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안간 조수 밀려들어
3명 익사·6명 구사일생

 
'“지난 15일 오전 1시경에 진위군 서면 서북방에 있는 진위 안성천 하류에서 어부 아홉 사람 중에 박정보란 사람을 시켜 배를 갯가에 두게 하고 만일 조수가 들어오는 때에는 급히 배를 띄워 아홉 사람이 같이 타고 오기로 약속하고 여덟 사람이 중류에 들어가서 숭어를 잡던 중 별안간 들이미는 조수에 (중략) 홍운붕 외 다섯 사람은 물에 떠내려가다가 천우신조하여 배와 같이 언덕에 부딪쳐 근근이 생명을 구하였다는데, 전기 세 사람의 시체는 그 이튿날 전부 발견이 되었다더라”(『동아일보』 1928년 6월 24일)

평택은 서해안을 끼고 있어 도농복합도시로서의 모습뿐만 아니라 항구와 어촌을 가진 해양도시의 모습 등 복합적인 형태를 지니고 있다. 이에 따라 어업과 관련된 사건사고도 적지 않았다. 최근에는 어업이 많이 쇠퇴하였지만 근대 형성기라고 할 수 있는 한말과 일제강점기만 해도 적지 않은 어촌이 형성되었고 생업에도 영향을 미쳤다. 특히 밀물과 썰물을 이용해 고기잡이를 하는 경우가 많았다.
1928년 6월 15일 한밤중 썰물 때를 이용하여 숭어 잡이를 갔다가 참사를 당했다. 이날 당시 진위군 서면(현 팽성읍) 도두리에 사는 박정보(朴正輔)·홍운봉(洪雲鳳) 등 9명은 썰물 때를 기다렸다가 숭어 잡이에 나섰다. 이들 중 박정보·홍운봉 등 8명은 진위천 중류에서 숭어를 잡기로 하고, 박정보는 조수가 밀려오는 때를 기다렸다가 배를 대기로 했다. 그런데 갑자기 조수가 밀려오는 바람에 배를 미처 대지 못했던 것이다.
이로 인해 숭어 잡이를 나섰던 황교성(黃敎性·23)·송대석(宋大石·42)·송복제(宋福世·21) 등 3명은 잡자기 불어난 물에 빠져 죽고, 홍운봉 등 6명은 물에 떠내려갔다가 배와 같은 언덕에 부딪혀 구사일생으로 살아났다. 죽은 3명의 시신은 다행히 이튿날 찾을 수 있었다.
평택은 예로부터 숭어가 특산물이었다. 숭어는 한자로 수어(秀魚)로 표기했다. 숭어과에 속한 바닷물고기인 숭어는 민물에서도 살 수 있다. 민물에는 주로 먹이를 구하기 위해서 올라오는데, 이때 숭어 잡이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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