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편찬이 체계적 이여야만
지역학문의 토대가 튼튼해진다.
개인저작물의 경우도 특정인의
노력만으로는 되지 않는다.
다시 말해서 지역학문의 수준과
연구풍토 조성이 잘 돼있어야 한다.
연구풍토는 개인의 연구노력과
공적기관의 지원이 어우러질 때
활발해질 수 있다

며칠 전 책 한권을 선물 받았다. 임봄 기자가 <평택시사신문>에 연재하였던 <이것이 평택의 토종>이라는 책이다. 이렇게 귀한 향토지를 받아들면 우선 반갑고 뭉클한 마음이 앞선다. 평택사회에서 지역사를 연구한다는 것, 향토지 한 권을 편찬하는 일이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지 익히 일고 있기 때문이다.
평택지역에서 향토지 편찬이 어려운 가장 큰 원인은 ‘향토지 편찬시스템’의 부재이다. 통상 향토지라고 하면 시(市)의 정사(正史)라고 할 수 있는 ‘시사(市史)’를 비롯하여 역사문화관련 기획물, 개인연구서와 일반저작물을 망라하는 개념이다.
그중 기획물 편찬은 사료집이나 읍·면지, 마을지 편찬에서 많이 이뤄진다. 중앙에서는 관심 없고 지역에서는 꼭 필요한 작업을 시(市)나 문화원과 같은 공적기관에서 편찬하는 것이다. 기획편찬이 체계적으로 이뤄져야만 지역학문이 발전하고 토대가 튼튼해진다. 개인 저작물의 경우도 특정인의 노력만으로는 되지 않는다. 다시 말해서 지역학문의 수준과 연구풍토 조성이 잘 되어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연구풍토는 개인의 연구노력과 공적기관의 지원이 어우러질 때 활발해질 수 있다. 하지만 평택시는 체계적 지원시스템이나 연구토대가 대단히 미흡하다. 정치권의 이해관계에 따라 시사(市史)가 편찬되고, 어느 누군가의 노력이 깃들 때에만 쓸 만한 향토지 한권이 편찬되는 것은 그런 이유다.
근래 서울시는 뉴타운개발을 하면서 수많은 마을지와 사진집·구술 자료집을 펴냈다. 서울의 역사·지리·문화·경제·사회·민속과 관련된 흥미로운 책들도 다수 편찬하였다. 서울시가 훌륭한 인문학 연구 성과들을 양산하는 배경에는 잘 구비된 연구와 편찬시스템이 있다. 개인 연구자들의 연구토대를 마련해주고 그들이 연구하고 생산한 성과물을 객관적 검증과정을 거쳐 발표하게 해주는 모습도 부러운 모습이다. 서울역사박물관을 비롯한 다수의 박물관·사료관들도 직접 발굴하거나 조사 용역을 수행하여 좋은 성과물을 편찬하고 있다.
하지만 평택시로 고개를 돌려보면 암담한 현실만 눈에 띈다. 몇 년 전 평택문화원에서 의욕적으로 기획·편찬했던 읍·면지조차 정권이 바뀌고 담당 직원이 갈리면서 중단되는 현실에서 체계적 연구·출판시스템 구축은 언감생심이기 때문이다.
이 같은 모순을 극복하려면 우선 평택시청에 학예사를 배치하고 박물관을 건립해 학예사를 채용하는 등 학술연구를 담당할 인적 인프라 구축이 시급하다. 지역학은 학술적 연구 성과에서 학계의 높은 가치를 인정받기 힘들고 출판된 책은 상업적 판매도 어렵기 때문에 지방자치단체의 출판지원도 꼭 필요하다.
이번에 출판된 <이것이 평택의 토종>은 언론사 기자가 신문에 연재한 뒤 평택시의 지원을 받아 평택문화원에서 간행되었다. 언론의 노력과 자치단체의 지원이 어우러져 빛을 본 케이스다. 일반적으로는 평택문화원이나 평택시에 수차례 출판계획서를 제출하고 정치인들을 설득해야만 겨우 성사된다. 지역사를 연구하는 사람들의 유·무형적 지식의 축적물을 존중해주는 풍토가 평택에서도 조성됐으면 한다. 수원처럼 인문학도시는 아닐지라도 최소한의 풀뿌리 지역학과 문화발전을 위해 주초석이라도 세우는 모습이라도 보이자.

 
김해규 소장
평택지역문화연구소

저작권자 © 평택시사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