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기관의
지나친 개입이나 독점은
자칫 권력자의 의도에 따라
전문 분야가 통제되고
관료주의로 인한
창의성 상실로
이어질 우려가 있다

 

▲ 김해규 소장평택지역문화연구소

권력(勸力)은 정치학의 핵심적 개념이다. 정치학 사전에서는 근대적 권력을 ‘남을 복종시키거나 지배할 수 있는 공인된 권리와 힘’으로 정의한다. 한문으로는 ‘권세를 부릴 수 있는 힘’을 뜻하지만 좀 더 깊게 들어가면 ‘저울추 권(權), 부지런히 일할 력(力)’으로도 쓰여 ‘주인이 하인들이 일한 정도를 판단하고 계량(計量)한다’는 의미로도 해석된다. 이것을 보면 전통사회에서는 권력을 ‘지배계급이 획득한 권세로 피지배층을 억압하고 수탈하는 수단’을 뜻했지만 근대로 들어와서는 ‘국민들로부터 공인된 힘’으로 정의되고 있다.
근대시민사회의 지도자가 권력의 함정에 빠지는 기준이 있다. 그것은 권력이 자신의 것이라는 사적 소유의식을 가질 때, 또 하나는 측근 정치의 함정에 빠질 때이다. 시민들에 의해 선출되었으면서도 흡사 절대왕정의 군주나 되는 것처럼 착각하고 쓴 소리, 시민들의 공론(公論)에 귀를 닫는 순간 깊은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이 근대의 권력이다.
지난 20여 년 평택시의 정치는 권력의 함정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시장의 독선과 아집, 측근정치로 지역이 분열되고 민주주의는 왜곡되었다. 공석과 사석에서 시장의 오른팔과 왼팔을 자처하는 인사들, 연줄에 따라 인사권이 좌우되는 현상도 심심찮게 목도되었다. 그러다보니 건전한 비판은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고 측근을 통하지 않는 한 뜻있는 정책은 사장돼버렸다.
미국의 정신분석학자 리온 호프만은 ‘권력자들이 권력의 향기에 취해버리면 금지된 행동을 해도 괜찮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강직하고 청렴하기로 소문났던 뉴욕검찰청장이 인기에 힘입어 뉴욕시장에 당선된 뒤 초심을 잃고 호텔에서 고액 매춘을 하다가 지위와 명예를 모두 잃어버렸던 사건을 두고 내뱉은 소리다. 호프만의 지적처럼 권력 밖에 있을 때는 선명하고 능력 있던 사람이 권력을 잡는 순간 과거의 명료했던 신념을 잃어버리고 일탈과 전횡을 일삼는 경우를 우리 정치에서도 종종 볼 수 있다.
지난 해 지방선거에서 공재광 시장이 당선됐을 때 지역사회의 기대는 무척 컸다. 젊고 신선한 생각과 행동으로 독선과 전횡의 정치, 불통의 정치를 종식시키고, 열린 정치와 소통의 정치를 해줄 것으로 기대했다. 서평택 출신으로는 최초로 민선시장에 뽑혀 지난 몇 십 년간 평택사회를 쥐락펴락했던 특정 학연, 특정 지역중심의 측근정치에서도 자유로울 것이라 믿었다. 시(市)가 정치와 행정·경제뿐 아니라 복지와 문화예술까지도 독점하려던 구태에서 벗어나 시민들의 자유로운 사상과 복지·청소년문화 활동을 지원하고 활성화해주리라 기대했다. 하지만 당선 후 반년이 지난 현시점에서 공 시장에 대한 기대는 점차 우려로 바뀌고 있다. 다른 분야는 잘 모르겠지만 최소한 복지와 청소년문화 정책에서 만큼은 그렇다.
예컨대 관피아 논란이 있었던 최근 복지·청소년문화 정책을 생각해 보자. 필자는 이들 정책에 있어 시(市)의 역할은 ‘중매쟁이’와 같다고 생각한다. 다시 말해서 시(市)는 멍석을 깔고 해당 전문가들은 그 멍석 위에서 신명나게 놀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말이다. 시(市)가 복지나 청소년문화 관련 시설이나 기관을 통합 관리하는 것까지는 좋은데 그 수장에 전문가들이 아닌 시장의 측근이나 전직 공무원을 임명하는 것은 이들 분야를 독점하고 통제하겠다는 의도로 비춰진다. 이 같은 방식은 과거 전제정치나 파시즘 국가의 정책이지 민주주의 방식은 아니다.
‘부산국제영화제’가 세계적인 영화제로 발돋움하게 된 것은 전문가들에게 운영을 맡기고 ‘지원은 하되 간섭은 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잘 지켰기 때문이라고 한다. 전문적 영역은 전문가에게 맡겨야한다는 당연함과 정치적 논리가 전문분야에 개입되면 고유의 상상력과 창의성이 사라진다는 원칙이 훌륭한 국제영화제로 성장하는 원동력이었다는 말이다. 최근 일고 있는 부산국제영화제에 대한 논란도 결국 전문성과 창의성을 무시한데서 오는 폐해라고 볼 수 있다.
다시 말하지만 공무원은 전문가가 아니다. 행정기관의 지나친 개입이나 독점은 자칫 권력자의 의도에 따라 전문 분야가 통제되고 관료주의로 인한 창의성 상실로 이어질 우려가 있다. 평택시가 권력의 함정에서 벋어나 초발심을 회복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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