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량주권은 생산자와 소비자 연대,
공동체 가치 회복을 위한 전제다.
정부에 대한 불신 속에서
생존을 위한 개별적 이전투구보다
연대의식을 높이는 것은
선진국가가 되기 위한
국민의 필수적 자질이다.
더 이상 식량주권을 포기하고
감당할 재앙을 방치해서는 안 된다

정부가 내년부터 쌀 관세화 개방을 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농민단체들은 반발하고 있지만 정부의 태도는 확고부동해 보인다. 이미 농민들은 정부의 농산물개방 수순을 위한 거짓말을 경험해 왔다. 해방이후 최대 단체가 결집한 범국민대책기구가 만들어지고, 최단기간 동안 천만 명이 넘는 반대서명을 받아 ‘농산물 수입개방 반대’에 전 국민적 의지가 표출 되었을 때, 그나마 김영삼 정부는 쌀 개방만은 반드시 막겠다고 공언했지만 약속을 지키지는 못했다. 지금은 관세화 개방에 대한 농민들의 반발 속에서도 한국과 중국 FTA가 진행 중이다. 이쯤 되면 농민들을 무시하는 행태가 도를 넘어선 것이다.
정부는 자원이 빈약한 우리나라가 수출 주도형의 경제구조에서 살아남기 위한 고육지책이라고 한다. 하지만 지난 20년간 정부는 무엇을 준비하고 우리 농업은 어떤 변화가 생겼는가? 쌀값은 물가 인상률과 농기계·비료·농약·자재가격 인상에 비하면 오히려 뒷걸음질이다. 농민들의 소득증대를 위한 영농규모 확대는 한계에 봉착했으며, 쌀농사에 더해 시설채소 등 타 작목을 병행하는 복합영농·영농작업 대행·겸업을 하거나 도시민보다 덜 소비하면서 버텨왔다. 안전하고 맛있는 쌀 품종을 재배하는 것이 국민들이 우리 쌀을 사랑하고 지속적으로 소비할 수 있는 밑천임에도 정부는 오히려 고품질보다 다수확 품종이나 기능성 품종으로 활로를 찾을 수 있는 것처럼 호도하기도 했다.
정부는 의무 수입된 쌀을 소비하기 위해 수입쌀과 국산쌀을 혼합해 파는 것을 허용해 혼합미가 국산쌀로 둔갑하는 것도 방치했다. 이미 쌀 소비량의 9%에 달하는 의무수입쌀이 알게 모르게 식당이나 김밥용 쌀로 사용되고 있고, 우리는 이 수입쌀 맛에도 길들여져 가고 있다. 또한 쌀이 주식인 우리 민족에게 우유를 마시고 빵과 고기를 먹어야 건강해 지는 것처럼 장려해 왔다. 하지만 식생활의 왜곡이 비만과 각종 성인병 유발로 사회적 비용을 증대시키고 있다. 명백한 잘못임이 드러난 것이다.
몇 년 전부터 자연재해에 대한 정부 보상인 실효성 없는 재해보험제도를 도입해 농가에 책임을 떠넘긴 이후로는 더욱 마음의 부담이 커졌다. 이처럼 농산물 수급은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불확실성이 크다. 식량주권을 포기해서는 안 되는 이유이다.
밥 세끼와 작은 집에 살면서 기본적인 의식주 해결에 급급했던 농경사회보다도 더 많은 문명의 혜택을 누리는 지금, 우리는 왜 박탈감이 더 크고 행복하지 못한 것일까?
경제성장이 곧 국민들에게 경제적 풍요와 행복한 삶을 보장하지는 못한다는 것이 명백해졌다. 우리는 지금보다 더 고용불안과 소득불균형·청년실업 등으로 암울한 미래를 걱정해야 하는 시대에 살아본 적이 없다. 식량주권의 확보는 생산자와 소비자의 연대, 공동체 가치의 회복을 위한 전제이다. 또한 정부에 대한 불신 속에서 생존을 위한 개별적 이전투구보다 연대의식을 높이는 것은 선진국가가 되기 위한 국민의 필수적 자질이기도 하다. 더 이상 식량주권을 포기하고 나서 감당해야 할 재앙을 방치해서는 안 된다. 식량주권을 지킬 의지가 있다면 정부가 누구를 설득해야 하고 무엇을 준비해야 할지 답이 나온다. 식량자급 없이, 농업 주권을 포기하고도 선진국이 된 나라가 지구상 어디에 있는가? 대통령과 정부가 국가대개조의 우선 대상인 이유가 여기서도 확인된다.

 

 
신용조 이사
평택농업희망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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