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수에그라·똘레도

 
콘수에그라(Consuegra)
매년 4월 23일은 유네스코(UNESCO)가 1995년에 정하여 세계 100여 개국에서 지키고 있는 ‘책의 날’이다. 4월 23일은 영국이 낳은 위대한 작가인 윌리엄 셰익스피어(William Shakespeare, 1564.4.26~1616.4.23)와 스페인의 위대한 작가 미겔 데 세르반테스(Miguel de Cervantes Saavedra, 1547.9.29~1616.4.23)가 사망한 날이다. 참 묘하게도 위대한 천재 작가 두 분이 같은 해, 같은 날 하늘의 부르심을 받았다. 이 날을 발전시킨 사람들은 스페인 카탈루니아(Catalunya) 사람들로, 이 지역에서 열리는 ‘책과 장미 축제(El dia de la Rosa,  El dia del Llibre)’가 바로 이날의 원조이다. 카탈루니아의 수호 성인(聖人)인 상트 호르디(Sant Jordi) 축일과 세르반테스의 사망일이 겹치는 4월 23일, 이 지방에서는 사랑하는 사람끼리 남성은 여성에게 장미꽃 한 송이를 선물하고 여성은 남성에게 책 한 권을 선물하는 풍습이 있다. 1926년에 시작된 이 축제는 지금 카탈루니아의 중심 도시인 바르셀로나를 중심으로 세계적인 큰 축제로 발전되었으며 세계 ‘책의 날’을 지정하는 데 크게 기여하기도 했다.
이처럼 스페인 국민들에게 있어서 세르반테스라는 작가는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준 사랑하는 국민작가이다. 특히 그가 1605년에 발표한 제1부 돈키호테는 스페인 최초의 근대 소설이며, 스페인 황금기의 대표적인 문학일 뿐 아니라, 스페인 문학사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작품으로 꼽히기도 한다. 2002년 노벨연구소가 세계 최고의 작가 100인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는 ‘문학 역사상 가장 위대한 소설’로 선정되기도 했다.
어린 시절에 누구나 한 번쯤은 읽어보았던 우스꽝스러운 돈키호테의 이야기는 이곳 라만차(La Mancha) 지역 콘수에그라(Consuegra)에 들어서자 거의 신앙 수준이 된다. 곳곳에 그와 관련된 많은 조형물들이 있다. 돈키호테와 산초의 동상, 그들이 머물렀던 주막, 거인으로 알고 싸웠던 풍차들이 길손을 붙들고 어린시절의 추억에 빠지게 한다.
풍차가 줄지어 선 언덕 위에서 라만차 지역의 넓은 들판과 비옥한 대지를 내려다 본다. 그리고 세르반테스 그가 살아간 치열했던 삶, 참전 군인으로, 노예로, 한 팔을 잃은 장애인으로 비운의 인생을 살면서도 빛나는 역작을 만들어 낸 ‘지혜의 왕자(el Principe de los Ingenios)’에게 마음 깊은 곳에서 뜨거운 박수를 보낸다.

똘레도(Toledo)
스페인의 수도 마드리드(Madrid)에서 남서쪽으로 70km 지점에 위치한 문화의 도시, 도시 전체가 세계 문화 유산으로 지정된 똘레도(Toledo)에 도착했다.
버스는 우리 일행을 톨레도를 감싸 안고 흐르는 타호(Tajo)강변 아름다운 다리 옆에 내려 놓았다. 그림같이 아름다운 다리가 타호강을 가로 질러 서 있다. 바로 알칸타라 다리(Puente de Alcantara)이다. ‘알칸타라’는 아랍어로 ‘다리’라는 뜻이다. 이 다리는 오랜 시간 톨레도를 바깥 세상과 연결하는 역할을 했다.
다행히 우리가 점심식사를 한 식당이 바로 이 알칸타라 다리를 마주보고 있는 곳이어서 여유있게 이 다리의 전경을 천천히 감상할 수 있었다. 그런데 입구 부분을 찬찬히 살피다보니 로마 숫자가 중간에 보였다. 그것은 ‘CXXVI’. 다행히 전에 로마 배낭여행을 할 때 로마 숫자를 읽는 법을 배워놨기에 쉽게 ‘126’이라 읽었는데 숫자 앞에 PSALM이라고 적혀있는 것을 보아 ‘시편 126편’이 분명했다. 나는 호기심에 스마트폰 성경 어플을 구동해서 시편 126편 내용을 읽으며 도대체 이 알칸타라 다리에 어떤 성경구절이 기록되어 있는 것인지 찾기 시작했다. 라틴어로 적혀있는 미지의 성경구절. 동행한 분들도 크리스천이 많았기에 이 내용을 모두 궁금해 했다. 가이드나 식당 주인도 알 수 없는 내용이라고 하고, 특히 가이드는 수십번 이곳을 왔는데 한 번도 그 내용을 알아보려 하지 않았다고 정말 궁금해 했다. 다리 입구 높은 곳에 기록되어 있는 그 라틴어 문장을 고개가 빠지도록 바라보며 한 글자 한 글자 스마트폰에 입력한 후 인터넷 검색을 눌렀다.
결과… “NISI DOMINUS CUSTODIERIT CIVITATEM FRUSTRA VIGILAT QUI CUSTODIT EAM”.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깨어있음이 헛되도다”(시편 127:1) 이었다.
함께 있던 모든 사람들은 이 구절이 스마트폰 화면에 뜨는 순간 알 수 없는 전율을 경험했다. 그렇다. 하나님께서는 톨레도 진입로 처음에 있는 알칸타라 다리 정문 높은 곳에 수 백 년 전에 이 글을 적게 하시고, 먼 길을 돌아 온 나에게 큰 깨달음을 주셨답니다. 그 동안 가슴을 누르고 있던 여러 가지 고민과 아픔들이 순식간에 사라지는 시원함과 통쾌함이 온 몸을 가득 채웠다.
오른편에 보니 또 하나의 성경구절이 있었다. 내친김에 이것도 검색을 해 보았다. “여호와께서 너의 출입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지키시리로다”(시편 121:8)
알칸타라 다리 밑을 거세게 흐르고 있는 타호강(포르투갈어로는 테주(Tejo)강)물은 이곳부터 자그마치 1000㎞를 더 흘러 포르투갈 리스보아까지 흘러가서 대서양으로 들어간다고 한다. 다시 말해 이번 문화탐방 첫 날 리스보아 벨렘탑 옆에서 보았던 그 넓고 깊었던 강이 바로 이 물길의 하류라는 것이다. 약 4500㎞의 여행길을 달려온 나의 앞에 4500㎞ 전에 만났던 그 강의 근원이 되는 물길이 흐르고 있다.
그렇다. 우리의 인생이란 지금 눈 앞에 보이는 것만을 쫓아 살 때가 많다. 그러나 언젠가 우리는 우리 삶의 근원과 분명하고 확실하게 맞닥뜨릴 것이다. 거기에서 만난 그 분은 명쾌하고 분명하게 말씀하실 것이다.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깨어있음이 헛되도다”(시편 127:1)

 

 

 

 

 

윤상용
한광고등학교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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