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는 스스로 누리는 것이다


문화란 내가 나서서 찾아가
스스로 즐기는 것이지
가만히 있어도 때가 되었다고
누구에게든 손에 쥐어주는
복지福祉는 아닐 것이지요

 

 
전교조 운동이 막 시작되었을 때였으니 30년 전 쯤 일입니다.

중국에서 일어났던 문화대혁명시절 많은 지식인들이 겪었던 하방下放과 마찬가지로 교육대학을 막 졸업한 혈기에 찬 많은 젊은 선생님들은 자원해서 첫 발령지로 단설학급의 벽지학교를 선택하던 때였습니다. 그리고는 새로 발령 난 지역에서 여러 동아리를 만들어 지나간 우리 역사를 공부하며 그 속에서 새로운 길을 찾으려 선생님들은 정기적인 모임을 가졌습니다.

평택군 현덕면·포승면·오성면·고덕면… 낯선 고장 작은 학교에 발령받아 근무하는 선생님들 몇 명도 ‘다물多勿’이라는 동아리로 모임을 만들어 서로 학교 정보도 교환하고 사는 이야기도 나누며 문화적으로 소외받는 시골학교 아이들과 어찌 생활할 것인지를 함께 고민했습니다.

하지만 요즈음처럼 컴퓨터도 없고 SNS도 할 수 없는 하루에 버스도 몇 차례 다니지 않는 시골생활에서 오로지 라디오에만 의존하며 하루를 보낸다는 것은 긴긴 여름날 한낮 더위처럼 금세 지루함에 지치게 마련입니다. 그러다 보니 아무 것도 없는 시골생활에 익숙한 아이들보다 도회지에서 태어나고 자라 시골학교를 선택한 선생님들 정서가 더 큰 문제가 되었습니다.

처음부터 시골생활에 대한 이상이 너무 크고 낭만적으로 생각하며 욕심이 너무 지나쳤던 가요?

빵만으로는 살 수 없다. 그래서 선생님들의 시골생활은 1년을 넘기기가 어려웠습니다.

시골아이들은 또 누군가가 와서 돌보아주겠지… 철새처럼 날아왔던 선생님들은 문화적 혜택을 전혀 볼 수 없는 적막감을 이기지 못하고 서둘러 도회지로 떠났습니다.

- 이번 영국여행에서 가장 충격적이었던 것이 미술전시회를 보기 위해 동네 가까이 있는 ‘갤러리’에 갔더니 문이 열리기도 전인데 부부동반을 한 할머니·할아버지들이 갤러리 앞에 가득 모여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젊은 사람들은 하나도 눈에 띄지 않더라고요.

지난 2월 두 달 동안 친구가 살고 있는 영국에 다녀온 졸업생이 전하는 말이었습니다. 당연한 이야기입니다. 그 시간 젊은 사람들은 모두 일을 하러 갔으니 갤러리에는 올 수도 없을 시간입니다.

- 그런데 특별한 전시회가 열리는 것도 아닌 미술전시장에 줄을 서서 기다리는 노인들은 정말 상상 밖이었어요. 우리나라에서는 한 번도 보질 못한 정경이었지요. 더 더군다나 부부동반을 해서 전시장을 찾는 일이란 정말 뜻밖이었지요.

 그것도 마음이 내킬 때 언제든지 갈 수 있는 1년짜리 정기권을 끊어서 일주일에 한 두 번은 미술관엘 간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선생님, 서울 파고다 공원이나 아니면 종묘 앞에 가보셨어요? 어디 마땅하게 시간을 보낼 곳이 없는 노인 분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모두 소주병을 앞에 놓고 술을 마시고 있는 모습을 보면 갑자기 우리나라 미래가 암담하다는 생각만 들어요.

우리가 쪽바리라고 입만 열면 원수처럼 생각하는 이웃나라 일본만 해도 몸을 움직일 수 있는 노인들은 한 동네 사는 움직이지 못하는 노인들 집에 가서 밥도 먹여주고 목욕도 시켜주고 빨래도 해주는 노력봉사를 한다잖아요.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내가 왜 그런 일을 해! 하며 남을 도와주는 일을 천하게 생각하는 거지요.

양반은 손에 호미나 낫을 들면 안 된다. 양반은 일을 해서는 안 된다. 또 시장에 가서 신분이 낮은 장사꾼하고 입씨름을 하며 물건을 사는 일도 양반은 해서는 안 되는 일이다. 양반은 체통을 지켜야 한다…

바로 고려 때부터 시작해서 조선 500년을 이어 내려온 성리학, 이 나라를 망친 원인의 하나인 유교문화에서 나온 것이지요.

많은 분들이 입을 모아 평택에도 한시바삐 미술관·박물관을 세워야 한다고 말합니다. 당연한 주장입니다. 그러나 이 때 쯤 우리는 다시 생각해보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많은 미술전시장이 몰려 있는 서울 인사동. 하지만 그 길에 들끓는 사람들은 관광객이거나 지방에서 나들이를 온 행락객일 뿐 전시장을 찾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더 더군다나 나이든 노인들은 찾아보기가 더 어렵습니다. 그리고 이런 상황은 서울 고궁古宮에 가도 마찬가지지요.

그래서 어느 작가는 인사동에서 전시회를 하는 동안 전시장에 들어온 사람 숫자를 세었더니 고작 86명이었습니다. 그 가운데 친지나 가족·친구를 빼면 순수하게 전시회를 보러 온 사람은 채 40명도 안 되었다고 합니다. 이런 현상이 평택에서 일어나지 않으리란 보장은 없는 것이지요.

OECD 10위권 안에 드는 경제대국, 하지만 우리나라의 사회문화는 아직 여명기黎明期에 있다고 봅니다. 그래서 우리나라의 축제문화는 역사적 알맹이가 하나 없는 오직 먹고 마시는 ‘먹거리문화다’라고 비판합니다. 그러면서도 하나같이 모두 축제 앞에는 국가에서 보조를 받기 위해 ‘국제國際’라는 명칭을 답니다. 창피하고 부끄러운 현실입니다.

그렇습니다. 문화란 내가 나서서 찾아가 스스로 즐기는 것이지 가만히 있어도 때가 되었다고 누구에게든 손에 쥐어주는 복지福祉는 아닐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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