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소년동맹에 보낸 축문 문제 삼아
경찰, 노동청년회 마크 지울 것 명령

 
“지난 7일 오후 2시경에 경부선 서정리역(京釜線 西井里驛)에 있는 조선노동 서정리청년회(西井里靑年會) 집행위원장이요 조선농총 중앙집행위원(朝鮮農總 中央執行委員)인 남상환(南相煥)씨를 당리 주재소에서 소환하여다가 장시간 심문이 있었다는데, (중략) 대회석상에서 정정당당히 통과된 축문의 의미를 묻고 나서는 서정리노동청년회(西井里勞動靑年會) 간판에 전부터 그려 달렸던 마크가 불온하니 좀 지워달라고 하였다는데, 일반은 신경 과민한 평택 경찰을 작으나 비난한다고 한다.(중외일보 1930년 8월 10일)
일제강점기인 1920년대에서 1930년대 넘어가면서 적지 않은 변화가 있었다. 일본은 1930년대 들어 만주침략을 준비하면서 통제가 강화되었는데 이는 식민지 조선에까지 그대로 영향을 주었다. 더욱이 1925년 치안유지법이 발효되면서 사회주의 세력뿐만 아니라 민족주의 세력도 활동을 하는데 많은 어려움이 따르고 있었다. 이러한 영향은 서울뿐만 아니라 평택의 사회단체도 그대로 적용되었다.
평택의 사회운동은 평택역과 서정리역 등 주로 역을 중심으로 활발하게 전개되었다. 이는 역이 그만큼 사회운동을 하는데 용이하기 때문이다. 1930년 초 서정리에는 다양한 사회운동 단체들이 조직되어 활동했다. 이중 대표적인 단체가 서정리노동청년회, 서정리소년동맹이었다. 서정리노동청년회는 서울의 조선노동총동맹의 지부로서 역할을 했다. 이 두 단체의 중심인물은 남상환이었다. 남상환은 평택뿐만 중앙에서도 널리 알려진 인물이었는데 노동운동뿐만 아니라 농민운동에 적극 참여했다.
1930년 8월 5일 남상환은 서울에 열린 조선농민총동맹 중앙집행위원회에 참석하였는데, 이날 회의에서 서기를 맡았고 규약을 개정했다. 때문에 경찰은 불온하게 여기고 있던 조선농민총동맹이 새로 개정된 규약이 궁금했던 것이다. 이에 앞서 남상환이 회장으로 있는 서정리소년동맹은 7월 25일 수원소년동맹 양감지부 정기대회에 축전을 보냈다. 당시 축전의 내용은 회의에서 공개하였는데, 이 역시 식민지배에 거슬렸던 것이다.
안 그래도 남상환의 활동이 늘 불온하다고 인식하고 감시하고 있던 평택 경찰은 결국 남상환을 소환하여 장시간 동안 구금한 상태에서 심문을 했다. 그래도 별다른 점을 찾아내지 못하자 이번에는 남상환이 역시 회장으로 있는 서정리노동청년회의 간판에 있는 ‘마크’가 불온하다고 지우라고 명령했다. 이러한 사실에 서정리 일대 주민은 평택 경찰의 처사가 부당하다고 비난했다. 이러한 서정리 주민의 비난은 일제 식민정책에 적지 않은 불만을 가지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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