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레인시티 수용주민 ‘금융비용 눈 덩이’, 끝없는 기다림 “하루도 버티기 힘들어”

은행 이자에 사채, 대대로 이어온 농토 빼앗길 판
수용계획 불투명, “자살에 화병 앓는 주민 많아”

 
청룡동에 사는 주부 L 씨((64)는 핸드폰에 들어온 병원 예약 메시지를 볼 때마다 가슴이 더 먹먹해진다. 평소 건강에는 자신 있었던 그가 가슴이 답답하고 심장이 심하게 뛰며 머리 어지러움 증세로 병원을 처음 찾게 된 것은 지난 2월, 병원에서는 이 씨에게 스트레스성 질환이라는 진단을 내렸다. 도일동에 땅을 가지고 있는 주민들 사이에서는 이 씨처럼 ‘화병’을 앓고 있는 주민이 많다.
평온한 삶을 살아오던 한적한 마을에 개발바람이 불어온 것은 지난 2007년, 경기도와 평택시, 성균관대가 양해각서를 체결하면서 시작된 브레인시티 조성사업은 5년여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이렇다 할 성과 없이 표류하며 수용지구 주민들의 삶을 송두리째 흔들어 놨다.
“개발이 된다고 하니 다들 좋아했죠. 농사를 짓던 사람들도 공장을 운영하던 사람들도 개발 후를 예상해 대체 토지를 구입한다든지 사업 확장을 한다든지 하면서 각자의 미래를 설계했었습니다. 가진 것은 땅 뿐이니 자금마련을 위해 대출은 기본이었죠”

 
대체 농지구입 은행빚 산더미
일부 주민은 사채까지 빌려 써
위기에 처한 주민, 땅마저 빼앗길 판

브레인시티 주민대책위원회 사무국장을 맡고 있는 원유관 씨는 당시를 회고하며 말을 이어갔다.
“금방 개발이 시작되고 잠시만 참으면 될 것으로 생각했죠. 이렇게 긴 기간 동안 고통을 받을 것을 알았으면 만사 제쳐두고 개발계획 반대운동에 나섰을 겁니다”
희망에 부풀어 은행 문을 두드렸던 주민들은 이제 빚을 갚기 위해 다시 빚을 내는 악순환에 빠져 극심한 생활고는 물론 평생을 일궈온 땅마저 빼앗길 위기에 몰려 있다.
도일동에 3960㎡(1200여 평)의 농지를 소유하고 있는 L 씨는 개발 후를 위해 청룡동에 대토 형식으로 1200평 정도의 토지를 구입하면서 기존의 땅을 담보로 1차로 2억 5000, 2차로 3억 5000, 3차로 2억 2500만 원 등 총 8억 2500만 원을 대출받았다. 하지만 토지 수용이 늦어지고 보상받을 길이 막막해지면서 매달 500여만 원의 이자를 계속 감당하기란 역부족, 출가한 자녀들의 월급을 빌리고 급기야 사채까지 끌어다 쓰는 등 해볼 것은 다 해봤지만 이제 한계에 이르렀다고 한다.
L 씨처럼 막바지에 몰려 경매 위기에 처한 주민이 한 두 명이 아니다. 도일동에 3000㎡(910평)의 땅을 소유하고 있는 또 다른 L 씨(48)는 개발계획이 고시되기 직전 2000여만 원을 들여 땅을 복토하고 660㎡(200여 평)의 대지에 농가주택을 지어 미래를 준비했다. 6억여 원의 대출금은 땅을 처분해 해소할 계획이었으나 지구 지정이 되고 보상이 지연되면서 매달 450여만 원에 이르는 이자를 갚기 위해 허리띠를 바짝 조여야 했다. 결국 올 하반기 안에 보상이 되지 않으면 땅을 포기해야만 할 상황에 처했다.
그나마 L 씨는 칠괴동에 거주하는 E 씨(46)에 비하면 아직 여유가 있는 편, E 씨 소유 땅은 이미 경매에 넘어가 5월 중순 2차 경매일이 확정된 상태로 토지 만여 평에 전원주택 사업을 시작해 일부분 주택을 지은 D개발 역시도 경매의 칼날을 피해가지는 못했다.

토종기업, 이전 부지가 ‘독화살’
기존 공장마저 처분해야 할 판
경제기반 붕괴, 자살로 이어지기도

 
이처럼 끝이 보이지 않는 경제적 고통은 급기야 최악의 결과로 나타나기도 했는데 다수의 투자자들이 출자해 전원주택 사업을 추진하던 J개발은 1만9800㎡(6000여 평)의 토지 중 1만3200㎡(4000여 평)의 토지가 수용지역으로 지정된 탓에 사업이 전면 중단된 상태다. 때문에 매달 3000여만 원의 금융비용을 감당하지 못한 업체 사장이 자살을 택하는 경우도 발생했다.
“명확히 밝혀진 것은 1건이지만 이 외에도 화병을 얻어 돌아가신 분이나 자살한 분이 여럿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좋은 일이 아니기에 유족에게 가서 사망 원인을 물어보기도 죄송해서 구체적인 숫자 파악이 되지 않았을 뿐이죠” 원유관 사무국장은 “연말까지 보상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절반 이상의 토지가 경매로 넘어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며 수용지구 주민들의 피해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는 것에 대한 시급한 대책을 요구했다.

피해주민, 담당기관 무책임 성토
새로운 계획은 시 재정 부담 커
진정성 있는 대화만이 해결책

문제는 이 뿐만이 아니다. 개발지구에 포함된 지역 토종기업마저 도산할 위기에 처해 있어 지역경제 기반 자체가 붕괴할 수도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도일동 M사는 농기계 생산분야에서 국내 유수의 경쟁력을 가진 건실한 기업으로 지역에 많은 일자리를 제공하는 등 모범적인 경영을 해온 기업이다.
이 회사를 운영하고 있는 E 모 씨(60)는 개발계획 고시로 3만3000㎡(1만여 평)에 이르는 공장 부지가 수용됨에 따라 원곡면에 13만2000여㎡(4만여 평)의 공장용지를 구입해 이전준비를 해왔다. 그러나 보상공고가 늦어짐에 따라 이전은 커녕 담보로 제공했던 기존 공장마저 넘어갈 위기에 처해 결국 새로 구입한 원곡면 토지를 매각하기로 하고 시장에 내놨으나 매수자가 나서지 않아 궁지에 몰린 상태다.
이처럼 브레인시티 조성사업을 둘러싸고 애꿎은 주민들이 큰 피해를 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업 시행에 관련된 기관인 경기도와 평택시, 브레인시티개발(주), 성균관대학교는 구체적인 출구전략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에서 서로 책임 떠넘기기에 급급, 주민들의 불신을 사고 있다.
원유관 사무국장은 “주민들의 피해에 대해 공동명의로 소송을 준비 중”이라며 “지난 2월 관계기관에 이에 대한 내용 증명을 보낸 상태”라고 말해 향후 법적인 조치를 취할 것임을 강조했다.
지난 3월 15일은 시행사인 브레인시티개발(주)이 사업을 시행한지 2년이 되는 날이었다. ‘시행자가 2년 이내에 가시적인 성과를 거두지 못하면 발주처는 시행사를 교체할 수도 있다’는 규정이 있어 관계자들은 어떠한 방향으로든 사업구도 변화가 이뤄질 것으로 보고 큰 기대를 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이는 단순한 경과 규정으로 강제성이 없어 브레인시티개발(주) 측은 계약만료일이 2013년 12월까지 임을 들어 지난 3월 22일자로 제출한 새로운 사업계획서를 통해 147만㎡(44만 7000평)의 산업단지 100% 분양 확약과 나머지 337만㎡(102만평) 중 주택용지 2개 블록 18㎡(5만 4000평)의 분양을 책임져줄 것을 경기도와 평택시에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본지는 주민들의 피해를 예방하고 사전 협의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전제 아래 브레인시티개발(주)측에 새로운 사업안에 대한 구체적인 자료공개를 요청했으나 브레인시티개발(주) 측은 “심의중인 안건이므로 확정 공고될 때까지는 공개할 수 없다”고 밝혀 자세한 사업방향은 경기도의 심의 이후에나 알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한편 평택시는 “브레인시티개발(주) 측이 시장원칙에 적합한 합리적인 계획안을 세워 제출한다면 시도 성균관대학 측에 원형지 매입과 일부 연구부지 축소 등의 핵심 사안에 대한 협의를 할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다”는 입장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성균관대학교 측에 평당 20만원이라는 헐값에 토지를 제공하도록 한 것이 사업구도 전체를 힘들게 한 주 요인의 하나”로 지목하고 있는 전문가들은 “이러한 협상이 원활히 진행될 경우 꽉 막힌 브레인시티 조성 문제가 다소 해소될 여지도 있다”며 “보다 진정성 있는 대화만이 문제 해결의 열쇠”라고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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