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택역도의 빛과 소금

이명구·이종갑·안혁선, 평택역도 지켜와
‘송탄시역도후원회’ 열정으로 키운 꿈나무들
선수 출신 김대주 씨 평택군역도연맹 창립

▲ 역도 꿈나무들을 소리없이 후원하던 송탄시 역도후원회 회원들(1991년)
주인공 뒤에는 반드시 조연들이 있게 마련이다. 비록 화려한 스포트라이트에 가려 보이지 않지만 그 조연들을 빼고 영광을 말하기란 그림자를 빼놓고 빛을 논하는 것처럼 허무하다. 평택 역도도 그렇다. 평택 역도가 각종 대회에서 따낸 수많은 메달 뒤에는 그 영광의 메달을 만들어낸 많은 조연들이 있다. 우리는 이들을 평택 역도를 빛낸 ‘빛과 소금’이라고 부른다.
 
 
평택고등학교 이명구 코치

평택 역도를 이끈 최초의 지도자는 평택고등학교 이명구(78) 코치다. 이명구 코치는 군산중학교와 서울 한양공고를 졸업하고 서울에서 선수생활을 하다 평택고등학교 코치로 부임했다. 아버지가 한전 평택지점 소장으로 20여 년간 근무해 평택이 연고가 있는데다 유도출신이던 최병익 평택교육장의 권유로 평택고등학교 선수들을 맡아 가르쳤다.
“평택은 전국에서도 우수한 선수들이 참 많았는데 역도하면 생활고에 빠진다는 생각 때문에 역도를 그만둔 선수도 많았습니다. 힘들게 살던 시절이었으니까요”
실제로 이명구 선수는 1963년 한국 신기록을 2개나 수립하고 1964년에는 동경올림픽에 출전, 1975년에는 한일친선역도대회에서 금메달을 획득하기도 한 실력 있는 선수였으며, 1992년까지 국제역도심판으로 활약하기도 했다. 또한 그의 아들인 이희영 선수도 아버지의 뒤를 이어 평택고등학교 코치를 역임했으며 현재는 경북도시개발공사 역도감독을 맡고 있다.

효명고등학교 이종갑 코치
이명구 코치가 평택 역도부원들을 가르치던 1976년, 효명고등학교에도 역도부가 생겼다. 당시 효명 역도부를 이끈 지도자는 이종갑 코치였다.
“선수들을 지도할 때 역도에 관한 공부를 많이 했습니다. 선수들이 가지고 있는 잠재력보다 기술적인 지도가 앞서서도 안 되고 개개인에 맞게 트레이닝을 겸해야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으니까요. 당시 효명에서 따낸 메달이 100개는 족히 될 겁니다”
이종갑 코치는 역도를 전공하지는 않았지만 역도에 대한 열정으로 과학적인 지도 방법을 연구해 선수들을 가르친 학구파 지도자다. 당시 그가 길러낸 선수들 중 두각을 나타낸 선수로는 86, 90아시안게임에서 2연패를 한 황우원 선수와 대한역도연맹 최우수 선수로 선정된 박태민, 중학생 신기록 6개를 수립하고 고등학생 신분으로 한국 신기록을 경신한 전상석 선수 등이다.

태광고등학교 안혁선 코치
효명학교가 역도부를 해체하는 것과 때를 같이 해 태광고등학교가 안혁선 코치를 영입해 역도부를 창단했다. 태광고등학교 안혁선 코치는 90년대 여자역도 전국대회가 없던 당시 여자 역도의 미래를 내다보고 여성 역사(力士)들을 배출해냈다.
“태광학교의 역도부는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과정이었습니다. 효명 같은 경우에는 전통도 있고 선배들도 많이 있었지만 저희의 어려움은 이루 말할 수 없었지요. 겨울방학 때는 송탄 근처에 전세를 얻어 합숙을 하기도 했고, 여름에는 학교 복도에서 밥을 해먹고 교실 책상위에 이불을 깔고 잠을 자며 훈련을 하기도 했습니다. 학교에 숙소가 생긴 건 2000년이었지요. 선수들에게 늘 목표가 있어야 한다고 가르쳤습니다. 내가 왜 무거운 역기를 들어야만 하는지에 대한 목표와 운동에 대한 방향설정을 해주는 것이 제가 선수들을 위해 해온 일이었지요. 알고하면 운동이지만 모르고하면 노동이 되어버리니까요”
현재 장미란 선수의 코치를 맡고 있는 최종근 선수와 평택시청 실업팀을 맡고 있는 강병조 감독 등을 제자로 둔 안혁선 코치는 지금까지도 태광고교 역도부를 맡아 가르치고 있다. 

송탄시역도후원회
역도선수들 곁에 훌륭한 지도자가 있었다면 그보다 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역도선수들의 힘이 되어준 이들이 있다. 사비를 털어 선수들을 뒷받침하면서도 한결같은 애정으로 선수들을 지켜본 ‘송탄시역도후원회’다. 송탄시역도후원회는 1991년 최치선 회장을 필두로 47명의 회원이 모여 창단했다. 이들은 2대 손오성 회장, 3대 이원우 회장까지 송탄시역도후원회라는 명칭을 사용했는데 이후 90여명까지 회원이 증가하며 평택역도에 대한 사랑을 여실히 보여줬다. 송탄시역도후원회는 1997년 1월, ‘송탄시체육후원회’로 명칭을 변경해 활동했으며, 1998년 다시 ‘참사랑회’로 명칭을 변경하면서부터는 역도가 아닌 순수 봉사모임이 되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역도 꿈나무들을 키우자는 취지로 시작했습니다. 황우원 선수가 지역 선배들을 찾아와 역도 후배들을 키워달라고 부탁한 게 계기가 되었지요. 당시 황우원 선수는 86아시안게임과 90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 2관왕을 차지했었는데 후배들을 키우려고 애를 많이 쓰던 시절이었거든요. 그 당시 아이들 급식비 명목으로 매월 30만원씩을 고정적으로 지급하고 훈련 참가 시에는 별도로 30~50만원씩을 후원하기도 했습니다. 처음엔 효명고등학교만 지원했는데 차차 태광고등학교도 지원하고 이후엔 은혜여고 배구부와 태광의 축구부를 지원하기도 했습니다”
초대회장을 역임한 최치선 씨는 당시를 회고하며 이렇게 전한다. 회원들 중에는 사업가, 택시기사, 떡 장사 등 학교와는 무관한 사람들이 지역의 꿈나무들을 키운다는 순수한 열정으로 참여했었다고.
또한 후원회 창단부터 1998년까지 사무국장을 맡았던 장호철 현 경기도의회 의원은 “회원들이 모임을 가지면 술은커녕 음식도 제일 싼 걸 먹으면서 역도 선수들을 키운다는 자부심 하나로 참여했었다”며, “매달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며 후원금을 모금했는데 오토바이 기름 값은 종종 회장님들의 개인 주머니에서 나오기도 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당시 평택의 역도선수들 가운데 국가대표 선수들이 많았기 때문에 후원회의 망년회 때는 역도국가대표선수들이 대거 참석하는 진풍경을 선보이기도 했다고 한다.

평택시역도연맹
평택시역도연맹은 1973년 2월, 아시아 역도헤비급 금메달리스였던 김대주 선수를 초대회장으로 해 ‘평택군역도연맹’으로 창립했다. 1995년 2월 송명호 전 평택시장이 제2대 회장에 취임했고, 1998년 8월에는 제3대 최복용 회장 취임, 2003년 1월 제4대 신영호 회장 취임, 2005년 3월 제5대 김영철 회장 취임, 2007년 8월 제6대 윤혜상 회장 취임, 2011년 1월 제7대 최호 회장 취임, 2011년 12월에는 제8대 최동진 회장이 취임해 현재까지 평택시 역도를 대표하며, 그 뿌리를 이어가고 있다.
(다음호에 계속)

▲ 효명중학교 맷돌짝 부원들(역도부, 1956년)

▲ 평택시 역도연맹 대만전지훈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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