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일자리를 지키는 것으로
다른 사람들의 일할 권리도
지켜내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평지보다 온도도 낮고 바람도 센
아파트 26층 높이 굴뚝 위 두 노동자는
가장 높은 곳에서
그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 권지영 대표
심리치유센터 와락

지난 12월 13일 새벽 4시 30분 겨울밤 짙은 어둠속에서 두 명의 노동자가 쌍용자동차 공장 안 70미터 굴뚝위로 올라갔습니다. 이들이 거친 숨을 몰아쉬며 굴뚝위에 도착해서 제일 처음 지상으로 보낸 메시지는 다음과 같았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강함을 증명하기 위해 70미터 굴뚝에 오르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얼마나 약하고 나약한 존재이고 무서움 또한 많고 여린 인간인지를 알리기 위해 올랐습니다”
파업은 세상 모든 일하는 사람들이 당연하게 가질 수 있는 권리이지만 노동자들의 파업에 유난히 모질고 사나운 시선을 던지는 세상임을 알기에 쌍용차노동조합은 정리해고만 고집하지 말고 함께 살기 위한 방안을 찾자며 회사와 대화하기를 원했습니다. 그러나 회사의 태도는 강경하고도 매서웠습니다. 그렇게 해고는 강행되었고 6년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한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했다면 졸업을 앞둔 나이가 될 시간입니다. 그 시간동안 우리는 26명의 동료와 가족들을 떠나보냈습니다.
2014년 2월 7일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정리해고 무효소송 항소심재판에서는 사실 관계를 낱낱이 밝혀 해고자들이 부당하게 해고되었다고 판결했습니다. 그러나 쌍용자동차는 즉각적으로 고등법원장, 대법원장 출신의 거물급 변호인단을 구성해 대법원에 항소했습니다. 그리고 2014년 11월 13일 대법원은 법리를 심사한다는 관례를 깨고 고등법원이 밝힌 사실관계들을 조목조목 뒤집으며 회사의 손을 들어주었습니다. 이로써 지난 6년 동안 계속해서 찬바람과 뜨거운 태양사이를 휘청거리며 걸었던 180여명의 해고자들은 완벽하게 버려졌습니다.
회사는 이제 더 이상 우리와 상관없는 사람들이라 할 것이고 일부의 사람들은 이제 그만 미련 버리고 다른 일 찾으라고, 지겹다고, 배부르고 등 따뜻했던 일자리 놓치기 싫어서 발악하는 거 그만하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대법원 판결이 있은 후 정확히 한 달 뒤 해고자들은 출입조차 할 수 없는 공장안 70미터 높이의 굴뚝에 생수 4통과 육포 한 봉지를 들고 오른 이유는 바로 그것 때문입니다.
시민여러분, 쌍용차 해고자들과 가족들은 미련을 못 버리고 편하게 일하고, 많은 돈을 받던 그 시절을 못 잊어서 이토록 질기게 해고자 복직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해고가 사람과 삶을 얼마나 파괴하는지 저희가 온 마음과 온 몸으로 겪어보았기 때문입니다. 기계가 오래되고 고장 나서 생산을 못하게 되면 그대로 라인에서 빼버리듯이 사람을 그렇게 쓰고 쫓아내도록 되어 있는 법이 정리해고법입니다. 정리해고 단행이후 많은 기업들이 정규직노동자들을 쫓아낸 그 자리를 비정규직으로 대체합니다. 비정규직노동자가 점점 더 늘어나는 것, 비정규직이 차별받는 현실에 대해서는 많은 시민들이 문제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정리해고가 없어지지 않으면 심각한 사회문제인 비정규직 문제도 영원히 풀 수 없는 숙제일 수밖에 없습니다.
좋은 일자리가 많아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 아이들이 살아남기 위해 경쟁을 하며 불행하게 학창시절을 보내지 않을 수 있습니다. 좋은 일자리가 많아야 취업을 희망하는 청년들이 오로지 취업준비를 하며 청춘의 한때를 보내지 않을 수 있습니다. 좋은 일자리가 많아야 더 많이 일하고 더 적게 받는 것이 어쩔 수 없는 일이라며 포기하는 계약직,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줄어 들 수 있습니다. 일하고 싶은 사람, 일 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은 국가와 사회가 당연히 책임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라고 세금도 내고 국가운영도 맡기는 거 아니겠습니까?
독하고 질긴 쌍용차 해고자들이 아니라 이들은 좋은 일자리가 우리 지역에서 흔적 없이 사라지는 것을 막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자신의 일자리를 지키는 것으로 다른 사람들의 일할 권리도 지켜내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평지보다 온도도 낮고 바람도 센, 아파트 26층 높이의 굴뚝위의 두 노동자는 지금 가장 높은 곳에서 그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대법원 판결이후 아무것도 없는 해고자들의 거칠고 투박한 손을 잡아주십시오.
그렇게 맞잡은 손이 만들어내는 온기가 싸늘하고 말라버린 이 겨울을 견디게 하고 모두에게 평등하게 따뜻한 봄을 불러올 것을 믿습니다.

저작권자 © 평택시사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