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21년 4월 6일

진위군청 주관, 일본 규슈 개최
지역유지·면장 등 20여명 조직

 
“진위군청에서는 민지개발과 산업발전을 장려하기 위하여 본군 내 유지계급을 망라하여 금회 일본 오치타현(大分縣)에서 개회한 공진회 시찰단을 조직하였는데, 단원은 20인으로 정하고 회비는 매인에 60원이요, 왕복일자는 2주간이며 출발기는 오는 4월 15일이라더라. 단원 주소 씨명 직업(생략)”(동아일보 1921년 4월 6일)

공진회(共進會)란 ‘여러 가지 산물이나 제품들을 한곳에 모아 전시하고 품질을 비교하는 대회’이다. 그런데 이와 같은 공진회는 19세기와 20세기 초 제국주의 국가들이 자신들의 국력을 보여주기 위해 개최하는 경우가 많았다. 일종의 ‘산업박람회’와 같은 것이다. 일본은 제국주의국가로 편입된 후 일본에서 각종 공진회를 개최하는 한편 1910년 8월 29일 우리나라를 식민지로 강점한 이후에 식민지 조선에서도 여러 종류의 공진회를 개최하였다. 이를 통해 식민지조선을 잘 통치하고 있다는 것을 대내외에 알리고자 하였다. 바로 식민정책의 일환이었다.
오이타공진회(大分共進會) 역시 이러한 측면에서 1921년 3월 15일부터 5월 13일까지 60일간 일본 규슈(九州) 오이타현(大分縣) 오이타시(大分市)에서 개최되었다. 공식 명칭은 제14회 규슈오키나와8현연합공진회(九州沖縄八縣聯合共進會)이다. 당시 조선총독부는 이를 식민지 조선에도 널리 알리는 한편 적극적으로 시찰단을 조직하여 관람토록 추진했다. 뿐만 아니라 조선의 물산을 진열하여 대내외에 소개하고 판로를 확장하는 한편 조선 산업의 발전 촉진을 도모한다는 명분 아래 공진회장에 조선관을 특설했다.
오이타공진회 시찰단은 전국적으로 조직되었는데, 진위군에서도 조직되었다. 진위군 시찰단은 군청 직원과 지역 유지 20명으로 조직되었다. 시찰 일정은 1921년 4월 15일부터 2주일간으로 경비는 60원이었다. 당시 시찰단에 참여한 유지는 오까마쓰(岡松·서무주임·일본인)·박원용(朴元用·군서기)·김교영(金敎泳·오성면장)·서상언(徐相言·실업가)·이성열(李成烈·평택리 신사)·김문환(金文煥·평택리 신사)·김정현(金正賢·평택리 신사)·유창근(柳昌根·동아일보 평택분국장)·장윤식(張允植·매일신보 평택분국 기자)·김봉규(金鳳圭·서면 신사)·황학렬(黃鶴烈 농업)·김학수(金學秀·부용면 신사)·이두종(李斗鍾·고덕면장)·이필성(李弼成·서탄면장)·원제학(元濟學·송탄면장)·원제동(元濟東·송탄 농업)·이민화(李敏和·포승면장)·조길구(趙吉求·포승면 농업)·이민이(李敏義·현덕면장)·유지소(柳志沼·현덕면 신사)·청북면 야판농장(野坂農場) 직원 2명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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