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2년 10월 23일

부정한 아내 둔 불행한 남편의 말로
동네 남자와 바람난 아내 치정 사건


 
“경기도 진위군 오성면 안중리(振威郡 梧城面 安仲里) 二六一번지에 사는 고원서(高元瑞, 48)의 집에서는 지난 二三일 새벽 四시경에 그의 사위되는 평택면 유천리(平澤面 柳川里) 一○一번지에 사는 김덕창(金德昌, 21)이가 자기의 아내 되는 고정현(高貞鉉, 20)이와 함께 자다가 면도(面刀)로 그 아내의 목을 찔러 죽인 후 자기도 자살하려다가 이루지 못하고 말았다. (중략) 즉시 평택경찰서에서 공의 김병룡(金炳龍) 씨와 출장하여 응급 수술을 하여 가지고 다시 평화병원(平和病院)에 입원 치료 중이라는 바, 회생하기는 어려우리라 한다”(동아일보 1932년 10월 27일)

예나 지금이나 자살은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늘 존재했었다. 평택에서도 자살 소동이 종종 일어나곤 하였는데 치정과 관련된 것이 적지 않았다.
1932년은 만주사변이 일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사회적 분위기도 우울했다. 이해 10월 23일 치정에 의한 살인과 자살 사건이 발생했다. 그 사연인즉 다음과 같다.  
사건이 일어나기 3년 전 즉 1929년 10월경 유천리에 사는 김덕창과 안중리 사는 고정현이 결혼을 해 약 1년 동안 화목하게 지냈다. 이 둘 사이에는 어린아이까지 둘 정도로 단란했던 것이다. 그런데 1932년 들어 둘 사이에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 모르지만 아내인 고정현은 친정으로 돌아갔는데 공교롭게도 안중리에 사는 박 모와 바람(?)이 났다. 아무래도 이 둘은 고정현이 결혼하기 전에 연애를 한 사이로 추정된다. 고정현과 박 모는 당시 최대의 구경거리인 경성박람회를 보러간다고 하면서 전국을 떠돌아 다녔다.
꼬리가 길면 잡힌다고 처음에는 아내가 바람난 사실을 몰랐던 남편 김덕창이 이를 알게 됐다. 김덕창은 이혼을 제기하는 한편 위자료도 요구했지만 서로 합의가 잘 이뤄져 다시 살게 됐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바람이 재발되어 친정으로 돌아갔다. 남편 김덕창은 아내가 있는 처가로 찾아가 설득을 하려고 했으나 결국 싸우게 됐던 것이다. 설득에 실패한 남편 김덕창은 준비해간 면도칼로 아내 고정현을 죽였다. 자신도 죽기 위해 자살했지만 실패하고 신음하던 중 발견되어 평택경찰서에 신고 됐다. 공중보건의 김병룡이 응급조치를 해 원평동 소재 평화병원으로 옮겼지만 김덕창의 생명은 위태로웠다. 치정에 의한 아내 살해와 자살은 늘 화젯거리였는데 신문기자도 크게 다룰 정도로 흥미를 끌었던 것 같다. 또한 이 기사를 통해 평택에 ‘평화병원’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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