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방관은 경험이 가장 중요한 재산”

쉽지 않았던 직업, 약속과 신뢰로 버텨
사고로 장애 6급, 아내 보며 용기 얻어


 
시민들의 불행 한 가운데로 뛰어 들어 온 몸을 투신하는 소방공무원들이 그저 단순한 직업인으로만 보이지 않는 것은 그들 역시 제복을 벗고 위험한 상황과 마주하면 두려움과 싸워야 하는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라는 사실 때문이다.

119대원으로 시작한 새내기
“군대 제대 한 후 경기도 광명시에서 바로 소방공무원을 시작했어요. 의무병 출신이었다는 이유로 화재진압이 아닌 119구급대원으로 활동했죠. 당시는 119가 처음 도입돼 대국민 홍보를 할 때였는데 입사 이후 오전 9시부터 오후 9시까지 사무실 책상에 엉덩이 한번 붙여볼 시간 없이 정말 바쁘게 지냈어요”
평택소방서 예방팀 현중수(45) 소방장은 당시 광명시내에 네 곳의 센터가 있었는데 구급차는 고작 두 대뿐이었다며 웃는다. 20대 초반이었던 그에게 수많은 응급현장에서 만나는 상황들은 그야말로 놀라움과 새로움의 연속이었다. 당시 몸으로 체득했던 많은 일들은 지금도 그림으로 그릴 수 있을 만큼 선명하게 떠오르는 기억들이다. 
“새내기일 때 처음 겪었던 사고가 지금도 잊히지 않아요. 부부가 사고를 당해 남편이 숨진 사건인데 두 명이 출동해 숨진 남편과 크게 다친 아내를 병원으로 이송해야 했죠. 사고가 난지 한참이나 지난 후에 몸을 회복한 아내 분이 소방서로 찾아와 당시 도움을 줘서 고맙다며 인사를 하셨던 기억이 있어요”
현중수 소방장은 20여년을 소방관으로 살아왔다. 그 동안 비포장도로를 달리며 병원으로 이송 중 구급차 안에서 아기를 받았던 기억도 있고 절단환자를 싣고 무조건 정신없이 달렸던 기억도 있지만 그때에 비하면 지금의 구급장비는 하늘과 땅 차이라고 할 만큼 좋아졌다고 말하며 잠시 회상에 젖는다.

매뉴얼보다 더 중요한 멘토
“지하실 화재는 소방관들이 가장 싫어하는 경우 중 하나예요. 뿌연 재가루가 가득 떠다니는 속으로 탈출구도 변변치 않은 곳에서 얼굴이 익을 정도의 열기와 싸워야 하니까요. 진원지를 파악하는 것도 노련한 대원은 한 번에 발견하지만 그렇지 않은 대원은 애를 먹어야 하죠. 산소도 많지 않고 정말 죽음 속으로 들어가는 느낌이 들곤 하거든요”
현중수 소방장은 2011년 송탄에서 화재진압을 하다 숨진 대원의 이야기를 어렵게 떠올린다. 그리고 함께 근무한 적이 있는 이 대원은 사막에 던져놔도 살 수 있었던 사람이었다며 잠시 말을 멈춘다. 직업상 갖는 트라우마는 소방관이라면 누구나 겪게 되는 것이다. 상담할 수 있는 기관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정신과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아직까지도 그다지 보편화되지 않은 사회에서 선뜻 그곳을 방문해 상담하기란 사실상 어려운 일이라는 말에는 공감되는 부분이 없지 않다.
“안전을 위한 매뉴얼은 분명히 필요한 것이 맞아요. 그러나 그것보다 더 중요한 건 많은 경험을 가진 멘토를 갖는 일이죠. 다양한 상황들을 숙지하는 것보다 이미 많은 상황들 속에서 실질적인 경험을 하고 결과까지 이미 알고 있는 사람의 말을 토대로 그 상황에 맞는 대안을 모색하는 교육은 응급상황들을 많이 대하는 소방관들에게 가장 절실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현중수 소방장의 멘토는 7년 전에 지병으로 세상을 등진 한석원 대원이다. 형처럼 스승처럼 지냈던 멘토였기에 그의 죽음은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도 믿기지 않는다. 그가 멘토에게 배운 것 중 하나는 무슨 일이 있어도 약속과 신뢰를 가장 우선으로 지켜야 한다는 사실이다.

사고 후 새롭게 만난 세상
“2011년도에 소방시설을 점검하다가 2~3미터 높이에서 떨어져 허리뼈 골절로 장애 6급 판정을 받았어요. 3월에 다쳤는데 7월에 깁스를 풀었죠. 그 5개월이 제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시기였어요. 혼자 방안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이 누워서 텔레비전만 보는데 인생이 참 허무하고 무력하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현중수 소방장은 그때 처음으로 자살하는 사람들은 계획이 아니라 순간적인 감정에 의해 하게 되는구나 하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말한다. 사고가 났을 때도 한없이 씩씩하던 아내는 그날 남편의 이야기를 들은 후 처음 큰 소리로 목 놓아 울었다. 그때 현중수 소방장은  아내를 보며 다시 힘내서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소방관으로 살면서 뿌듯한 일들도 많았어요. 그중에서도 가장 뿌듯한 일은 도움을 받은 사람들이 고맙다며 손잡아 줄 때인 것 같아요. 얼마 전에는 친구네 집에 불을 끄러 들어간 적도 있죠. 그나마 구급대원은 가끔 고맙다는 말을 듣지만 화재현장에 나가는 대원에게 고맙다는 말을 하는 사람이 없더라구요”
소방관의 실상들을 바닥부터 겪었던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소방관을 꿈꾸는 후배들을 가르치는 멘토가 되고 싶다는 현중수 소방장, 책임질 수 없는 말은 절대 입 밖으로 내지 말라는 멘토의 가르침을 지금도 잊지 않는다는 그는 비록 가족들이 자신의 직업을 많이 걱정하지만 그런 가족이 있어 누구보다 행복하다며 활짝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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