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정은 결과보다 중요하다

지난 30년 컴퓨터와 핸드폰으로
세상은 농경사회문화에서는
감히 상상도 할 수 없었던
별천지가 되었습니다.
또 자가용 자동차가 늘어나면서
선진국만큼 생활수준도 높아졌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우리 곁에는
사회적으로 제대로 보호받지 못하는
‘깊은 그늘’이 있습니다.

 

 
좋은 일을 한다고 해서 절차와 과정이 무시되어져서는 안 된다. 결과에만 집착해서 정도正道를 벗어나는 것을 예사로 생각하는 ‘마키아벨리즘’적 사고는 개선돼져야 한다. 결과만 좋으면 과정은 무시하는 사회풍조 탓에 온갖 비리와 부정부패가 구석구석 만연해 있다.
그래서 우리나라 부자富者는 다 도둑놈 취급을 받는다. 그래서 우리나라 사람들은 명분이 없는 일에 돈을 쓰지 않는다. 남을 위하는 척 하지만 결국은 자기 이름을 내자는 속셈이다.
1970년대만 해도 평택읍 비전리에서 동양고속버스를 타거나 기차를 타러 역으로 나가려면 길을 가다가 사이사이 논두렁을 걸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유천리 쪽으로 가기 위해서 지금은 사라진 됫박산 앞을 지나기도 했습니다. 주공아파트를 짓기 위해 됫박산을 허물어버리기 전 이야기입니다.
아직도 가난을 벗어나지 못한 소외계층 사람들이 이웃을 의지하며 군문리에 모여 살던 때였습니다.
아버지가 혼자 버는 돈으로는 집안 살림을 하기도 빠듯해서 엄마도 닥치는 대로 일거리를 찾아다녀야 했습니다. 잔칫집의 잔치가 끝난 뒤 뒤치다꺼리 설거지 하는 일, 식당 일, 조금만 경험이 있으면 배과수원에 가서 꽃가루를 꽃마다 묻혀주며 ‘화접’ 하는 일, 5월 중순이 지나면 부르는 곳마다 따라다니며 모심는 일, 그러다가 안 되면 과일 광주리를 이고 골목골목 다니며 철따라 과일 행상하는 일.
그러다 보니 학교에서 수업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온 아이들이 갈 곳이라고는 만화방 밖에 없습니다. 당시만 해도 TV도 귀했던 시절이라 아이들은 만화방에 가서 ‘테레비’를 보았습니다. 왜 학원은 안 다니느냐구요!? 돈이 있어야 가지요! 그렇게 두 부부가 뼈 빠지게 벌어들여도 그 돈은 다 어디로 가는 것인지?
먹고 죽을래도 없는 돈! 그래서 아이들은 몇 명씩 짝을 지어 땡땡거리 너머 통복시장으로 가서는 시장바닥을 헤매고 다니던지 아니면 구름다리를 건너 평택극장 근처를 배회하며 정처 없이 돌아다니며 무료함을 달래곤 했습니다. 아이들이 어른들 눈길을 벗어나서 아이들끼리만 다니다 보니 한창 감수성이 예민한 아이들은 세상 어른들이 저지르는 몹쓸 짓에 쉽게 물들곤 했지요. 그렇게 부모 손길을 벗어난 아이들이 길거리를 방황하지 않도록 생각을 같이 한 어른들 몇 사람이 모여서 시작한 것이 '뚝너머' 공부방이었습니다.
학교가 끝나고 돌아오는 아이들을 위한 방과후 교실이다 보니 오후가 되어서야 아이들이 모여들곤 했지만 당시만 해도 아랫학년들은 오전, 오후반이 있었기에 학교에 가지 않는 아이들이 찾아와서 책을 읽거나 숙제를 할 수 있도록 공부방은 아침부터 문을 열어야 했습니다.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책이야 당연히 만화가 으뜸이었지만 이곳저곳에서 기증을 받거나 한권·두 권 모은 동화책이나 그림책·잡지로 작지만 제법 쓸 만한 도서관이 만들어졌습니다.
그런데 아이들이 가장 즐겁게 생각하는 것은 어른들의 간섭을 받지 않는 아이들만의 공간에서 느끼는 자유였습니다. 그리고 오후시간이 되면 아이들을 한자리에 모아 수업을 했습니다.
‘뚝너머’ 공부방은 지금 송탄지역 목회자로 있는 분을 중심으로 시작된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모든 일이란 것이 다 그렇듯 사람들이 모여서 만들어내는 여러 가지 안건에 대해 일사천리로 이루어지는 일이란 쉽지가 않아 가끔씩 공부방 운영을 놓고 의견대립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의견대립이란 당연히 공부방을 더 잘 해보자고 하는 발전적인 이야기였지 공부방을 망치려드는 악의적인 의견이 아니었음에도 시간이 지나가면서 의견충돌은 더 잦아지게 되었고 어떻게 아이들에게 적절한 도움을 줄 것인가? 하는 방법론의 차이에 불과한 것이었지만 결국 그 의견의 격차를 좁히지 못해 ‘뚝너머’ 공부방은 문을 닫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일을 한다고 해서 과정과 절차가 무시되어져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결과가 좋다고 해도 결과가 만들어지기까지 쓰인 방법이 옳지 않거나 어느 한사람의 독재나 전횡으로 인해 민주적인 절차나 정상적인 절차가 훼손되거나 무시되어졌다면 그 결과가 아무리 뛰어나다고 해도 여러 사람들에게 슬픔과 상처만 주고 말기 때문입니다.
‘뚝너머’ 공부방에서 아이들은 행복했습니다. 땡땡거리 너머·구름다리 건너 비전리·통복리·합정리 아이들이 학원에 가서 어른들에게 시달리는 동안 넉넉지 못한 군문리 아이들은 ‘뚝너머’ 공부방에서 어느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제멋대로 눕거나 뒹굴면서 자유로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러니까 어른들은 물론 아이들에게도 꼭 돈만이 행복을 가져다주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물질적으로 넉넉하다고 해서 인생이 꼭 즐겁기만 한 것은 아니듯 말입니다. 지난 30년 컴퓨터와 핸드폰으로 세상은 농경사회문화에서는 감히 상상도 할 수 없었던 별천지가 되었습니다. 또 자가용 자동차가 늘어나면서 선진국만큼 생활수준도 높아졌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우리 곁에는 사회적으로 제대로 보호받지 못하는 ‘깊은 그늘’이 있습니다.
잘 사는 사람들이 많으면 많아질수록 그 ‘어둠의 그림자’는 더 길고 더 짙어지게 마련입니다. 그래서 오늘 이 시간 그늘 속에 있는 소외된 아이들은 어찌 할 것인가? 지난 시간 아이들과 함께 했던 ‘뚝너머’ 공부방을 거울삼아 여러 가지 생각에 잠겨봅니다.

 

이동진은 홍익대 미대 卒, 한광고등학교 교사, MBC창작동요제 대상곡 ‘노을’의 작사가다.      ※ 블로그 http://blog.naver.com/jaa_yoo(바람이 머물다 간 들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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