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4년 1월 7일

오성면 신리, 운전사 부주의로
고모 마중 나갔다가 참변 당해

  

 
“지난 七일 오후 一시 반경에 평택을 출발하여 안중방면으로 들어가던 평택자동차운수주식회사(平澤自動車運輸株式會社)의 경 四○六一호의 자동차를 장만준(張萬俊, 32) 운전수가 손님 六명을 태워가지고 안중을 향하여 나가던 도중 신리(新里)서 손님 한 분을 내리우고 옆에 있던 어린아이를 치어 죽게 하고 달아난 사실이 있어 일대 소동을 일으켰다고 한다. (중략) 평택의원에서 해부한 결과 운전수의 과실치사(過失致死)로 판명되었으며 운전수 자신은 사람 친 줄을 전연 모르고 달아난 것이라 하며 운전수는 방금 취조 중이라 한다”(동아일보 1934년 1월 17일)

오늘날 대중 교통수단의 하나가 택시다. 택시(taxi)의 어원은 어디에서 비롯되었을까? 택시는 직업운전사가 승객을 원하는 목적지까지 태워다 주고 거리와 시간에 따라 요금을 받는 영업용 자동자로, 1891년 독일의 빌헬름 브룬이라는 사람이 발명한 요금계산기 ‘택시미터(taximeter)’에서 유래됐다. 영업용차는 1896년 미국에서 처음으로 등장했다. 우리나라에 영업용 자동차가 들어온 지 9년 만인 1912년 4월 이봉래가 일본인 2명과 함께 ’포드 티형‘ 승용차 2대를 도입해 서울에서 시간제로 임대영업을 한 것이 시초다. 이어 1919년 12월 일본인 노무라 겐조(野村賢三)의 경성택시회사, 순수한 한국인이 설립한 최초의 자동차회사로 1921년 조승봉의 종로택시회사가 생겼다. 1920년대 들어 각지에 영업용 운수회사가 하나 둘 설립됐는데 평택에서는 쌀 등 물산이 풍부했기 때문에 일찍부터 운수회사가 설립됐다. 자동차 운수회사가 늘어남에 따라 교통사고도 늘었다
평택을 대표하는 평택자동차운수주식회사는 1934년 1월 7일 교통사고를 냈는데 7세 되는 어린아이 박종열(朴鍾烈)이 사망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사고 당시 운전수는 장만준으로 평택에서 손님 6명을 태우고 안중으로 가던 중 신리에서 승객 한 명이 내렸다. 그런데 운전을 하던 장만준은 내리던 승객 뒤에 있는 박종열을 보지 못하고 교통사고를 낸 것이다. 사연인즉 다음과 같다.
발안에 사는 고모가 온다고 할머니와 아주머니가 마중을 나가자 박종열도 따라 갔다. 정류장에서 할머니와 아주머니는 고모와 함께 나왔는데 박종열은 처음 본 신기한 차 뒤에서 구경을 했다. 그런데 운전수가 이를 보지 못하고 후진했다가 출발을 한 것이다. 박종열은 즉사했고 운전수 장만준은 자신이 사고를 낸 줄도 모르고 정류장을 떠나 버렸다. 주민들의 신고로 교통사고가 난 것을 안 경찰당국에서 운전수 장만준을 불러 이를 조사했다.
사고를 낸 평택자동차운수주식회사는 자본금 5만원, 불입금 1만 2500원으로 1929년 5월 10일 설립됐다. 화물 운반과 승합자동차 영업을 목적으로 한 평택자동차운수주식회사는 일본인과 한국인의 합작회사였는데 이종훈·이민두·안종철·송병엽·오인근·김종철·류학근 등이 주요 임직원으로 활동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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