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산과 수입쌀 혼합을
유도하는 정부 정책은
수입쌀 판매를 통한
양곡회계 적자를 보전하고
쌀값안정·물가안정이라는
효과를 거두었다.
하지만 국민 먹거리에 대한
알권리 침해뿐만 아니라
상인들이 국민을 속이도록
정부가 유도한 꼴이 됐다


얼마 전 평소 알고 지내는 지인으로부터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어느 유명 대형마트에서 이천 쌀인 줄 알고 사온 쌀이 집에 와 자세히 살펴보니 수입쌀 95%와 국내산 쌀 5%를 혼합한 수입쌀이었다는 황당한 내용이었다. 자초지종을 다 듣고 난후 황당한 게 아니라 화가 치밀어 참을 수 없었다.
이유인 즉 지인이 대형마트에서 쌀을 고르다 ‘氣찬 진미쌀’ 이라고 큼지막하게 적혀있고 쌀 포대 하단에 전국 최고의 쌀 생산지라 알려져 있는 지역의 지명을 그대로 사용하는 ‘○○농산’ 이라고 큰 글씨로 쓰여 있기에 이천 쌀을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살 수 있겠구나 싶어 의심 없이 샀다는 것이다. 그런데 집에 돌아와 우연히 쌀 포대에 붙어있는 작은 스티커에 적혀 있는 내용을 보고 깜짝 놀랐다는 것이다. 스티커에는 아주 작은 글씨로 원산지 표시난에 국산찹쌀 5%(혼합계)·칼로스(미국) 95%·허용오차 1~3%라고 적혀 있었다고 한다. 그러니 누가 이런 쌀 포장지를 보고 수입쌀과 국내산 쌀 일부를 혼합한 쌀일 것이라고 의심할 수 있었겠는가? 이 포장지에 적혀 있는 데로라면 10kg 쌀 한포에 수입쌀 9.8kg과 국내산 쌀 200g만 혼합하면 버젓이 국내산 포장지로 바꿔 국내산 쌀인 것처럼 유통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더욱더 황당한 것은 ‘양곡관리법’ 시행규칙 제7조의 3 ‘양곡의 표시사항 및 표시방법’에 따라 혼합미의 경우 10%이하의 허용 오차를 인정하기 때문에 이런 경우라면 100% 수입쌀을 국내산 포장지에 담았다 하더라도 허용오차 이내에 있으므로 법상으로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한 외국산의 경우에는 표시사항 일괄표에 표시하지 않고 포장지 뒷면에 따로 표시할 수 있게 되어 있어서 소비자의 식별을 더욱 어렵게 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최근에는 100% 수입쌀(중국쌀 95%+호주쌀 5% 혼합미)이 ‘농부의 명작’ 이라는 한글 브랜드로 표시되어 ‘경기○○농산’ 이라는 곳에서 생산한 것처럼 시중에 유통되고 있다. 쌀을 사는 소비자 입장에서나 쌀을 생산하는 농민 입장에서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믿고 싶지 않지만 이처럼 국내산 쌀과 수입쌀을 혼합해서 국내산처럼 판매하더라도 불법이 아니라 합법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황당하고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 언제 어떻게 만들어진 것인가? 지난 2010년 정부는 ‘양곡관리법’ 시행규칙을 개정해서 국내산 쌀과 수입쌀을 혼합하더라도 표시만 하면 되도록 허용했다. 정부가 이렇게 고친 이유는 소비자들의 건강이나 농민들의 쌀 생산과 판매를 돕기 위한 목적이 아니었다. 수입쌀의 식용판매가 부진하자 정부는 수입쌀을 구매해온 가격보다 낮은 가격에 판매하면서 손해를 보았고 양곡적자를 가지고 있었다. 그래도 수입쌀은 식용으로는 잘 판매되지 않자 정부가 꾀를 내서 ‘양곡관리법’ 시행규칙을 고치고 수입쌀에 국내산 쌀을 살짝 섞으면 국내산 포대갈이를 합법적으로 허용해 주었던 것이다. 이것은 국민을 속이는 비열한 짓이다. 어찌 되었던 정부의 꾀는 국민들에게 통했다. 수입쌀과 국내산의 혼합미를 허용하면서 미국쌀이 날개달린 듯이 팔려나가게 됐다.
국내산과 수입쌀을 혼합하도록 유도하는 정부의 정책은 수입쌀 판매를 통한 양곡회계 적자를 보전하고 쌀값안정·물가안정이라는 효과를 거두었다. 하지만 그것은 국민의 먹거리에 대한 알권리를 침해하는 것뿐만 아니라 상인들이 국민을 속이도록 정부가 유도한 꼴이 되고 말았다. 나아가 우리나라의 쌀 농업을 심각하게 파괴하고 있다. 최근 쌀 자급률이 2011년 83%로 낮아지고 2012년 86%로 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쌀값은 올라가지 않는 것을 보면서 농민들의 한숨소리는 더욱 깊어지고 있다. 정부의 이런 야비한 방법은 농민들의 쌀농사 포기를 재촉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수입쌀과 국내산 쌀 혼합을 금지하는 양곡관리법 개정이 절실하다. 국민을 더 이상 속이지 못하도록 원천적으로 막아야 한다. 그것이 쌀농사를 지키고 소비자의 권리와 건강권을 지키는 지름길인 것이다.

 

 
이상규 정책실장
평택농민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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