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 70년을 맞는 2015년
평택의 민족운동은 어떠했는지
그리고 어떠한 분들이
이 땅의 광복을 위해
어떻게 싸웠는지
다시금 기억해야 한다

 

▲ 황수근 학예연구사
평택문화원 향토사연구소
얼마 전에는 한 기관으로부터 새해를 맞아 충혼탑에 가서 참배를 하고자하니 장소와 역사적 의미를 알려달라는 문의를 받고 대답해 주었다. 우리는 이처럼 특정한 날이나 특정한 장소를 기리거나 답사하며 역사를 상기하곤 한다.
이뿐 아니라 10주년, 100주년 같이 시기적으로 딱 맞아 떨어지는 때가 오면 역사적 관심을 갖게 되며 강렬한 메시지를 받는다. 마치 역사가 우리에게 더 크고 깊게 생각을 하게 해주기 위해 때를 기다리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지난해 동학농민혁명·청일전쟁 120주년이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그렇다면 올해에는 어떤 역사가 강렬하게 메시지를 던지기 위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까? 이미 많은 이들이 알고 있는 것처럼 올해는 일제 35년간 식민 지배를 받다가 1945년 광복을 맞이한 지 70주년 되는 해이다. 이에 새해 벽두부터 다양한 기획과 행사들이 ‘광복 70주년 기념’ 이라는 이름으로 진행되고 있다.
민족운동가 위당 정인보 선생이 작사한 ‘흙 다시 만져보자 바다 물도 춤을 춘다’로 시작하는 광복절 노래를 듣다보면 광복이 주는 민족의 기쁨과 환희를 느낄 수 있으며 우리가 지켜가야 할 민족의 자존심을 상기하게 된다. 이처럼 광복은 우리에게 민족의 자존심을 회복케 한 중요한 사건이다.
하지만 정작 이 땅의 광복을 위해 노력했던 분들에 대해서는 관심이 부족했다는 생각이 든다.
지난해 광복절을 맞이해 국가보훈처에서 독립유공자로 평택에서 3명을 지정했지만 이러한 사실도 몰랐다가 뒤늦게나마 지난주 <평택시사신문> 보도를 통해 알게 됐다.
평택의 민족운동은 다른 지방보다 다양하고 격렬하게 펼쳐졌으며 이중 3·1운동은 일제에서도 광포(狂暴)하다고 할 정도로 격렬하게 진행됐고 화성·안성 등 주변지역에 영향을 줬다.
특히 4월 1일 평택역 앞에서는 3000여명이 운집하여 만세운동을 펼치는 등 격렬하게 저항했다. 이로 인해 많은 분들이 온갖 고초를 당했고 어떤 집안은 대가 끊기기도 했지만 많은 이들의 살신성인 자세로 일제에 항거해 민족운동에 참여했다.
다행히도 몇 년 전부터 매년 3월 9일이 되면 현덕면 계두봉에서는 ‘평택 3·1운동 최초 발상지 기념행사’를 진행하고 있으며 이들은 2019년 3·1운동 100주년을 맞이해 ‘평택 3·1운동 기념비’를 세우겠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기념식을 하고 기념비를 세우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고 꼭 해야 할 일이다. 하지만 이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그들을 잊지 않고 기억해야 한다는 것이며 기념식과 기념비는 단지 계기가 되는 것이다.
광복 70주년도 역시 계기 중 하나이다. 하지만 이 계기를 거울삼아 그들의 살았던 삶을 이해하고 그들을 알고자 노력하는 순간부터 그 어떠한 기념식이나 기념비보다 더 큰 자긍심이 생겨 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의 올바른 모습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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