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의 이유만을
극대화 하는 정부 논리가
그대로 기업논리로 이어져
선장을 포함하여 과반수가
비정규직인&승무원
구조를 만들었고
이에 따라 직업윤리고 뭐고
책임감 없는 직원들을
만들어 놓은 것은 아닌가?

이 글을 쓰고 있는 4월 20일, 새벽 5시 현재 급기야 정부의 구조 대책을 믿지 못하는 성난 ‘세월호’ 유가족 100여명이 도보로 진도에서 청와대를 향해 떠난다는 소식을 접한다.
도대체 안전이란 무엇인가? 국민들이 이 땅에서 안전을 느끼지 못한다면 국가는 왜 존재하는가?
늘 안보가 어쩌고저쩌고 떠들어대고 천문학적 숫자가 거론되는 돈을 국방예산에 쏟아 부면서도 수천 억 원대를 들여 건조한 구조함은 배치 불가능인 상태고 세계 최강의 전력이라는 특수부대도 속수무책이다.
도대체 누구를 위한 안보이고 안전인가? 국민들이 편안하게 보호받지 못하는 안보는 어디에 쓰는 물건인가? 정부는 효율성 운운하며 민영화를 주장하고 규제 때문에 국가경쟁력이 취약하다며 규제를 암덩어리로 규정하고 규제와의 전쟁을 벌이고 있다.
민영화의 본질은 무엇인가? 정규직을 비정규직화 해 기업이윤을 더욱 더 보장하겠다다는 것이 민영화의 정확한 본질이다.
그것은 민영화된 케이티를 보면 단적으로 드러난다. 3만 5000명의 노동자 가운데 2만 5000명을 구조조정하며 소수 대주주들만의 이익을 극대화 하겠다는 것이 민영화의 정확한 본질이다.
규제를 암덩어리로 규정하니 사회적기업 육성도 여성노동자 우선 고용도 대형마트 의무 휴업도 다 규제가 되고 철폐할 대상이 된다. 이렇게 기업이윤만을 극대화 하고자 하는 민영화와 규제 철폐가 오늘 이 땅에서 벌어지고 있는 아비규환의 세월호 사건의 맨얼굴이 아니라고 누가 장담할 수 있겠는가?
그렇다. 철저한 규제가 있었다면 세월호가 지금과 같이 불법 증축과 과다 화물 적재와 같은 일이 벌어질 수 있었겠는가? 자본의 이유만을 극대화 하는 정부 논리가 그대로 기업논리로 이어져 선장을 포함하여 과반수가 비정규직인 승무원 구조를 만들었고 이에 따라 직업윤리고 뭐고 책임감 없는 직원들을 만들어 놓은 것은 아닌가?
안전한 사회는 나의 삶이 존중받고 자유로울 때 가능하다. 그래야 내 이웃의 삶을 살피고 감사할 수 있게 된다. 우리는 얼마나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삶을, 정리해고 된 노동자의 안전을 돌보고 아파했는가?
그리고 사회안전망 확충을 위해 노력했는가? 수백 명의 어린 학생들이 성적 비관으로 자살하는 이 공포의 세상에 분노해 왔는가? 안전한 사회는 이러한 비뚤어짐을 정상으로 되돌릴 때만이 가능한 것이 아니겠는가?
해답은 이미 다 나와 있다.

 

김기홍 위원장
노동당 평택안성당원협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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