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과연 행복한가?

오늘 이 나라가
이리도 혼탁하고 어지러운 것은
모두 하나같이
배운자(識者)들이 저지르는
부정과 부패, 도둑질과 비리,
착취와 결탁 탓입니다

 

 
처음 사람을 만나면 서로 인사를 나누고 통성명을 하고 난 뒤에 버릇처럼 묻는 말 가운데 하나가 바로 고향이 어디냐? 하는 물음입니다. 사람이란 타고난 본성이 중요한 것이지 어디서 태어난 것이 무슨 큰 소용이 있겠냐만서도 사람들은 누구나 자라면서 알게 모르게 주변 환경의 영향을 크게 받습니다. 더 이상 말할 것도 없이 ‘맹모삼천지교’ 맹자 어머니가 어린 맹자를 올바로 교육시키기 위해서 세 번 이사를 옮겨 다녔다는 고사만 보아도 사람은 저 혼자 성장하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태어나서 자라온 평택은 교육적으로 그다지 긍정적이지 못한 편이란 생각입니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먼저 꼽을 수 있는 것이 평택시민이 긍지를 갖게끔 평택을 대표하고 자랑스럽게 생각할 수 있는 인물이 없다는 것입니다. 선무일등공신 원균 장군은 틀림없이 존경을 받아 마땅한 분입니다. 하지만 군사정권과 유신시대 우리는 원균 장군이 임진왜란 패전의 멍에를 모두 걸머지고 비난의 화살을 한 몸에 받아야 하는 치욕적인 인물이라는 교육을 끊임없이 받아야 했습니다. ‘적과 싸우는 병사를 놔두고 혼자 살기위해 도망친 장군’, ‘전투에 져서 이순신이 만든 배를 모두 바다에 빠뜨린 패장(敗將)’ 이순신을 돋보이게 하려니 없는 죄까지 다 뒤집어 써야했습니다.
이 상처는 언제나 아물게 될까요? 평택! 우리는 우리가 평택사람인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나요? 평택은 오랜 시간 야성(野性)이 강한 지역이었습니다. 피땀 흘려 농사를 지어도 가을이면 모든 것을 다 지주(地主)에게 수탈당해야 했던 역사가 평택을 반정부적 지역특성으로 바꾸어 놓았던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평택이 언제나 야당을 옹호한 것은 아닙니다. 그 동안 평택지역을 대표해서 국회의원이 되었던 정치인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평택시민의 날카로운 정치색을 가늠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야당이 되었든 여당이 되었든 지금껏 자신의 정치적 고향인 지역발전을 위해 몸 바쳐 헌신한 국회의원을 평택시민이 단 한 명도 기억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다른 시각으로 보면 그만큼 다른 지역에 비해 문화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황폐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물론 국회의원이란 어느 한 지역을 위해서만 일을 하는 정치인이 아닌 것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지역 국회의원의 역량에 따라 지역변화 속도가 달라지는 것 또한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평택지역을 대표하는 정치인으로 우리가 자랑스럽게 생각하기 보다는 오히려 부끄러운 존재로 인식되었던 정치인도 있었습니다. 아니 한 두 명이 아니었습니다. 지역발전이나 나라발전은 뒷전으로 미룬 채 당리당략에 눈이 멀어 지역사회에 해독을 끼치는 것은 물론 제 가족이나 챙기고 제 ‘몸보신’에만 열을 올리는 정치인이 한 둘이 아니었습니다.
배를 타고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가던 안산시 단원고등학교 2학년 학생 250여 명이 두 달이 지나도록 집으로 돌아오지 못한 ‘세월호’ 참극을 기화로 해서 정치권이 요동치고 있는 가운데 제 역할이 무엇인지 제대로 가늠하지 못해 헤매고 있는 정치인이 비난을 받고 있습니다. 그는 분명 성공한 기업인이기도 하지만 돈을 좀 벌었다고 해서 그가 마음속에 담고 있는 모든 생각이나 판단력이 다 옳은 것은 아닐 것입니다. 수리력이 빨라 남들 보다 돈 버는 재주는 뛰어날지 모르지만 그가 오늘에 이르기까지 성장하는 과정에서 인문학(人文學)에서 요구하는 사람이 사는 사회를 향한 종합적 통찰력이나 분석력 그리고 문학적 상상력을 통한 추리력과 인간에 접근하는 객관적 시각에 대해 등한시 한  결과입니다.
지난 서울시장 선거를 앞두고 어느 당(黨) 시장 후보 아들이 내뱉은 한마디로 대한민국 국민 모두는 순식간에 ‘원시인’이 되고 말았습니다. 지지합니다. 옳은 말입니다, 우리가 미개인이란 말 하나도 틀리지 않습니다, 올바로 봤습니다, 그 청년 칭찬하고 싶습니다, 우리가 정녕 ‘미개’한 국민이 아니었다면 오늘 날 우리 정치가 이렇게 타락하지는 않았을 것이지요.
‘광주민주화 운동’ 어느새 34주년 그런데 5·18 행사장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 노래를 부르겠다 거니, 못 부른다 거니 해마다 이 노래 하나로 혼란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올해도 반쪽짜리 기념식이 치러졌습니다. 참으로 딱한 일입니다. 이 노래를 부른다고 당장 우리나라에 ‘풍전등화’의 위기가 오는 것도 아닙니다. 국운(國運)의 존폐가 달린 일도 아닙니다. 그런데 왜 노래를 부르지 못하게 하는지? 알 수 없습니다.
독재, 다른 것이 독재가 아닙니다. 백성의 자유가 억압되면 그것이 곧 독재입니다. 지성(知性)은 정의(正義)입니다. 세계에 자랑하는 교육열로 우리나라에는 지식을 가진 사람은 많습니다. 그러나 그 지식을 올바로 쓰지 않는 사람은 더 많습니다. 오늘 이 나라가 이리도 혼탁하고 어지러운 것은 모두 하나같이 배운자(識者)들이 저지르는 부정과 부패, 도둑질과 비리, 착취와 결탁 탓입니다.
건국 70년 한창 힘차게 발전을 해야 할 시기에 사회 곳곳에서 정의를 상실한 대한민국입니다.
‘나라가 바뀌어야 한다’ 모두가 다 동의합니다. 그런데 어리석게도 붓(筆)을 바꾸겠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아무리 아무리 붓을 바꾼들 물감이 바뀌지 않는 한 그려지는 그림은 늘 그 빛깔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당장 이 나라가 바뀔 것이라 기대하는 사람은 아마도 아무도 없을 것이지요. 물감이 그대로이니 말입니다.
평택에도 다시 선거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이동진은 홍익대 미대 卒, 한광고등학교 교사, MBC창작동요제 대상곡 ‘노을’의 작사가다.      ※ 블로그 http://blog.naver.com/jaa_yoo(바람이 머물다 간 들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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