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요 ‘노을’ 30년

바람이 머물다 간 들판에
모락모락 피어나는 저녁연기
색동옷 갈아입은 가을언덕에
빨갛게 노을이 타고 있어요
허수아비 팔 벌려 웃음 짓고
초가지붕 둥근 박 꿈꿀 때
고개 숙인 논밭의 열매
노랗게 익어만 가는
가을바람 머물다 간 들판에
모락모락 피어나는 저녁연기
색동 갈아입은 가을언덕에
붉게 물들어 타는 저녁놀


1984년 5 월 5일 서울 ‘리틀엔젤스’ 회관에서 처음 세상에 알려진 동요 ‘노을’은 바로 다음 날부터 방송에서 불리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색동옷·가을언덕·허수아비·둥근박·고개 숙인 논밭의 열매·노랗게 익어만 가는…
모든 말들이 다 가을에 볼 수 있는 정경이니 5월 초 봄에서 여름으로 막 넘어가려는 눈부신 신록의 계절에 어울리지 않는 노래였지만 동요 ‘노을’ 인기는 걷잡을 수가 없었습니다. 바로 우리 정서가 그대로 녹아서 담긴 노래였기 때문입니다. 그 때가지만 해도 우리나라 역사 속에서 대를 이어 내려온 농경사회문화가 고스란히 남아있어 어디에 가든 쉽게 만날 수 있는 정경이었기에 노래가 더 아름답게 느껴지는 요인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1980년대 후반에 들어서면서 농촌에서는 조금씩 기계화가 이루어지기 시작합니다. 5 월 중순이면 모심기가 시작되던 소사벌 들판에는 모를 심는 사람들의 들노래가 차츰 사라지기 시작하고 평택역 대합실을 가득 메우던 전국에서 몰려온 일용노동자들도 일자리를 찾기 어렵게 되었습니다. 모심는 기계가 등장하고 또 가을이면 콤바인으로 벼를 베기 시작했습니다.
한여름 태풍이 한 번 지나가면 쓰러진 벼를 세우는 일은 가장 괴롭고 힘든 중노동이었지만 콤바인으로 추수를 시작하고부터는 쓰러진 벼도 일부러 사람을 사서 공들여 세울 필요가 없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러면서 평택들에는 사람들이 사라지기 시작합니다. 초가집도 또 둥근박도 순식간에 옛날이야기가 되고 말았습니다. 반만년 이어오던 농사법이 하루아침에 뒤바뀌면서 농촌은 정서가 메말라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이 번에는 옹기종기 모여 살던 시골마을에서 품앗이를 하며 정을 주고받던 그 때 그 시절이 그리워서 사람들은 또 ‘노을’ 노래를 불렀습니다.
지난해 10월 서울 봄봄출판사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5살에서 부터 8살까지 아이들이 보는 노을 그림동화책을 만들겠다는 전갈이었습니다. 안 그래도 동요 ‘노을’ 30년을 맞아 새롭게 ‘노을’ 노래를 되돌아보는 책을 하나 만들었으면 하는 생각을 하고 있던 터였습니다. 지난 2005년 만들었던 ‘노을’ 그림동화책과 달리 이 번에는 동요 ‘노을’이 만들어지던 그 시절 시골에서 살던 아이들 이야기를 글 속에 담았습니다.
‘노을’ 30년 그 동안 수많은 변화가 일어났지만 가장 큰 변화는 이제는 시골에서 아이들을 볼 수 없게 된 일입니다. 시골 골목길에서 고무줄을 하고 줄넘기를 하던 아이들은 모두 다 도시로 이사를 가고 이제 시골에는 할머니 할아버지들만 살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논농사는 모두 기계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논에 모심기를 하는 5월 초여름이 되면 들에는 논을 갈아엎는 ‘트랙터’소리만 요란합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한 줄로 늘어서서 못줄에 맞춰 모를 심던 풍경도 다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당연히 논두렁에 둘러앉아 바가지에다 비벼먹던 새참이나 농사철이 되면 헛간에서 몰래 만들어 먹던 밀주 막걸리도 이미 사라진지가 오래되었습니다.
그 때는 점심밥을 먹을 때면 모심기를 하는 엄마나 아버지를 찾아 논두렁까지 나온 아이들까지 다 함께 엉겨 붙어 점심밥을 먹어도 누가 뭐랄 사람이 없었습니다. 논에 심은 벼가 아침저녁 주인의 발자국 소리를 듣고 자란다는 말도 이제는 다 전설 같은 옛말이 되고 말았습니다.
지금은 겨우내 묵은 논을 갈아엎는 일부터 추수를 해서 집안에 들이는 일까지 모두 영농회사에서 알아서 다 처리해줍니다. 가을이 시작되기 전부터 불기 시작하는 태풍에 벼가 쓰러져도 일으켜 세우는 수고도 하질 않습니다. 홍수가 나도 물고를 보는 사람도 찾기 어렵습니다. 그만큼 우리 생활에서 농사가 홀대를 받습니다. 쌀가마니가 돈이요 부의 상징이던 시절도 이미 다 지나가고 말았습니다.
책을 만드는데 잠시 혼동이 왔습니다. 지금 아이들에게 쟁기가 무엇인지? 농사에 소牛는 왜 필요한 것인지? 어떻게 알려주고 풀어나가야 할 것인가? 망설였습니다. 하지만 동요 ‘노을’이 만들어지던 1970~80년대 그 시절로 돌아가는 것이 옳았습니다.
도시에서 태어나서 도시에서 살고 있는 아이들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는 마음속에 하나씩 자기 고향을 가지고 있습니다. 혹 어느 아이는 그 고향에 사과나무를 심고 또 어떤 아이는 말馬을 키웁니다. 다른 아이는 집 마당에 개울물을 들여놓습니다. 풍차를 만들어 돌리기도 하고 물레방아를 만들기도 합니다. 마음속 고향입니다.
세상은 바뀌어도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 그런데 자연이 날이 갈수록 사람들이 쏟아내는 온갖 오염 물질과 쓰레기로 자연과 농촌은 날로 날로 황폐화되어지고 있습니다. 농촌이 죽으면 도시도 따라서 죽게 됩니다.
풀을 베어 소나 돼지 똥을 섞어 만든 퇴비로 농사를 짓던 30년 전의 맑고 깨끗한 자연으로 되돌아가 건강하게 살아가는 세상을 위해서 이제는 다 잊혀진 그 시절 노을을 생각하며 다시 ‘노을’ 노래를 부릅니다.

 

이동진은 홍익대 미대 卒, 한광고등학교 교사, MBC창작동요제 대상곡 ‘노을’의 작사가다.    
 ※ 블로그 http://blog.naver.com/jaa_yoo(바람이 머물다 간 들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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