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7년 2월 24일

쌀 훔치려던 도둑 지갑 두고 가
현금 191원 75전과 좁쌀도 횡재

 
 “진위군 병남면 비전리(振威郡 丙南面 碑前里) 권영수(權英洙)의 집에는 지난 이십사일 오전 세 시경에 절도 한 명이 침입하여 쌀을 뒤적이다가 그 주인에게 발견되어 일장 격투한 후 그만 도망하였다는데, 전기 주인이 자기 안방에서 자던 중에 밖에서 무슨 이상한 소리가 나므로 즉시 문틈으로 본즉, (중략) 조금 후에 그 범인은 대담스럽게 문밖에 가서 의복을 달라고 하므로 쫓아 나갔는데, 그 자는 즉시 도망하였고, 평택경찰서에서는 전기 물품을 압수하고 범인을 염탐 중이나 아직 오리무중에 있다더라” (동아일보, 1927년 3월 1일자)

우리는 살다보면 종종 황당한 일을 겪거나 사건을 마주하게 된다. 그럴 때면 과연 그런 일이 일어날까하는 의문을 갖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 현실에는 일반적으로 일어나지 않을 법한 일이 발생하곤 해 즐겁게 만들기도 한다.

얼마 전 자신의 주거에 침입한 도둑의 머리를 가격해 뇌사상태에 빠뜨린 20대 남성에게 징역형이 선고되면서 사회적으로 뜨거운 논란을 일으킨 적이 있다. 20대 남성은 2014년 3월 입대를 앞둔 친구들과 어울리다 새벽 3시에 귀가했는데 2층 거실에서 서랍장을 열고 있는 도둑을 발견해 몸싸움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도둑에게 알루미늄 빨래 건조대를 휘둘러 제압했고 도둑은 뇌를 다쳐 뇌사상태에 빠졌다. 이에 검찰은 과잉방어라 해 도둑을 잡은 사람에게 징역형을 선고했다. 이로 이해 정당방위의 한계가 어디까지인지 논란이 되기도 했다.

이와 비슷한 일이 평택에서도 있었다. 1934년 2월 24일 새벽 3시경 병남면 비전리(현 비전동) 권영수의 집에 도둑이 들었다. 도둑은 쌀을 훔치기 위해 쌀독에서 정신없이 쌀을 퍼내고 있었다. 자다가 인기척을 느낀 권영수는 문틈으로 내다보니 도둑이 쌀을 퍼내고 있는 중이었다. 얼른 일어나 도둑을 향해 소리를 지르며 달려갔다. 집주인 권영수와 도둑은 한바탕 몸싸움을 했는데 아무래도 불리했던 도둑은 입고 있던 저고리와 조끼를 내던지고 도망을 가벼렸다. 도둑이 버리고 간 저고리와 조끼 속의 지갑에는 현금 191원 75전이 들어있었고 앞서 훔쳤던 좁쌀 두 포대, 밀 한 포대, 그리고 고무신 한 짝도 급한 마음에 두고 달아난 것이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달아났던 도둑은 대담하게도 권영수의 집으로 다시 돌아왔다. 그 이유는 자신이 훔쳤다 두고 간 돈과 물건을 되돌려 받기 위해서였다. 도둑은 붙잡히지 않았던 것은 다행이었지만 비록 훔친 돈과 물건이지만 자신의 것이라고 생각하고 아까웠던 것이다. 권영수가 다시 쫓아나가자 도둑은 다시 잽싸게 도망을 갔다. 도둑을 맞아 쌀을 내 줄 뻔 했던 권영수는 도둑 덕분에 오히려 횡재를 한 셈이다. 재수 없었던(?) 도둑과 횡재한 권영수, 요즘도 이런 일이 종종 일어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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