국배로 시작된 인연 때문에, 한국에 대해 좋은 인상으로 남아있는 것이 대부분 모로코인들의 공통점이라는 이야기로 시작해서, 유럽의 경제 위기 때문에 여행객들이 많이 감소되었다는 걱정들, 그 때문에 네 아이를 키우는 삶이 더 퍽퍽해졌다고 아픈 속내를 드러냈다. 그러나 금세 한국의 휴대폰과 TV 그리고 자동차가 모로코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다며 자기도 한국 휴대폰을 쓴다고 자랑스레 보여주는 그를 꼭 안아주었다.

 

※ 이 글은 2012년 1월 6일부터 17일까지 대한민국 청소년 우수지도자로 선발되어 포르투갈, 모로코, 스페인, 네덜란드를 방문한 여행기다. 필자는 한광고등학교에서 22년간 윤리·종교를 가르치며, 대한민국 최우수 동아리인 한광무선국을 비롯해 5개의 동아리를 지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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