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1년 12월 23일

평택 평화의원 공의 김병룡
40여 일간 관내 빈민자에게

 

 

 
'“평택 시내의 평화의원(平和醫院)은 공의 김병룡(金炳龍) 씨가 경영한 지 우금 六년간에 일반 환자에게 많은 편의를 도모하야 오는 바, 금번 동원 개업 五주년을 기념하기 위하여 오는 음 十二월 二三일부터 一월 三十일까지 군내 무산자 무료 치료를 실시할 터이라는데, 병이 있어서도 치료를 받지 못하고 신음을 하고 있는 무산 농민 환자에게 큰 복음이라고 하여 일반 인사는 씨의 장거를 칭송한다 하며, 무료진료권은 본보 평택지국서 발행한다고 한다”(동아일보 1932년 1월 23일)

연말연시가 되면 어려운 이웃을 돕는 것이 우리 민족의 일상이었다. 조선시대 향약에 ‘환난상휼(患難相恤)’이라는 덕목이 있다. ‘어려움을 당하면 서로 돕는다’는 뜻으로서 상호부조의 정신이다. 환난상휼은 언제나 함께 하며 나누는 우리 민족의 정신으로 풀이하기도 한다. 해마다 연말연시가 되면 방송이나 언론에서 불우이웃돕기를 하는 것도 나눔의 정신에서 비롯되었다.
1923년 서선수해, 평안도와 황해도 일대에서 큰 수해를 입자 전국적으로 ‘구제회(救濟會)’를 조직해 성금을 모금, 전달한 바 있다. 이외에도 한해나 수해로 이재민이 발생하면 언제나 구제활동을 해 훈훈한 마음을 나누곤 했다.
평택에서도 이와 같은 훈훈한 정이 흘러넘치는 일이 적지 않았는데 1931년을 보내고 1932년 새해를 맞는 연말연시에 불우이웃을 돕는 정이 넘치는 일이 있었다. 주인공은 의사 김병룡이다. 1931년은 만주사변이 일어나 전시체제가 시작될 뿐만 아니라 신의주 등 관서지역에 크게 홍수가 나서 어려운 시기였다. 특히 농민들의 삶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비참했다. 더구나 전염병까지 돌아 병원을 찾는다는 것은 생각조차 못하고 그냥 병치레를 해야만 하는 시기였다. 연말연시 추운 겨울에는 더욱 힘든 생활을 해야만 했다. 이러한 어려운 상황에 구세주가 나타난 것이다.
의사 김병룡이 언제 의사자격증을 획득했는지 확인할 수 없지만 1926년 12월 23일 평택에서 평화의원을 개업했다. 평소에도 많은 편의를 제공해 칭송이 자자했다. 원장 김병룡은 병원 개업 5주년을 맞은 1931년 12월 23일부터 이듬해 1932년 1월 30일까지 40여 일간 병원을 찾지 못하는 어려운 사람이나 농민들을 위해 무료로 진료를 해주었다. 평소에도 칭찬을 받아왔던 김병룡 의사를 당시 ‘복음’이라고 할 정도로 칭송했다. 무료진료를 받기 위해서는 진료권이 필요했는데 이는 동아일보 평택지국에서 발행했다.
이러한 모습에서 당시 의사와 언론기관의 사회적 공헌이 얼마나 잘 연계되어 전개되었는지 잘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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