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세 꽃다운 나이에 순국한 넋 기려
문화재 관리 소홀, 선양사업 힘써야

지난 28일 포승읍 희곡리에 위치한 확충사에서 충렬공 이대원 장군의 제425회 추모제향이 열렸다.
이날 행사는 평택시의회 송종수 의장, 김기성, 김숭호, 최중안 시의원 등 100여명의 추모객이 참가한 가운데 정금진 안중출장소장이 초헌관, 해군2함대 김창규 전대장이 아헌관, 김은호 평택문화원장이 종헌관을 맡아 제례를 진행했다.
포승면 희곡리에서 태어난 이대원 장군은 18세의 어린 나이에 무과에 급제해 선전관으로 등과 했고, 3년 후 21세 되던 해에 역사상 가장 젊은 나이로 전라도 고흥반도 지방의 녹도만호(종4품)가 되었다.
그의 나이 22세가 되던 1587년 2월 전남 고흥 손죽도 인근 해상에 침공한 왜구와의 1차 해전에서 큰 승리를 거두고 귀대했으나 그의 전공을 시기한 직속상관이 불과 백여 명의 병졸을 주며 다시 싸울 것을 명함에 따라 불리한 싸움 끝에 절명하고 만다.
장군이 손죽도 해상에서 순국하자 손죽도 마을 주민들이 그의 시신을 거두어 마을 남쪽 뚝박골에 매장했다고 전해지며 가족들이 그의 죽음을 알고 속적삼을 고향 대덕산 밑에 묻어 장사를 지낸 곳이 평택시 포승면 희곡리에 위치한 장군의 무덤이다.
장군을 억울한 죽음으로 내몬 상관은 그 죄를 물어 참형을 당하였으나 장군의 공적은 순직한지 81년이 지난 현종 9년인 1668년에 이르러서야 정식 인정을 받아 병조참판으로 추서되었다.
함평 이 씨 대종회 이욱헌 회장은 “이순신 장군에 대한 연구와 고증은 많이 이루어져 있고, 모든 사람들에게 익히 알려져 있다. 그러나 같은 시대를 살다가 약관을 갓 넘긴 22살의 꽃다운 나이에 조국의 해안을 침입해 백성들의 삶을 도탄에 빠지게 한 왜구들과 싸우다 순국한 충렬공 이대원 장군에 대하여서는 너무나 모르고 있다”며 안타까워했다.
이날 포승읍 내기초등학교 학생 대표로 참가한 한 학생은 “이런 훌륭한 분이 지역에 계셨다는 것이 자랑스럽다”며 “위인전이라도 있어서 우리 어린이들이 읽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장군의 이러한 위상과는 달리 현재 확충사는 이대원 장군의 묘와 신도비가 1980년 경기도 기념물 제56호 지정되었으나 최근 관리가 잘 이뤄지지 않은 듯 지붕 기와에 잡초가 무성히 자랄 정도여서 참배객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경기도는 올해 8000여만 원의 예산을 투입해 그동안 낙후되었던 주변 환경을 개선하고 방문객들을 위한 화장실도 신축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으나 성역화 사업에는 턱없이 부족한 예산이다. 결국 방치되고 있는 지역 문화재의 보존을 위해서 평택시 차원의 더 많은 관심과 선양사업에 대한 지원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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