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덕면 유지들이 친목 도모
이대헌 발기, 위원장 이조헌

 
“경기도 진위군 현덕면에서는 유지 이대헌 외 제씨의 발기로 친목을 주장하며 지덕체 삼육을 장려하기 위하여 진위구락부를 조직하고 지난 12일에 동면 운정리 이강헌 씨 집에서 창립총회를 개최하였는데, 회원은 통상회원, 찬조회원 2종으로 구분하였다 하며, 임원은 회원 30여 인이 투표 선거하였는데, 위원장 이조헌, 학예부장 이민복, 경리부장 이국헌, 서무부장 이민행 제씨가 당선되었다 하며, 좌기 제씨의 찬조금과 물품 동정이 있었다더라.(후략)”(『동아일보』 1927년 6월 18일)
1927년 6월 12일 현덕면 운정리의 이대헌의 발기로 뜻을 같이 한 유지들이 친목을 도모하고 지덕체(智德體)의 교육을 위해 진위구락부(振威俱樂部)를 조직했다. 구락부는 영어의 클럽(club)의 일본식 표기이다. 구락부는 우리나라에 들어온 서양 사람들이 사교를 위해 설립한 것으로 이들에게는 관습적인 것이었다.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만들어진 구락부는 1891년으로 인천구락부였다. 이후 다양한 구락부가 조직되었다. 평택에도 1917년 진위구락부가 이미 조직된 바가 있었지만 1922년 진위청년회로 재창립되었다.
1927년 6월 12일에 창립된 진위구락부에 참여한 유지들은 이대헌 외에도 이조헌·이민복·이국헌·이민행·이강헌·조동규·오영진 등이었다. 진위구락부가 조직된 운정리는 함평 이 씨의 집성촌이기도 한데, 때문에 진위구락부에 참여한 주요 인물들 대부분 함평 이 씨였다. 특히 자신의 집을 창립총회 장소를 제공한 이강헌은 재력가로 1936년 3월 보릿고개인 춘궁기에 배고픔으로 허덕이는 궁민에게 백미 1백 가마를 제공한 바 있다.(『동아일보』 1936년 3월 26일자) 1939년 10월에는 서울로 이주하였음에도 불구하고 현덕소학교를 증축할 때 3000원을 기부하기도 했다.
창립 당시 기부금과 물품이 적지 않았다. 이강헌은 100원과 라켓 4개 축구공 1개·네트 1개를 기부하였고, 이외에도 이대헌은 5원과 운동장 200평·이민복은 50원·이조헌은 30원·조동규는 10원·이국헌은 7월 20전·이민행은 5원·오영진은 5원을 각각 기부했다. 이외에도 적지 않은 회원이 기부를 하였지만 5원 이하는 생략했다. 진위구락부는 창립 이후 회관 내에 운정강습회를 설치하고 교육운동을 전개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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