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업자들의 단결을 위해 설립
자본금 5만원으로 회사 조직

 
“전 조선 각지에서 1역1점 주의로 문제가 됨에 따라 경부선 평택의 운송업자들로 동업자 간에 단결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느끼게 되어 월전부터 누누 회의를 하였으나 의사가 일치되지 못하여 문제의 해결을 보지 못하였던 바, 지난 4일 평택역 구내에서 평택운송업자 합동발기회를 개최하고 당지 상주임 성주한씨 사회 하에 합동에 대한 구체방침을 장시간 토의한 결과 일반의 찬성으로 결국 합동하기로 되었는데, 점명은 (1)평택운송합동주식회사라 칭하고 자본금은 5만원 즉 1천주로 하였는데, 전 주수를 운송업자가 각기분배인수하기로 하고 사무는 오는 8월 1일부터 개시하리라더라” (『동아일보』 1929년 7월 12일)
경부선 평택역이 개통됨에 따라 역을 중심으로 운송업자들이 하나 둘씩 늘어났다. 1920년대 평택지역의 운송회사는 10점(店) 정도였다. 이들 운수업자들은 평택운송조합을 조직하여 업자들 간의 이익을 도모했다. 그러나 이들 운송업자들의 경쟁으로 업계가 혼탁해지자 당국에서는 1역1점의 운송회사를 조직하도록 했다. 이에 전국의 각역에서는 운송업자들이 합동하여 운송회사를 조직했다.
그러나 평택지역에서는 운송업자들 간의 갈등으로 운송회사를 설립하지 못하였다. 당국의 압력이 지속되자 운송업자들은 평택운송합동주식회사를 조직하기로 하고 1927년 7월 4일 평택역 구내에서 발기회를 개최했다. 발기회는 당시 평택운송조합장 성주한(成周漢)의 사회로 진행되었으며, 업자들의 찬성으로 평택운송합동주식회사를 설립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자본금 5만원으로 평택운송합동주식회사가 설립되었으며 1927년 8월 1일부터 영업을 시작했다.
자본금 5만원은 운송업에 종사하는 점주들이 7월 30일 마련함에 따라 다음날 7월 31일 창립총회를 개최하고 평택운송합동주식회사를 설립했다. 설립 당시 대표이사는 이성열(李成烈), 전무이사는 오카다(岡田武吉), 이사는 정용운(鄭容運)과 하시모토(橋本柳助), 후지모토(藤本新二), 감사는 안종철(安鍾喆)과 모리(森賢吉) 등이었다. 사원은 6명, 차부(운전수)는 3명이었다. 대표이사 이성열은 생활이 어려운 궁민을 위한 자선사업을 적지 않게 했으며, 평택운송조합장 성주한 역시 지역유지로 활동하는 한편 1930년대는 동아일보 평택지국 고문으로 추대되기도 했다. 이처럼 평택운송합동주직회사가 설립됨에 따라 평택운송조합은 해체되었다.

저작권자 © 평택시사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