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택의 사라지는 마을 지표조사’
용역을 실시한다고 한다.
사라지는 마을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
평택지역의 역사와 전통을 지키고
전승하려는 노력의
일면을 보는 것 같아
반갑기 그지없다

 


평택지역에는 구석기시대부터 사람이 살았다. 신석기시대에는 많은 사람들이 구릉과 강가에 거주하며 집을 짓고 사냥과 어로활동을 하였고, 청동기와 초기철기시대를 거치면서 농경과 목축활동을 하였다.
현재 개발 사업으로 발굴이 진행되는 서평택지역과 비전동·지제동·고덕면 여염리·율포리 일대의 유적에서는 시대를 불문하고 다양한 유적과 유물이 발굴되고 있다. 고대국가 형성 이후에는 무봉산·덕암산·부락산·오성산·광덕산과 같이 비교적 높은 산기슭에 마을이 형성되었다.
이들 마을은 계곡에 경작지를 조성하고, 산에서 땔감을 구했으며, 계곡물이 흐르는 냇가에서 식수와 농업용수를 확보하면서 생활을 영위하였다. 인간의 힘으로 극복할 수 없는 일들, 자연의 은혜에 감사할 수밖에 없는 일들은 하늘에 기원하고 감사하며 살아왔다.
마을은 사람이 살아가는 공간이다. 척박했던 근·현대사를 살아온 평택지역 민중들은 기쁘고 때론 서글프며, 도저히 기억에서 지울 수 없는 다양한 경험을 마을이라는 공동체를 중심으로 겪어왔다. 그들의 기억과 경험은 곧 평택지역 근·현대사이며 우리시대의 역사이다.
경부선 평택역 근처에 도시가 형성되고 시장이 발달하는 과정, 일본인들의 삶의 양태, 일제 말 징병, 징용, 종군위안부 문제, 해방의 광경, 해방 초기 좌우익의 갈등, 한국전쟁, 피난민간척사업, 새마을운동, 평택지역의 사회운동, 교육운동, 한국전쟁 뒤 시가지의 재편, 송탄과 안정리 기지촌의 형성·발전과 같은 평택지역의 굵직굵직한 사건들은 문헌보다는 마을에 거주하는 민중들의 기억 속에 더 많이, 더 자세하게 남아 있다.
평택지역 개발이 촉진되면서 약 30여개의 마을들이 개발로 사라지거나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마을이 사라지면 그 마을이 갖고 있던 지리적 경관도 변하고 역사와 문화·민중들의 다양한 경험도 사라진다. 어느 역사학자는 마을은 그 자체로 '하나의 박물관'이라고 하였다. 마을이 박물관인 것은 민중들의 다양한 유물들이 남아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마을주민들의 기억, 그들의 삶 속에서 얻을 수 있는 다양하고 흥미로운 무형의 문화유산이 그곳에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평택지역에서는 사라지는 마을의 유·무형적 유산을 어떻게 보전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가 거의 없었다. 어떻게 남길 것인가를 고민하며 노력하는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다. 고덕국제신도시 건설로 한꺼번에 수 십 개의 전통마을이 사라지고 있는 현실에서도 시행사의 ‘문화 아카이브 구축’ 자료와 평택문화원의 <고덕면지> 정도만 발간되었을 뿐, 사라지는 마을과 문화를 아쉬워하고 적극적으로 남기려는 노력은 정말이지 많이 부족했다.
소사벌택지지구와 용죽지구·서재지구가 개발되면서 수백 년 된 마을 다섯개가 사라졌는데도 대책은 전무했다. 그것은 장안동·황해경제자유구역·포승제2산단 내 원터마을·안중읍의 송담1리·청북면 청북택지지구의 옥길리 마을들·송탄동의 가재마을·세교동 은실마을 등 사라졌거나 사라질 예정의 마을들도 마찬가지다.
이번에 평택문화원에서 ‘평택의 사라지는 마을 지표조사’ 용역을 진행한다고 한다. 사라지는 마을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 평택지역의 역사와 전통을 지키고 전승하려는 노력의 일면을 보는 것 같아 반갑기 그지없다.
이번 지표조사에서는 분야별 최고 전문가들을 조사위원으로 선정하여 조사를 하고 추후 평택시가 예산을 세워 마을지로 편찬하겠다는 복안까지 서 있다는 전언이다. 필자는 이번 사업이 성공리에 마쳐지기를 기대한다. 그래서 작은 것 하나라도 우리의 옛것을 아끼고 사랑하며 후대에 전승하려는 평택시와 평택시민들의 관심과 노력이 올바르게 발현되기를 기대한다. 그것이 도시를 균형 있게 발전시키고 미래를 밝히는 성숙된 모습이다.

 

 

▲ 김해규 소장
평택지역문화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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