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과 함께 한 7년, 보람 있었죠”

 

막막한 이들에게 비빌 언덕 되고 싶어
知天命, 또 다른 새로움을 모색할 시기


 
우리나라 비정규직 근로자는 올해 처음 600만 명을 돌파했다. 전체 임금 근로자 세 명 중 한명 꼴이다. 삶의 터전에서 오늘도 힘겨운 싸움을 해야만 하는 비정규직 노동자에게 함께 살아보자며 손 내미는 사람이 있다.

노동운동과 삶의 터닝 포인트
“당시는 대부분 학생들이 운동권에 참여했어요. 저도 학생운동하며 두 번이나 구속됐으니 당시 생각으로야 졸업 후 노동현장으로 바로 나가는 게 순서였지만 집안 형편이 어려워 도저히 내 생각만 할 수가 없었죠. 그래서 중소기업에 취업했는데 결국 3년 반을 근무한 뒤 평택으로 내려왔어요”
남정수(49) 평택비정규노동센터 소장은 1996년 큰 아이가 네 살이었을 때 삶의 터전이었던 서울을 등지고 평택에 내려와 자리를 잡았다. 대학시절, 야학의 인연으로 만난 아내는 남편이 직장도 없고 연고도 없는 평택으로 내려온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기도 했으련만 고맙게도 순순히 남편의 뜻에 따라줬다.
“평택에 내려와서도 가족이 있으니 생계를 이어가야 했지만 취업을 해도 번번이 운동권 학생들의 위장취업을 감시하던 사회적 분위기 때문에 회사에서 내몰려야 했어요. 1997년 IMF 때는 정말 심각한 일들이 많았죠. 당시 같은 처지에 있던 사람들이 의기투합해 만든 것이 바로 ‘평택민주노동자회’였어요”
남정수 소장은 2008년 지역에서는 가장 처음으로 비정규직을 위한 노동 상담센터를 설립하고 쌍용자동차 내에 비정규직 노동조합을 만들었다. 쌍용자동차 내부에서 심상치 않게 비정규직 해고소식이 들려왔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같은 일을 하고도 가장 먼저 해고되는 비정규직 노동자에게 비빌 언덕이 되고 싶었다는 것이 그의 가장 큰 바람이었다.

비정규직에게 무료 상담 7년
“비록 노무사 자격증이나 변호사 자격증은 없어도 수시로 노동법을 찾아 공부하고 전문가에게 자문을 구해가며 노동자들의 억울한 일을 해결하는 실마리를 찾곤 했어요. 당시 했던 일이 노동 상담과 노동자 교육, 노동조합 조직과 지원 등이라 노조를 만들어 파업투쟁도 많이 했죠. 결국 힘이 약해지면 노조가 사라지는 일이 비일비재 했지만 아무렇게나 해고되고 생계가 어려워 막막해 하는 노동자들을 보면 뭐라도 해야만 했어요”
남정수 소장은 평택에 정착한 이후 지역 내에서 벌어지는 많은 노동문제에 참여하며 마음을 함께 했다. 에바다 사태 때 공동집행위원장을 맡아 활동했던 건 물론이고 절반이 넘는 비정규직을 포함해 2000여명의 노동자들이 일시에 거리로 내몰렸던 쌍용자동차 구조조정에서도 자본의 힘에 밀려 내몰리고 짓밟히는 노동자들의 편에 서서 묵묵히 맡은 역할을 해냈다.
“상담을 하다보면 참 억울한 일들이 많아요. 힘없는 노동자는 고스란히 당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니까요. 저도 모르는 게 많으니까 늘 공부를 해야 하죠. 그런데 지난 7년 동안의 경험으로 미뤄볼 때 꼼꼼하게 서류준비를 하고 대처를 하면 재판에서 이기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어요”
남정수 소장은 2006년 민주노동당 평택시장 후보로 출마한 경험이 있다. 그리고 지난해 지방선거에서는 무소속 시의원 후보로도 출마했다. 두 번 모두 당선에는 실패했지만 개발지상주의가 아닌 땀 흘려 일하는 서민들과 힘없는 노동자들 곁에서 힘이 되고 싶다는 그의 진심은 아직도 여전히 진행형이다.

자격증 없는 노동자의 대변인
“비정규직이나 정규직을 구분하는 건 별 의미가 없다고 생각해요. 노동자들이 변호사에게 상담하려면 비용이 많이 들잖아요. 그런데 이곳은 무료로 상담해주니까 연고를 통해 상담이 많이 들어오곤 하죠. 한 달에 보통 10여건 상담하고 있는데 노무사나 변호사도 힘들다는 소송을 이긴 경우도 꽤 돼요. 제겐 그게 가장 큰 보람이죠”
남정수 소장은 현재 원평동에 있는 민주노총 사무실에 책상 하나를 두고 상담을 이어가고 있다. 자신은 회원들의 후원으로 최저 임금을 가져가지만 자녀 2명을 둔 가장으로서는 턱없이 부족하다. 때문에 생활전선에 뛰어든 아내에게는 항상 미안한 마음뿐이라고.
“늘 밖에서 활동하느라 정작 가족들과는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내지 못했어요. 성격도 무뚝뚝한 편이어서 아이들이 크고 나니 함께 못해준 게 제일 미안하더라구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힘든 상황에 처한 사람들이 나를 필요로 한다는 걸 생각하면 쉽게 그만둘 수가 없었어요. 크게 벌어놓은 것도 없고 이뤄놓은 업적도 없지만 고통 받는 누군가가 손을 내밀었을 때 이 세상에서 그 손을 잡아 줄 누군가는 있어야 하지 않겠어요”
인생의 터닝 포인트를 평택에서 새롭게 시작한 남정수 소장, 노동자들 중에서도 가장 힘없는 비정규직 노동자를 위해 동분서주 하고 있는 남정수 소장은 지천명의 나이지만 지금은 노동자들을 위한 새로운 모색을 고민해야 할 시기라며 새해에는 비정규직 없는, 노동자들이 행복한 세상이 되길 바란다는 간절한 소망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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