톨레도, 그 넉넉한 품

 
도시 전체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는 톨레도(Toledo)라는 도시 이름의 기원은 ‘참고 견디어 항복하지 않는다’는 의미의 ‘톨레라툼(Toleratum)’에서 왔다고 한다. BC 2세기 로마가 이곳을 공격했는데 당시 다른 어느 지역보다 저항이 거셌기 때문에 이런 이름이 붙게 되었다. 톨레도는 유명한 칼의 생산지다. 많은 전쟁을 거치면서 성능 좋은 칼의 생산지로 유명하게 되어, 십자군 원정 때 사용된 칼들이 모두 이곳에서 만들어졌다.
톨레도는 하늘과 맞닿은 도시라는 말을 많이 듣는다. 높은 언덕에 비밀의 사원처럼 놓여있고 그곳에서 주변의 라만차평원을 ‘내려다 볼 수’ 있다. 그리고 그 도시 심장부 한 가운데에 톨레도 대성당이 있다. 그동안의 여정에서 여러 성당들을 보았지만 톨레도 대성당은 분명 ‘그들 중의 하나’가 아니라 ‘그것 하나’였다. 페르난도 3세에 의해 1227년 건축을 시작하여 266년이 지난 1493년에 완성되었기 때문에 중세, 르네상스, 바로크 양식이 혼재되어 있는 성당의 아름다움도 그렇거니와, 그 안에 있는 수많은 명화들은 많은 사람들의 발길을 붙잡는다.
톨레도를 이야기하면서 엘 그레코(El Greco. 1541 ~ 1614.4.7)의 이야기를 빠트릴 수는 없다. 본명은 도메니코스 테오토코풀로스(Domenikos TheotokoPoulos)라는 아주 길고 어려운 이름을 갖고 있는 화가로, 그리스 크레타(Creta)섬 출신의 스페인 화가이다. ‘엘 그레코’라는 이름은 “그리스인”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으니 아마도 톨레도 사람들도 그의 긴 이름을 부르기 힘들었었나 보다. 그는 20대 중반에 크레타에서 이탈리아 베네치아(Venecia)로 건너와서 티치아노(Vecelli Tiziano) 등에게서 색채와 관련된 베네치아파의 기법을 배운 후 로마(Roma)로 옮긴 뒤에는 라파엘로(Raffael’lo Santi) 등의 그림에서 영향을 받게 된다. 1577년 그의 나이 35세 경 우연히 이곳 톨레도에 왔다가 이 도시의 아름다움에 반해서 평생을 여기에 머물며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그의 대표작인 『오르가스 백작의 매장』(El Entierro Del Conde De Orgas. 1586~1588)이 바로 이곳 톨레도의 산토토메(Santo Tome) 성당 내부에 있는데 수많은 관광객을 불러 모으고 있다.
톨레도의 골목길은 아름답다. 나는 이번에 톨레도를 여행하면서 엘 그레코가 톨레도에 반한 것은 단연코 90%는 골목길 때문일 것이라 생각했다. 발목을 삔 덕에 우리 일행의 가장 뒤쪽에서 3시간의 톨레도 투어를 여유 있게 걸어가며 느낀 톨레도는 소박함과 미(美)의 멋진 조화였다. 모로코 페스(Fes)의 메디나 구 시가지를 미로처럼 만든 9,400개의 골목길이 삶의 치열한 흔적과 아라비아 양식이 결합된 곳이었다면, 이곳 톨레도의 골목길은 2000여개에 이르는 아름다운 ‘흐름’의 집합체였다. 자잘한 돌들과 제법 큰 돌들이 적당히 혼합된 길들과 그 골목길을 비집고 들어오는 강렬한 햇빛, 그리고 짙은 흙색의 건물벽들의 조화, 눈부심, 앙증맞은 현대식 자동차들, 긴 부츠를 신은 멋들어진 아가씨들, 중고등학교 학생들의 밝은 재잘댐, 노부부의 해바라기 산책 등 무엇 하나 버릴 수 없는 모습들이 하나의 캔버스 그림처럼 제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도시. 그곳이 톨레도였다.
톨레도는 12~13세기에 서유럽 지식인들이 가장 오고 싶어 한 도시였다. 당시 톨레도는 높은 문화 수준을 갖고 있었는데, 특히 <톨레도 번역학교(Escuela de Traductoes de Toledo)>라고 불리우는 단체의 학문적인 성과들이 뛰어나 이슬람교, 유대교, 그리스도교의 각 학자들이 협력하여 다양한 학문적 성과물들이 라틴어로 번역되었다.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 철학, 유클리드(Euclid) 수학, 프톨레마이오스(Klaudios Ptolemaios) 천문학, 히포크라테스(Hippocrates) 의학 등 당대의 최고 지식 서적들이 톨레도에서 정리되어 비로소 유럽 전체로 퍼져나가게 된 것이다. 역사에서는 이때를 기준으로 중세 서유럽의 철학사와 과학사를 전후로 나누고 있다.
스페인을 대표하는 가톨릭 수석 성당이 있는 도시, 세르반테스가 돈키호테를 탄생시킨 도시, 그의 향기가 아직도 도시 곳곳에 남아 톨레도 시민들의 자랑이 되는 도시, 눈이 부시도록 아름다운 고풍의 골목길들과 현대적인 삶이 적절하게 공존하는 도시, 1560년까지도 스페인의 수도였던 도시, 마드리드로 수도가 옮겨간 이후에 모든 발전이 정지되어 버린 도시가 되었지만 어쩌면 그 ‘멈춤’이 톨레도를 살렸다는 생각을 해 본다. 톨레도가 가진 모든 다양함을 흙빛 하나로 감싸 안을 수 있는 그 넉넉한 품이 너무나 좋다. 흙빛이 그처럼 아름다울 수 있다는 사실을 나는 톨레도에서 배웠다.

끝 그리고 새로운 시작
행복한 여행을 결정짓는 몇 가지의 중요한 요소로는 일반적으로 여행지, 동행인, 여행 목적 등을 꼽는다. 그러나 나는 여행을 통해 ‘누구를 만나는가?’에 상당한 가치를 부여한다. 여행은 언제나 새로운 만남을 전제로 한다. 새로운 만남이 없는 여행은 지루하고 답답하다. 그래서 여행 중간 중간 나의 발길은 새로운 만남을 시도하는 쪽으로 늘 향해 있다. 이번 유럽 대륙의 서쪽 끝 여행은 드물게도 위에 열거한 행복한 여행의 조건들을 모두 만족시킨 프로그램이었다. 현지에서 만난 수십 명의 새로운 친구들은 앞으로도 나의 좋은 온라인 친구들이 되어 살가운 관계를 이어나가게 될 것이다.
여행은 그리움의 연속이다. 여행지에서는 떠나온 집을 그리워하고, 집에 돌아오면 떠나서 갈 곳들을 그리워한다. 이번 여행을 통해 새로운 그리움들을 갖게 되어 감사하다. 23년의 교직 생활을 통해 가슴 아파하고 아직도 버리지 못하는 다양한 미련의 찌꺼기들을 이번에 그곳에 놓고 오게 되어서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그런 일들을 가능하게 해 주신 한국청소년동아리연맹과 내 가슴의 아픔과 그리움을 끌어안아준 동아리 지도자 선생님들, 그리고 글의 정리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행복을 배가하도록 해 주신 평택시사신문에 감사드린다.

※ 이 글은 2012년 1월 6일부터 17일까지 대한민국 청소년 우수지도자로 선발되어 포르투갈, 모로코, 스페인, 네덜란드를 방문한 여행기로 본지에서 10회에 걸쳐 연재한다. 필자는 한광고등학교에서 22년간 윤리·종교를 가르치며, 대한민국 최우수 동아리인 한광무선국을 비롯해 5개의 동아리를 지도하고 있다.

 

 

 

 


윤상용
한광고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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