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풂과 나눔보다 재원 충당의 해법이 먼저
복지가 ‘제살 뜯어먹기 식’이어서는 안 돼

사실 행복이란 말처럼 막연하고 애매한 말도 없는 것 같다. 사람마다 행복에 대한 감도(感度)가 다르기 때문이다. 하루 세끼 밥 먹고, 잘 자고, 잘 싸면, 그것으로 행복이라고 느끼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고대광실 같은 집에 억만금이 있어도 불행하다고 느끼는 사람도 있다. 더러 누군가가 “행복하냐?”고 묻는다면 사람들은 어떻게 대답을 할까? 얼마 전 발표한 한국 갤럽 조사자료를 보면 우리 국민의 40%가 ‘그저 그렇다’고 응답했고 다행스럽게 ‘행복하다’는 응답은 의외로 가까스로 과반수가 넘은 52%로 집계됐다.
영국 레스터 대학의 에이드리언 화이트 교수가 178개국을 대상으로 조사한 ‘세계행복지도’에 따르면 덴마크, 스위스, 오스트리아, 아이슬란드 등이 행복도가 높은 나라로 조사되었다. 이밖에도 미국 23위, 영국 41위, 중국 82위, 일본 90위에 이어 한국은 102위로 조사됐다. 88서울올림픽을 시작으로 2002한일월드컵, 피겨스케이팅에서 김연아 선수의 세계제패, 2010 G20정상회의 개최 등을 통해 한국이 세계적인 경제대국으로 급부상하고 있는 것과는 너무나 대조적이다.
화이트 교수는 한 나라의 ‘행복 도’를 결정하는데 있어 가장 중요한 요소로 건강수준과 경제력, 그리고 교육수준을 강조했다. 여기에서도 한국인의 낮은 행복지수를 최근의 건강, 경제, 교육에 관한 사회지수로 엿볼 수 있다. 이런 결과에도 불구하고 저 출산, 고령화로 인한 인구의 질적 문제와 함께 자살률, 이혼률, 실업률, 부채비율 등이 보여주는 불행지수는 국민 행복지수를 세계 최하위로 끌어내리기에 충분했다.
오래 전 90년대 중반 행복지수 1위인 덴마크를 장묘문화와 사회복지제도를 취재하기 위해 간 적이 있다. 세계 최고 수준의 복지가 행복한 덴마크의 비결 중 하나인 것만은 틀림없다. 하지만 소득의 절반을 세금으로 충당할 만큼 사회복지 사업에 비용이 많이 든다. 우리 실정과는 전혀 맞지 않았다. 그러나 진짜 비결은 다른데 있었다. 유럽연합(EU)국가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사회적 신뢰도 조사에서도 덴마크가 1위를 차지했다. 0~10점으로 점수를 매겼는데 ‘주변 사람을 믿을 수 있느냐’는 질문에 6.99점으로 덴마크가 가장 높은 점수를 받았다. 정치인에 대한 신뢰도도 6.18점, 사법제도에 대한 신뢰도 7.13점으로 다른 국가 보다 높은 점수를 보였다. 덴마크 정부의 한 고위 관리는 “시민끼리 서로 믿고, 국민은 정부와 제도를 믿고, 노(勞) 와 사(使),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서로 믿는 신뢰의 선순환 구조야 말로 덴마크의 행복지수를 떠받치는 초석”이라고 1위가 된 배경을 설명했다.
1848년 입헌주의가 도입된 이래 덴마크 국왕은 보통 사람과 마찬가지로 겸손하고 검소한 모습을 보이며 생활한다. 특권을 남용하지도 않았고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모범까지도 솔선수범했다. 자고로 물이란 위에서 아래로 흘러가는 법. 왕실의 그런 분위기가 정치권, 기업계, 언론계, 학계 등으로 자연스럽게 스며들면서 사회 전체에 신뢰의 문화가 어느덧 자리를 잡은 것이다. 그래서 특권, 부패, 반칙, 비리, 기만이 통하지 않는 풍토가 정착된 나라다. 또 사회복지가 잘 되어있다는 뉴질랜드의 경우도 주정부의 한 관계자가 “복지혜택이 잘 되어 있다 보니 일을 해야 할 젊은이들이 게을러져서 일을 하지 않고 의지하려고 한다”며 실패한 복지 정책이라고 털어놓았다.
국민을 진정으로 섬기고 공정하고 투명한 법 집행으로 부자든 가난한 사람이든, 힘이 있는 사람이든 없는 사람이든, 누구라도 법 앞에서는 평등한 사회가 된다면 복지가 좀 부족해도 행복지수는 저절로 높아지지 않을까. 행복의 파랑새는 멀리 있는 게 아니다. 바로 국민인 내 마음속에 있다. 여·야 불문하고 총선에서 경쟁을 하듯 무상복지, 무상급식, 무상교육 실시를 선거공약으로 내세우고 불꽃 티는 혈전을 벌리고 있다. 물론 복지확대는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이는 시대적 요구이기도 하다. 그러나 복지만 개선된다고 과연 국민 모두가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을까. 왠지 미덥지 않다. 모두에게 베풀고 나눔을 강조하지만 그 재원은 어디서 충당할 것인지에 대한 설명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허울 좋은 복지혜택이 자칫 ’제살 제가 뜯어먹기 식‘이 되어 세금만 가중될 것이 우려된다. 옛말에도 하루를 살게 하려면 밥을 주고, 평생을 살게 하려면 농사짓는 법을 가르친다고 했다. 마찬가지다. 물론 베풀고 나누는 것 그 자체는 좋다. 그러나 필요 없는 계층까지 고르게 혜택을 주는 건 결과적으로 게으른 국민을 만들고 국민이 가중된 세금을 더 내야 한다는 것이다.
여·야 모두가 인생에는 돈 보다 더 큰 것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국내 총생산 뿐만 아니라 국민복지 또는 행복에도 초점을 맞추어 정치적 혁신을 시도해 나가야 한다. 정치인을 비롯해 한 국민을 행복하게 해주기 위해 ‘우리 안의 행복을 키우는 일은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의 행복에 자양분을 주는 일’이라는 틱낫한 스님의 깨달음과 ‘행복으로 가는 문이 하나 닫히면 또 다른 문이 열린다. 하지만 우리는 계속 닫힌 문만 쳐다보느라 다른 문이 열려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고 있다’라는 헬렌 켈러의 깨우침과 교훈을 외면하지 않는 우리 모두가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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深頌 안호원
시인, 수필가, 칼럼니스트
YTN-저널 편집위원/의학전문 대기자 역임
사회학박사(H.D), 교수, 목사
평택종합고등학교 14회 졸업
영등포구예술인총연합회 부이사장
한국 심성 교육개발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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