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2년 11월 14일

술 주도권으로 안성과 진위 논쟁
합의에 따라 평택 누룩공장 설립

 
“오랫동안 문제를 거듭하던 안성(安城) 진위(振威) 양군의 연합으로 설치될 곡자제조조합(麯子製造組合)은 저간 양군 주조업자(酒造業者) 사이에 원만한 타협이 되어 (중략) 조건을 교환하여 위치 문제를 해결하고 지난 六일 양군 주조업자 중에서 선정된 설립위원 十二명과 도청 삼목 세무과장(三木 稅務課長), 양 군수, 세무주임이 양 군청에 모여서 준비회를 열고 협의한 결과 이달 14일 평택에서 창립총회를 열기로 하고 이름은 기남곡자제조장(畿南麯子製造場)이라고 결정하였다”(동아일보 1930년 11월 12일)

술은 우리 일상생활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기호품이다. 요즘은 술을 제조하는 방법이 다양하지만 옛적에는 대부분 누룩이 있어야만 했다.  일제강점기에는 ‘품평회(品評會)’라는 것을 통해 제품의 질을 향상 하곤 했다. 술도 예외가 아니어서 주류품평회(酒類品評會)가 자주 열렸다. 평택에서도 1933년 2월 28일부터 3월 4일까지 주류품평회를 개최한 바 있다.
곡자(麯子)는 밀을 주원료로 반죽해 띄워 누룩곰팡이를 번식시킨 것으로 술을 빚는 데 쓰는 발효제로 술을 빚는데 반드시 필요한 재료다. 좋은 술을 빚기 위해서는 곡자 즉 누룩이 좋아야 한다. 때문에 양조장은 질 좋은 곡자를 만드는 제조장이 필요했다. 평택과 안성은 지리적으로도 가깝지만 경제적으로 경쟁을 해야 하는 경우도 많았다.
술을 빚는데 필요한 곡자를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술 생산의 주도권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당시 진위군과 안성군의 주류업자는 곡자제조조합을 설립하기로 했지만 ‘어디에 둘 것이냐’를 가지고 적지 않은 줄다리기를 했던 것이다. 양군은 각각 6명의 설립위원을 선임하고 양군의 군수, 그리고 세무담당 직원까지 포함해 양 군청을 돌아가면서 여러 차례 회의를 진행했다.
마침내 첫째 조합 위치를 진위군 평택(平澤)에 할 일, 둘째 조합출자금의 3분의 2를 진위군 주조업자가 부담할 일, 셋째 조합사무소와 공장 등의 기지(基地)를 진위군 주조업자가 부담 기부할 일, 넷째 안성 읍내에 곡자저장
장(麯子貯藏場)을 조합의 비용으로 설치할 일, 다섯째 곡자의 값은 진위와 안성이 같은 값으로 할 일 등 다섯 가지 조건을 합의하고 평택에 누룩공장을 두기로 했다. 누룩공장은 진위군 평택에 두기로 했는데,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는 없지만 평택역과 가까운 곳이 아닌가 한다. 11월 14일 양군의 합의사항에 따라 곡자조합 창립총회를 개최했다. 그리고 평택에 설치하기로 한 곡자공장 즉 누룩고장의 이름은 ‘기남곡자제조장’으로 붙였다. 기남은 경기도의 남쪽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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