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생활 13년, “후배들 잘 이끌어주고 싶어요”

다문화가족 자조모임 이끌며 한국생활 노하우 전해
아무도 한국 문화에 대해 가르쳐주지 않았지만 오로지 혼자만의 힘으로 좌충우돌 베테랑 돼

 
“제가 먼저 한국에 온 선배 입장에서 후배들에게 어려운 과정을 헤쳐 나갈 수 있도록 제대로 가르쳐 주고 싶어요”
중국 출신 왕길영(여·38) 씨는 올해로 한국생활 13년차의 베테랑이다. 그런 그녀가 다문화가족 여성들의 맏언니로 도우미를 자처하고 나선 것은 자신과 같은 처지의 후배들이 고생하는 것을 보면 늘 안쓰럽기 때문이다.
“저가 처음 한국에 왔을 때는 아무도 한국문화와 한글을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아 무척 힘들었거든요. 다른 다문화 가족들도 한국에 빨리 적응해 안정된 생활을 했으면 해요”

현장에서 부딪치며 한글 배워
중국 산둥성 출신인 왕 씨가 처음 한국에 온 것은 1999년, 중국에 진출한 한국기업에 근무하고 있던 그녀는 한국에 파견근무를 나와 근무한 것이 인연이 돼 그곳에서 같이 일하는 한국 남성을 만나 결혼에 골인하게 된다. 안산에서 신혼생활을 시작했지만 한국사회에 적응하기란 쉽지 않았다. 그때만 해도 국내에 정착한 외국인들을 돕기 위한 정책이 전무하다시피 했기 때문이다.
“당시는 지금과 같은 다문화가족지원센터라는 것도 없었고, 한글을 무료로 가르쳐주는 곳도 없었어요. 그래서 저는 남편과 시댁식구들과 같이 살면서 생활 속에서 말을 배웠어요”
그야말로 좌충우돌 현장에서 부딪치며 배웠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그런 그녀에게 도움을 준 곳은 교회였다. 중국에서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던 어머니의 영향으로 어릴 때부터 신앙생활을 한 그녀는 한국에 와서도 가까운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고 찬송가를 따라 부르고 성경을 읽으며 자연스럽게 마스터한 것.
그녀는 요즘도 평택시다문화가족지원센터의 한국어교실에 다니며 공부에 열중하고 있다. 그것도 한국에 처음 온 다문화가족을 대상으로 한 기초과정이다. 13년의 경험을 가지고 외모도 별 차이가 없는 데다 한국말까지 유창해 이제 완벽한 한국 아줌마라고 해도 손색이 없는 그녀가 굳이 이 수업에 참여하는 이유는 뭘까?
“저는 한국말을 체계적으로 배우지 못 했잖아요. 요즘 한글 문법을 공부하고 있어요”
한국에서 가장 많은 외국인이 살고 있는 안산은 다문화 가족들을 지원하기 위한 시설이 많이 생겼다. 그러나 삶이 바빴던 탓에 한 번도 가보지 못했던 그녀가 여유를 찾고 주변의 다문화 관련 시설을 찾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7월 오랫동안 정들었던 안산을 떠나 평택으로 이사 온 후 부터다.
“이사 오자마자 3일 만에 등록했어요. 주변에서 다문화가족지원센터가 있다고 소개해 주더군요. 이제 아이들도 다 컸기 때문에 더 늦기 전에 배우기로 했지요”
딸과 아들이 초등학교 6학년과 3학년인데 너무 잘 자라줘 고맙기만 하다는 그녀는 “제가 한국말이 서툴렀지만 주변의 한국 아주머니들과 같이 어울려 지내며 아이들에게 말을 가르쳐줘 어려움이 없었죠. 지금도 아이들이 엄마가 외국인이라는 생각을 안 해요”라며 “아이들과 놀이동산에도 가고 놀러도 많이 다녔다”고 자랑에 여념이 없다.
아이들이 학교에서 공부는 중간 쯤 하지만 어릴 때 지나치게 공부를 강요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생각에 굳이 강요하지 않는다는 그녀도 아이들 장래를 위한 준비에는 여느 엄마에 뒤지지 않는다. 아이들의 대학진학을 대비해 학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저녁마다 평택시내에 있는 음식점에 나가 일을 하고 있는 것. 남편이 포승공단에 출퇴근하며 직장생활을 잘 하고 있지만 자신도 마냥 집에서 살림만 할 수는 없었다는 그녀는 낮엔 공부하고 오후 5시부터 10시까지 아르바이트를 해도 피곤한 줄 모른다. 오로지 자녀들을 위해 희생하는 전형적인 한국의 어머니가 된 것이다.

동남아 출신 여성들 챙기는 맏언니
그녀는 다문화가족 여성들 가운데 경쟁사회 속에서 치열하게 살아가지 못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 못내 안타깝다.
“중국 사람은 빨리 적응하는 편이지만 베트남이나 캄보디아 같은 곳에서 온 동남아 출신 여성들은 잘 적응을 못해요. 한국문화를 빨리 이해하고 집안예절에 대해서도 배워야 하는데 적극적으로 노력하지 않으니 시댁과의 갈등이 생기고 가정불화가 일어나기 마련이죠. 한국 엄마들이 자녀들에 대한 교육열이 얼마나 뜨거운지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그녀는 다문화여성들을 위한 자조모임을 만들어 한 달에 한 번씩이라도 모여 보려고 애쓰고 있으나 그것도 쉽지 않다고 말했다.
“시골에 흩어져 살면서 시간적으로 모두 여유가 없고 교통도 불편하죠. 한 자리에 모이더라도 밥 한 끼 사먹는 것도 부담스러워 합니다. 모두 잘 살아볼 목적으로 한국에 오는데 서로의 무관심 속에 가정이 파괴되거나 자녀들을 방치해서는 안 되죠”
왕 씨에겐 작은 바람이 있다. 개인이나 단체에서 후원을 받아 다문화가족들의 자조모임을 활성화하는 것이다. 평택에 거주하는 많은 다문화가족 여성들의 맏언니로서 역할에 충실 하고픈 왕 씨의 바람이 이뤄지길 기대해본다.
 

※다문화가족이란?
우리사회에 거주하고 있는 외국인 노동자, 결혼이민자, 북한이탈주민(새터민), 외국인거주자 및 그들의 자녀들을 비차별적으로 부르는 용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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