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위자연(無爲自然) 꿈꾸며 작품을 탄생시킵니다”

나무와 흙을 결합시킨 새로운 작품 활동 펴
올 연말 전시, ‘말(馬)과 인간의 교감’ 준비

 
무위(無爲)는 인위(人爲)의 반대 개념이다. 인위가 의도적으로 만들고 강요하여 그것을 지키는 것에 따라 선과 악을 간주한다면 무위는 물 흐르듯이 자연의 순리에 따라 본성을 지키며 행하는 것이다. 그러한 ‘무위자연(無爲自然)’을 평생의 좌우명으로 삼고 살아가는 이동진 화백은 인의가 아닌 본성에 충실함으로써 어딘가에 얽매이지 않고 늘 새로운 작품을 추구하며 살아간다. 평택을 배경으로 한 동요 ‘노을’은 그가 젊은 시절 노랫말을 쓴 것으로 지금까지도 국민 동요가 되어 널리 불리고 있다.

노시재(老枾齋)에서의 삶
“세상의 중심은 내가 아닙니다. 나는 그저 세상의 일부분일 뿐이고 길에 구르는 돌멩이와 같죠. 세상을 움직이는 건 이름 있는 한 사람이 아니라 이름 없이 묵묵히 자기 일을 하고 자기 길을 가는 수많은 사람들입니다. 우리나라 문화에 이바지한 사람들도 대부분은 이름 없는 예술가들이지요. 저도 그런 수많은 사람 중의 한 사람이구요”
이동진 작가는 자신을 이름 없는 예술가라 칭한다. 홍익대에서 미술을 전공하고 평택에 있는 한광고등학교에서 10여 년간 교편을 잡았던 그는 10년간 ‘맥’이라는 화실을 운영하기도 했다. 이후 서울 홍대 앞에서 작업실을 꾸려 7년 정도 머물며 작업을 하기도 했던 그가 돌연 증평으로 내려가 정착했다는 사실은 그를 모르는 이들에게는 다소 생소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그를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들에게는 그냥 아무렇지 않은 듯 고개를 끄덕일 일이다.
“동양화를 전공했는데 학교 다닐 때 접해 본 판화가 제 성격에 맞았습니다. 나무를 깎고 다듬고 그 결을 따라 표현해 내는 그 투박하고 질박한 감성이 저와 잘 맞았지요. 잘 깎고 다듬어서 사람 손이 많이 간 작품보다는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것, 나무의 생명력을 지니고 있으면서 작가의 절제된 표현이 어우러지는 그런 작품을 만들려고 합니다. 성공까지는 아니어도 그렇다고 실패도 아니지요. 저는 그냥 제 길을 갈 뿐이니까요”
그는 현재 ‘노시재(老枾齋)’라 이름 붙인 증평의 작업실에서 매일 새벽에 일어나 작업을 한다. 경제개념으로 능력을 따지는 사회 속에서 예술을 밥으로 여기며 살아간다는 것은 어렵고 힘든 일이다. 그런 현실 속에서 예술인들이 그나마 위안을 받는 가장 유일한 것은 바로 ‘남과 다르다’는 것이다.

아들 생일선물로 탄생한 동화
“동화는 제 아들에게 생일 선물로 써준 글이 계기가 되어 쓰게 됐습니다. 바보같이 착한 둘째 녀석에게 ‘바보 이야기’라는 글을 써줬거든요. 동화를 쓰고 있으면 마음이 따뜻해집니다. 그 동화를 읽는 아이들도 그랬으면 좋겠어요”
그는 판화가, 조각가임과 동시에 동시·동화집을 펴낸 작가이기도 하다. 자신의 아이에게 들려주기 위해 시작한 일이어서 인지 그의 동화는 한결같이 따뜻하고 읽고 난 뒤에는 가슴에 남는 교훈도 있다. ‘바보이야기’ ‘별을 보는 아이’ ‘짤막한 이야기’ ‘사랑의 물감으로 온 세상을 그려요’ ‘신문지’ 등 그가 쓴 동화들은 모두 25편에 달한다. 그중 그가 가장 좋아하는 작품은 ‘신문지’다. 신문은 매일 바뀌는 것인데 날짜 지난 신문이 자신이 쓸모없다고 생각하다가 똥이 마려운 아이를 위해 유용하게 쓰인다는 이야기다. 그는 그 이야기를 하면서 꽃을 싸는 종이도 생선을 싸는 종이도 종이인 것은 모두 마찬가지라고 말한다. 꽃을 싼 종이에서 꽃향기가 나고 생선을 싼 종이에서 비린내가 나더라도 그들은 모두 종이이며 무엇인가를 위해 유용하게 쓰인다는 점에서는 모두 같다는 것을 작가는 아이들에게 알려주고 싶었을 것이다. 작가의 생각은 그가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인 동시에 인간을 바라보는 관점이기도 하다. 그는 아이들에게 어떤 화두 하나를 던져줌으로써 아이들 스스로 생각하게 만드는 동화를 쓰고 싶다고 전한다.

항상 새로움을 추구하는 작가
“올 11월 말에서 12월 초쯤에 서울 인사동 전시계획이 있습니다. 이번 작품은 도자기입니다. 그동안 제 작품이 주로 새나 소 등 농촌과 관련된 것들이었다면 이번에는 기존에서 탈피해 도자기에 현대적인 요소를 가미한 작품을 만들고 있는 것이지요. 주제는 ‘말(馬)과 사람’입니다. 말은 충직하고 지혜로운 동물로 말과 인간이 감성으로 하나가 되는 이야기를 만들어볼 생각입니다”
이동진 화백은 지난해 여름부터 흙에 목판을 찍어 만드는 작업을 하고 있다. 나무를 깎는 작업은 예전과 다름없이 진행되는 작품의 과정이지만 더 나아가 흙이라는 소재와 접목시켜 새로움을 추구하는 것.
흙을 가리켜 가장 인간다운 소재라고 말하는 그는 언제나 남이 안하는 일에 흥미를 갖고 시도하는 걸 좋아한다. 새로움을 추구하는 일이 예술의 본질임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한 작가의 작품에서 그의 내면세계를 엿본다는 것은 조심스럽기도 하고 가슴 떨리는 일이다. 그의 작품들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허름한 티셔츠와 낡은 바지, 그리고 맨발에 검정 고무신을 신은 그가 아무렇게나 자란 흰 머리와 흰 수염을 날리며 작품 속에서 뚜벅뚜벅 걸어 나올 것만 같다. “무엇이 되면 좋지만 그게 다가 아니다. 나는 그저 주어진 대로 나의 본성에 충실하고자 한다”던 이동진 화백의 이야기에서 문득 숲 속을 돌아 나오는 바람소리와 맑은 새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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