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은 나를 鳶연 할아버지라 불러요”

 

28년간 자비로 전통연날리기대회 열어
하늘 보고 연 날리며 더 큰 꿈 키워야

 

 

전통놀이는 혼자서 할 수 없다. 놀이를 하려면 반드시 동네 친구 서너 명은 모여야 하기 때문이다. 놀이를 통해 사회성을 키우고 바른 인격체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우리의 전통놀이가 점점 사라져 가는 것은 정말 아쉽기만 하다.

개인 돈 들여 28년째 연날리기

“연날리기는 게임에만 몰두하던 초등학생 두 아들 녀석을 게임기에서 벗어나게 하자는 의도로 처음 시작했어요. 그러다 많은 아이들에게도 연날리기의 장점을 알려주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죠. 그래서 얼레를 직접 만들어 집집마다 나눠주고 연날리기 대회를 한다고 알렸는데 첫해 60여명의 참가자들이 모이던 대회가 지금은 300여명이 참석하는 규모로 발전했네요.”

팽성읍에서 ‘혁한새싹회’를 28년째 이어가고 있는 심재근(68) 어르신은 아들 혁보와 한보의 이름 앞 글자를 따서 1987년 ‘혁한새싹회’를 만들었다. 그리고 연날리기대회를 개최하기 위해 7~8년 동안은 얼레를 직접 만들어 동네 아이들에게 무료로 나눠주고 대신 개인이 날릴 수 있는 연을 만들어 오도록 해서 대회를 이끌었다.

“연은 혼자서 만들 수 없으니 자연스럽게 엄마나 아빠·할아버지·할머니의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었어요. 가족이 함께 연을 만드는 동안 이야기도 나누고 더 좋은 연을 만들기 위해 머리도 맞대는 시간이 생기는 거죠. 그렇게 만든 연을 날리는 과정을 통해 아이들은 컴퓨터에서 보던 것과는 전혀 다른, 자연 속에서 어울려 살아가는 자기만의 꿈을 키울 수 있게 되는 거예요”

혁한새싹회의 ‘연날리기 및 자치기 대회’에는 동네 어르신들이 심사를 맡아주기도 했다. 해마다 2월 마지막 토요일 팽성읍 객사리 부용초등학교에서 진행하는 대회에는 매년 600~700만 원의 경비가 소요되고 이를 어르신 개인이 전액 부담하고 있지만 그날을 손꼽아 기다리는 아이들이 즐겁게 노는 것을 보면 그 돈이 하나도 아깝지 않다고.

구제역으로 행사 취소 아쉬워

“평택시의 보조를 받게 되면 아무래도 행사할 때 이것저것 인사말도 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아이들이 추운데 기다려야 하잖아요. 힘들어도 아이들이 격식 차리지 않고 맘껏 뛰어놀 수 있게 하고 싶었어요. 매년 행사를 준비할땐 이제는 다 큰 아들들과 며느리들, 아내까지 함께 머리를 맞대고 경품부터 참가상품, 행사 순서까지 꼼꼼하게 챙기고 있죠”

올해 행사는 아쉽게도 구제역으로 인해 취소됐다. 동네는 물론 평택시내 곳곳에 내걸었던 현수막을 떼어내고 대신 취소됐음을 알리는 현수막을 대신 내건 것도 그렇지만 가장 마음 아픈 건 참가하겠다는 아이들의 전화가 올 때마다 취소됐다는 사실을 알려야 하는 일이다. 카메라·컴퓨터·MP3·자전거·운동기구 등 아이들에게 주기 위해 마련한 다양한 경품도 올해는 전부 무용지물이 됐다.

“아이들은 저를 ‘연할아버지’라고 불러요. 초창기에 참가했던 초등학생이 지금은 결혼해서 아이들을 데리고 참가하기도 하는데 그런 모습을 볼 때 가장 보람을 느끼죠. 해마다 부용초등학교와 송화초등학교에 줄 장학금을 적금 붓듯 꼬박꼬박 챙기는 아내에게 진심으로 고맙고 감사해요. 아내가 아니었으면 지금까지 이어오지 못했을지도 모르죠”

어르신의 가장 큰 소원은 평택지역에서 더 많은 아이들이 행사에 참여해 연날리기를 통해 꿈을 키우는 일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홍보가 절실한데 홍보를 위해 평택시나 교육청을 찾아가면 개인이 한다는 것을 알리는 순간 외면당하기도 한다고.

캠핑카 타고 전국 다니며 봉사

“충남 예산에서는 올해 처음으로 연날리기 대회를 했어요. 군에서 예산을 지원하고 연을 만들 수 있는 교육장이나 상설 체험장도 운영하고 있더라구요. 우리는 벌써 30여년이나 된 기틀이 있으니 조금만 홍보를 하고 활용해도 참 좋을 텐데, 그게 아쉬워요”

예산은 고사하고 홍보만이라도 잘 해서 더 많은 아이들과 학부모들이 푸른 하늘에 연을 띄우며 자연 속에서 더 큰 꿈을 키우는 경험을 가졌으면 좋겠다는 심재근 어르신은 다니던 미군부대를 퇴직하면서부터 캠핑카를 구입해 전국에 있는 오지마을을 다니며 봉사도 한다. 엔지니어로 일하며 농사도 지었고, 젖소도 키웠고, 머리도 깎을 줄 아는 어르신의 재능은 오지마을에서 봉사할 때 더욱 빛을 발한다.

“캠핑카로 잠자리가 해결되니 더 봉사하기가 쉬워졌죠. 캠핑카에 연장들을 싣고 오지마을에 가면 길게는 한 달 정도를 머물면서 그곳 주민들을 위해 동네 청소도 해주고, 문짝도 고쳐주고, 변기도 고쳐주고, 머리도 깎아주고, 용접도 해주는 다양한 봉사를 할 수 있었으니까요”

오래 전부터 번 돈의 십분의 일이라도 사회에 환원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는 심재근 어르신,  봉사하러 다니다 노숙인 취급을 받기도 했다는 어르신은 연날리기 대회가 활성화 돼서 가족이 함께 하는 건전한 놀이문화가 정착되었으면 좋겠다며 활짝 웃는다.

 

 

저작권자 © 평택시사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